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밀양密陽secret sunshine이라는 작품이 생각난다, 제목이 한자가 의미하는 대로 '밀양密陽secret sunshine숨어있는 태양'이다. 주인공 신애라는 여인은 뺑소니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아들하나를 데리고 남편의 고향 경남 ‘밀양密陽’으로 내려간다.

마음을 다잡고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며 열심히 산다. 서울에서 내려와 학원을 지을 땅을 보러 다닌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돈 많은 여인으로 주변의 이목을 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친목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들이 납치되어 사라졌다. 범인의 요구대로 있는 돈을 다 털어주었지만 아들은 이미 살해된 뒤였다.

정신을 잃고 거리를 방황하다 어느 날 마지막 실오라기라도 붙잡으려고 교회에 나간다. 위로와 평안을 얻고 원수까지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결심 끝에 감옥에 있는 범인을 찾아가 아들을 죽인 그를 용서하리라 하고, 면회를 간다.

나는 예수 믿고 은혜를 받아 위로와 평안을 찾았고 당신에게 복음을 전하고 당신의 죄를 용서하러 왔습니다’ 의외로 평온하고 담담한 그는 ‘저도 이 안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의 모든 죄를 회개하며 용서를 받았습니다’ 아니? 피해 당사자인 내가 용서를 안 했는데, 누가 용서했단 말인가? 나에게 사죄를 안했는데, 누구에게 사죄했단 말인가? 신애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감옥에서 나와 실신해 쓰러지고 만다.

이 작품이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 숨어계신 하나님, 침묵하시는 하나님invisible God, hidden God, silent God이다. 이 세상은 악한 놈이 더 잘살고 성공하며 세상을 지배한다. 정직하고 착하게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항상 밑바닥에서 허우적댄다. 이런 부조리의 상황을 보면서 신은 죽었다God is dead고 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초신자가 된 신애가 이해 할 수없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너무나 깊고 높은 뜻과 섭리다.

우리의 사사건건 만사에 대답을 주시지 않는 숨어 침묵하시는 하나님이다. 큰 마음먹고 죄인을 용서하러 간 신애는 이미 용서 받은 범인에게서 자기의 용서의 주권을 빼앗긴 박탈감에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를 용서하고 심판할 자격이 없는 똑같은 죄인일 뿐이라는 것을 받아드리지 못한다. 요즘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해 사건으로 온 나라가 어지럽고 자식을 가진 사람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진 심정이다.

그러나 이런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해야할 것이 있다. ‘우린 모두 공범자’라는 사실이다. 사건을 저지른 범인만 죽일 놈이고 우린 항상 돌을 들고 치려는 심판자들이다. 우리가 범인 을 심판할 자격이 있는가? 이런 세상을 만든 게 누군가? 두 살 난 김길태를 길바닥에 버린 게 누군가? 그를 그렇게 키우고 가르친 게 누군가? 우리들이 아닌가? 우리 모두는 그를 심판하고 돌을 들어 칠 자격이 없다. 오늘 날 우리 교회가, 주의 종들이, 성도들이 공범의식, 죄인의식을 느끼며 가슴치고 회개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2천 년 전 예수님 앞에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 돌로 치려는 살기등등한 바리세인과 무엇이 다른가? 몇 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버지니아 공대 조승희 사건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깊은 충격과 함께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사회의 문제를 대응하는 태도다. 사건직후 가해자인 조승희의 시신과 함께 32구의 시신을 나란히 놓고 헌화하며 장례를 치르는 모습이다. 우리 눈에 비치는 것은 도저히 있을 없는 일이다. 어떻게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란히 같은 자리에 놓고 장례를 치룰 수 있는가? 그런데 미국사회는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조승희도 똑같은 피해자이고, 미국사회, 미국국민 전체가 가해자, 공범자라는 마음가짐이다.

이런 악한세상과 자식을 잘못 가르친 기성세대, 부모들이 가슴 치며 책임을 통감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문제를 놓고 대응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성숙한 사회냐? 아직도 후진적 사회냐? 의 판가름의 척도가 된다. 우리는 누구를 심판할 자격이 없다. 우린 모두 공범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