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전 칼럼] 문패만 바꿔달면 되는 것인가

 사진 / 이종전 목사(인천 만수교회)
1960-70년대 문패달기운동을 했던 기억이 있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우리나라에 문패가 등장한 것은 아마도 일제 강점기가 아닐까? 우편제도가 만들어지면서 집집마다 문패를 달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6·25전쟁 이후 소위 판잣집이나 쪽방들이 세워지면서 골목이 복잡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배원에게 문패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물론 차원이 다른 면도 있었다.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호주의 이름을 돌에 새겨서 문패로 거는 순간 그 집의 가장으로서 뿌듯함마저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해서 좋은 집일수록 문패도 좋은 재질을 사용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크기도 달랐다. 어쨌든 나름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이고 우리나라의 역사에 있어서 한 시대의 문화이기도 했다.

한데 요즘 문패 바꿔달기로 분주하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것도 소문을 많이 내면서 바꾸는 것을 보면 그만한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닐까. 문패는 그 안에 누가 살고 있는지를 알리는 것이다. 따라서 문패를 바꿨다는 말은 그 안에 사는 사람이 바뀌었다는 의미이거나 최소한 동거인이 생겼을 경우 그 사람의 문패를 더 다는 경우 일 것이다.

당연히 문패에 이름을 새길 수 있는 것은 그 집안을 대표하는 사람이라야 한다. 아무나 이름을 새겨서 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호주를 중심으로 문패를 만들어 달았다. 따라서 편지를 쓸 경우 주소에 <아무개씨 방>이라고 적었다. 문패에 새겨진 이름은 이렇게 편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대표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문패는 반드시 그 집에 사는 사람과 일치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문패를 바꾸었다는 소식은 여기저기서 들리는데 문제는 안에 사는 사람은 바뀌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것도 묘한 것이 기억할 만하면 새로운 문패로 바꾼다는 것이다. 분명히 다른 사람이 입주한 사실이 없는데도 문패는 다른 이름으로 바꾼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워낙 자주 바꾸기 때문인지 사람들도 무심해지는 것 같다.

같은 사람이 같은 집에 여전히 살고 있는데 문패만 열심히 바꾼다는 것은 뭔가 수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없는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바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패를 열심히 바꾼다는 것은 뭔가 실체는 숨긴 채 사람들이 볼 때 괜찮은 집안이라고 생각하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는 것은 아닐지.

문패는 얼굴이다. 때문에 문패를 달 때는 나름 상당한 고심과 심사숙고하는 과정을 거쳐서 문패 재료를 정하고, 글씨체까지 많은 생각을 해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대문에 내 거는 과정을 통해서 그 집안의 가장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문패는 그 집안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즉 문패를 보고 그 집에 사는 사람이 김씨, 이씨, 혹은 박씨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패와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일치되어야 한다.

문패를 처음으로 내 걸 때는 그 집안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집안의 명예를 내거는 것이다. 따라서 문패에 새겨진 이름을 스스로 존중하고, 가계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문패는 멋지게 내걸고도 자신의 행동은 문패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한다면 스스로 부끄러움을 자처하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문패를 자주 바꾼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이나, 자존심, 그리고 그것을 이어가겠다는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마저 없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요즘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들이 저마다 문패를 바꿔달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감출 수 없다. 내내 같은 집에 살고 있으면서 문패만 다른 이름으로 바꾸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 문패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라면 스스로 환골탈태하든가, 아니면 최소한 그 집에 합당한 사람으로 문패와 일치하도록 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단지 필요에 의해서 바꿔 다는 문패라면 그 집안에 사는 사람에 대해서 아무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가문에 대해서 확신과 긍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 문패를 고수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계승시켜 가도록 하는 것을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풍토가 언제나 만들어질 수 있을지.

한 정당이 만들어지면 몇 백 년씩 정당의 정책과 이념을 계승하면서 이어가는 정치를 하는 선진국을 보면서 우리네 정치의 현주소를 보게 된다.

정당의 문패를 자주 바꾸는 것으로 인해서 백성들은 더 혼란스럽다. 과연 바뀐 정당은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는 분명한 이념과 정책 방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국민이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선거에 있어서 국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나름의 결정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데 뭔가 불리한 상황이 만들어지면 문패를 바꾸는 현실에서 국민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 당황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