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시(國是)를 다시 찾자

<칼럼>


2. 국시를 다시 찾자 서영웅 목사.jpg자유스러울 때는 자유함을 느끼지 못한다. 자유와 평화는 삶에 있어 생명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가의 이념을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는다”고 전 국민이 외치면서 공직자들은 재건 복을 입고 국가발전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었다.

정부적 차원에서 반공연맹을 조직하여 전국적으로 반공정신을 확산 시켰다. 특히 중·고등학교에는 반공학생회를 조직하여 반공교육을 시켰으며 또한 전방 땅굴 견학 등으로 청소년들의 반공정신을 강화 하였다. 그 후 몇 대 정부를 거치면서 국시의 이념은 물론 반공이란 용어 자체가 사라졌다.


반공정신을 불러 일으켰던 반공연맹의 명칭을 자유연맹이라 바꾸더니 지금은 조용한 조직으로 남아있다. 좌편향 정신을 가진 국정책임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국민정신을 약화시키려 함을 알 수 있다. 우리 국가도 어려운데 북한에 수많은 지원으로 아무것도 없던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등장 된 것이다. 북한 공산당을 강하게 만들어 주고 우리는 손놓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과 통일을 말하며 대화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역사의 기록은 고난과 고통 속에서 잊을 수 없는 내용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기록은 왜곡 되어서도 안 되며 좌우로 치우쳐도 안되는 것이다. 오늘의 젊은 세대들에게 6·25 한국 전쟁사를 소상히 가르쳐야 한다. 일부 좌편향 교사들은 6·25전쟁을 북침으로 가르쳐 공산주의 찬양론으로 번질 경우 나라의 장래가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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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전쟁은 반백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고 있다. 지금의 60대들도 전쟁의 쓰라림을 체험해 보지 못했다. 당시 북한 공산당의 남침은 순식간에 서울을 함락 시켰고 계속적인 남침으로 우리국민들을 정처 없는 피난의 길을 떠나야 했다.


남한을 점령한 인민군들은 경찰서를 내무서로 면사무소를 인민위원회, 지서를 자위대,로 명하고 각교량등 단일로에 초소를 만들어 우리의 피난민들을 검문하였다. 당시의 검문은 신분증 검사가 아닌 얼굴과 손과 발을 검색 하였다. 손발이 깨끗하면 현장에서 체포하여 내무서로 연행 아무런 조사 없이 전기선으로 결박하여 무릎 꿇게 하고 참나무 몽둥이로 머리에서부터 전신을 때려죽이는 무참한 살인을 자행한 것이다.


더욱 악랄한 참상은 대전 형무소의 경우 우익인사 일천여명을 가두어 놓고 하루 한끼의 주먹밥을 주고 완전히 기력이 쇠잔한 가운데 철통같은 엄격한 수감 생활을 시켰다. 그들 나름대로의 신상을 분류하여 1급에는 경찰, 군인, 공무원을 격리 시켰으며, 2급은 지방 유지와 재력인사들을 분리시켜 상상을 초월하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준 것이다.


그러던 차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9.28수복이라는 상황에 처하자 1급에 속한자들을 형무소 내에 3개의 대형 우물에 일렬로 세우고 우물 앞에서 각목으로 머리 후두부를 쳐 실신시켜 우물에 거꾸로 쳐 넣었다. 1개의 우물에 100여 명씩 약 300여명을 생수장 시킨 만행은 세계가 다 아는 내용이다. 나머지 2급에 속한 자들은 형무소 마당에 허리정도의 깊이로 줄호를 파게하고 일렬로 세워 따발총으로 무참히 죽여 모두 일천여명을 현장에서 죽이고 후퇴 하였던 것이다.


당시 피난길에 오른 우익인사들은 깊은 산속으로 피난해 산을 오르며 나무를 하면서 자신의 손과 발을 일꾼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온통 피투성이의 몸을 만들었다. 산속에 움막을 만들어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 등으로 연명하다 배탈이 나면 구리동선을 구해 구리를 돌에다 갈아 먹는 기막힌 짐승을 삶을 살은 것이다.


더 이상 고통을 참지 못해 피난민들을 찾아 다른 곳으로 이동 중에 인민군들의 초소를 통과 하려면 어김없이 손발을 검문하여 일꾼의 손발로 굳어졌으면 초소를 통과 하지만 그렇지 못 할시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비참한 죽음으로 죽는 것이다.


이러한 고통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생명을 유지하려 했던 고통의 역사를 오늘의 청소년들에게 확실히 알려주어 공산주의 잔학상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북한 공산주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지금도 계속적인 남침을 위해 핵을 비롯한 전투장비와 무력 훈련으로 남침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전쟁과는 거리가 먼 안일한 삶을 살고 있다. 북한공산주의를 지척에 두고 정신 사상적으로 아무런 준비가 없다면 순간적인 어려움이 찾아 올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국시인 반공정신을 다시 불러 일으켜 철저한 안보관을 가져야 한다.


공산주의 사상은 변화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공산주의 사상을 찬양 고무하는 조직을 철저히 밝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리하여 없이 해야 한다. 우리는 공산주의 이론의 이중성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선전선동 이론과 실천 이론인 것이다. 선전 선동 측면에서 그들은 대화와 타협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실천이론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당의 명령과 지시만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북한공산주의와의 대화와 통일논의는 불가능한 것이다. 설령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사상적 대립으로 국가의 존립은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한다는 지난날의 국민정신을 다시 찾아야 한다. 앞으로의 통일은 공산주의를 완전히 없이 하고 자유민주주의 통일만을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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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전쟁으로 비참한 죽음을 한 선조들의 참상에 대해 국민 모두가 마음을 찢는 아픔을 가져야 한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는 튼튼한 국방력을 가지고 국민 모두가 투철한 반공사상으로 무장하여 안정과 발전의 희망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퓨리탄 장로교회 목사 서 영 웅(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