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의 짙푸른 녹음은 사라지고 바야흐로 늦가을의 문턱에서 바라본 산야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이제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여름철 싱그러움은 사라졌지만 오히려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자연을 보면서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계절의 변화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많은 것들 중 한 가지가 있다면 화려함 뒤에는 또 다른 삭막함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녹음이 우거진 산야가 단풍으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룰 때 잠깐은 아름답고 화려해서 좋을지 모르지만 머지않아서 그 단풍이 지고 나무들이 맨몸을 하나씩 드러낼 때쯤이면 결국은 볼품없이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바라보는 세상 역시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이 인류가 마지막 때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물론 이 세상은 양면이 있지만, 그것은 부요한 듯하고, 편리하고 빠르며, 하고자 하는 일은 돈만 있으면 기능한 것 같고, 배부르며 부족한 것이 없는 듯해 보인다. 그러나 마치 얼마 남지 않은 겨울을 까맣게 잊고 그 고운 자태를 뽐내며 붉게 물들이는 단풍나무들처럼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화려함을 뽐내다가 때가 되면 쇠퇴해 갈 것이다.

추운 겨울에 벌거숭이로 혹한의 바람에 떨며 서 있는 나무처럼 언젠가는 우리 인생도 유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를 맞이하고, 결국은 누구라도 죽음을 원치는 않지만 결국은 그날을 맞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오래 살았다고 해야 100년 안팎에서 맴돌다가 가는 인생은 참으로 허무하기 짝이 없는 그림자와 같지 않은가? 그 사람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문제이지만, 각 사람에게 주어진 그 수많은 시간들을 밤에는 잠으로 시간을 보내고(그것도 모자라 낮잠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고), 입으로 음식을 먹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각자 자신의 삶의 방식대로 살고 보니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하나님의 섭리대로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 심판이 정해진 것같이』(히 9:27). 그렇다. 그 누구도 이 하나님의 섭리를 거슬러 영원히 살 수 있는 인간은 없음이 분명하다. 그것도 모르고 불로초를 찾아서 헤매던 어리석은 왕도 있었다지만, 그는 이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는 교훈만 남긴 채 죽어서 어딘가로 갔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았건 거지로 헐벗고 멸시와 조롱을 받고 살았건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살하고, 사기치고, 도둑질하고, 음행하고, 살인을 하는데, 심지어 자신을 낳아준 부모까지 죽이는 막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인생이 그렇게 끝나버리는 간단한 것이라면 이 세상에 왜 종교들이 생겨났겠는가? 사실은 그들이 정직하지 못해서 핑계를 댈 뿐이지 자기 본성은 자신이 죽으면 지옥에 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서 마련된 지옥에 스스로 가겠다고 나선 사람들에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신 사실을 모른 채 그렇게 지옥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종교에 의지하려고 하지만 거기에 사람들의 사악한 속임수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잘못된 지도를 가지고 목적지를 올바로 찾아갈 수 없듯이 이 세상의 종교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고 있을 뿐이다.

죽고 난 후에는 어떠한 구원의 길도 없다. 죽어서 중간 단계에 머물러 있는 “연옥”이라는 장소도 없고, 자신의 혼령이 떠돌아다닌다는 미신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말처럼 죽어서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돈다는 그런 자유도 없다. 사람은 죽는 즉시 양쪽으로 나뉠 수밖에 없는데, 구원받은 사람의 혼은 하늘나라로, 구원받지 않은 사람의 혼은 즉시 지옥으로 내려가게 된다. 『악인은 지옥으로 돌려질 것이요,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민족들도 그러하리라』(시 9:17).

사람이 항상 건강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어리다고, 젊다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니다.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인생인 것이다.

아름다운 꽃이 일찌감치 베어져 화병에 며칠 있다가 흉하게 말라버리고, 강풍 또는 쓰나미에 가지가 꺾이고, 고목이 뿌리째 뽑혀버리는 것처럼 인간 역시도 각종 사고와 재난으로 그렇게 한순간에 죽음이 엄습해 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에만 가능한 구원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가을 나무에 아슬 아슬 매달려 있는 마지막 잎사귀처럼 결국은 떨어지고 말게 된다. 그래서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지 않으면 그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결국은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에서 영원히 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불평하고, 불평을 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을 한사코 미루곤 한다. 그러나 사람은 내일 일이나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고 일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지 못한다고 성경은 잘라 말씀하신다. 자신이 아무리 대단한 존재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낮 초라한 죄인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거나 남들이 자신을 훌륭한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라는 대신 모든 자존심을 던져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길만이 영원히 살 길이다.

사람들이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은 겨우내 떨던 나무는 봄이 되면 다시 소생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이 이 땅도 저주에서 풀려나 회복되어 천년 동안 존재하게 되고 나중에는 더 좋은 새 땅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옥만은 다르다. 진화론자들이 섭섭하겠지만 지옥은 개선되지 않고 안 좋은 쪽으로 진화하는데 불타는 지옥에서 지내던 혼들에게는 나중에는 더 뜨거운 불못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옥은 좋은 쪽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뜨거운 불못으로 거처를 옮겨지게 되는데, 성경은 그 지옥이 스스로 확장해나간다고 말씀하신다. 『지옥은 스스로를 확장하였고 한없이 입을 벌렸으니 그들의 영광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허영과 기뻐하는 자가 그곳으로 내려가리라』(사 5:14).

그러므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신 그 사랑을 깨달아 알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구원받아야 한다. 『또 너희는 몸은 죽일 수 있으나 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차라리 혼과 몸을 모두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는 그분을 두려워하라』(마 10:28).

 

 

박재권 / 캐나다 주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