아무개라고 불리우는 사람

(마태복음 26:17-19)

  우리나라 충청도나 전라도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거시기”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 지역에 사는 사람이 들으면 참 애매모호한 말이 “거시기”라는 말이다. 뭔가 분명하지 않아서 듣는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상당히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지역에서 “거시기”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말을 아주 편하게 사용하고 듣는 사람도 아주 편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거시기”하면 다 통한다. 그렇지만 그 불분명한 언어습관 때문에 그 지역의 발전이 늦어질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거시기”문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말 자체가 말하는 사람도 주관적이고 듣는 사람도 주관적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상실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옛날과 같이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법이 단순하고 생각이 단순할 때에는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지금과 같이 복잡한 사회구조와 다양한 삶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정확하고 분명하게 의사전달이 되지 않으면 그 반응이 너무나 다른 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시기”와 비슷하게 사용되는 단어가운데 “아무개”라는 말이 있다. “거시기”는 모든 사물과 사건을 통 털어서 적용하는 단어라면 “아무개”는 어떤 사람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어떤 사람을 꼭 집어서 이야기 하지 않아도 “아무개”하면 그것이 누구인지 통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성경에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말 가운데 마태복음 26장 17절에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라는 말이 나온다. 그 배경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유월절 만찬을 함께 해야 하는데 제자들이 그 장소를 예수님께 묻습니다.

  지금은 집에서 손님접대를 많이 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주로 집에서 접대하는 풍습이 있었을 것인데 예수님과 예수님의 12제자들 그리고 그 집 식구 몇 합하면 20여명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20여명의 식사준비를 집에서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그 만찬장소를 말씀하시면서 “아무에게 가서”라고 말씀하시고 제자들이 그 말에 재차 묻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보아서 누구의 집을 뜻하는지 어려움 없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오신 후에 그 “아무개”가 아주 기쁜 마음으로 여러 번 예수님 일행을 접대 했고 예수님의 일행은 부담 없이 그 집을 이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날도 거기에서 저녁식사를 계획하셨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가운데 어떤 어려운 일이 발생했을 때에 “아무개에게 가서 이야기해봐!” 그러면 “아 아무개가 있지”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아무개”가 더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궂은일 힘든 일이 있을 때 "아무개만 있었더라면..."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그 “아무개” 이것은 모두가 인정한다는 말이 아닐까?

“아무개”는 정말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대광교회 담임 엄영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