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지일 / 영등포교회 원로목사(91세) 저서「새 그릇에 담는 옛 보물」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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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 땅에 물이 고인다”는 말을 어려서부터 할아버지께 듣고 자랐습니다. 모래는 물을 아무리 부어도 다 스며들고 고이지 않습니다. 씀씀이가 헤픈 것을 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굳은 땅에 물이 고이듯 우리의 씀씀이가 좀 굳어져서 한푼이라도 쪼개 쓰려는 풍토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저는 자녀들에게 점심을 배불리 먹고 나서는 다방에 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을 당부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 집은 가옥 구조상 친구와 대화할 만한 장소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간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이해는 되지만 돈 쓰는 데 절약하는 자세가 없기 때문인 건 사실입니다.

물건을 사되 비싸야 질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고급이건 저급이건 내 쓰기에 알맞은 물건이면 족합니다. 저는 중국에 선교사로 가서 21년간 있다가 1957년에 귀국할 때 어떤 분이 해주신 양복을 최근까지 입었습니다. 그 양복을 입고 일본에서 딸과 손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딸이 제 양복저고리 끝이 헤어진 것을 보고“어떻게 이런 것을 입으세요?”라며 안타까워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영국의 이튼 수상도 국제 연합회의에 참석했을 때 기운 옷을 입고 왔더라고 응수해주었습니다. 실제로 중국에서 영국 사람들과 같이 일해보니 그들은 참으로 절약하면 살았습니다. 옷을 여러 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헤어지면 기워서 입습니다.

우리도 돈 쓰는 데는 좀 굳어져야 합니다. 특별한 일이 아닌 한 교회에서도 음식을 장만할 때는 그저 요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습니다. 사적으로 누가 한턱을 낸다 하더라도 지나친 포식은 삼가야 합니다. 교회의 돈으로 할 때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헌물을 사치스럽게 써서는 안 됩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제 물건을 아끼는 것이 습과화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회사의 물건은 아껴야 합니다. 회사의 공금이라고 눈먼 돈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씀씀이에 좀 굳은 땅이 되어봅시다. 이것은 인색함과는 구별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