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배를 갈아타야 하는가 그 의미(4)

멧돌의 윗 짝과 아래짝은 재림예수와 초림예수!

말씀선포 편집인 정기남 목사

 juong gi nam.jpg 지난번에 이어서...

  행 28:1~31절 여기서 올리브 나무는 누구인가? 두 증인을 상징한다. 두 증인이 올리브 나무이다. 그리고 무화과나무는 누구인가?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유대 나라를 가리킨다. 이스라엘이란 뜻은 이긴 자라는 뜻이다. 승리자를 말한다. 왕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신대 이 사람들은 예수님 위에 올라가지 않겠다는 것이니다. 이긴 자나 올리브 나무는 절대로 왕이 되는 것을 거절했다.

 

또한 포도나무는 누구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이 포도나무인데 포도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는데 내가 왜 왕이 되느냐며 거절했다. 올리브 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다음에 가시나무가 나오는데 이는 악인을 대표하는 적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 가시나무인 적그리스도가 왕이 되겠다고 한다. 이 비유가 너무도 신기하다. 그런데 요담이 아비멜렉을 두려워하여 도망친 후에 숨은 곳이 브엘이다. 브엘은? 우물이란 뜻이다. 그러면 우물이 무엇인가? 교회를 가리킨다.

 

이 교회는 후에 예비처 교회를 말한다. 그러니까 예비처 교회에서 숨어서 삼년 동안 지내는데 이때는 아비멜렉이 즉 후 삼 년 반 적 그리스도가 나오는 때이다. 이것은 지금 재판관기 9장의 내용인데 이 이야기는 오늘 이 시대를 시사한다. 오늘 이 시대하고 환난 시대가 재판관기에서 이렇게 풀어지고 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나중에 어떻게 되는가? 어떤 여인이 던진 맷돌에 머리를 얻어맞고 두개골이 깨뜨려져 죽는다. [재판관기 9:53] 참고.


한 여인이 맷돌 한 짝을 들어서 아비멜렉의 머리를 쳐서 두개골이 깨어져서 죽었는데 여자는=> 교회이다. 이것은 또한 시온 산 교회를 가리킨다. 그런가 하면 계 12장에서 이 여인은 예비처 교회를 말한다. 그런데 맷돌은 윗짝과 아래짝이 있다. 위의 짝은 재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맷돌이 예수님을 가리키는데, 위의 짝과 아래짝이 있다. 여기서 맷돌의 윗 짝은 재림 예수를 가리키며, 아래짝은 초림 예수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비멜렉이 여인이 던진 맷돌 한 짝에 맞아 두개골이 깨어져서 죽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박살이 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적그리스도는 이때 돌에 맞아서 적그리스도의 자기 때를 마감하게 된다.

 

그리고 두개골이 깨어졌다는 것은 완전히 영이 파괴되고 박살 나는 것을 말한다. 맷돌 윗짝에 맞아서 가루가 되어 없어지고 만다. 신학적인 진리로 완전히 박살나고 만다. 그리고 맷돌은 구약적 진리와 신약적 진리인데 구약적 진리는 절대로 움직이면 안 된다. 맷돌의 아래짝은 도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맷돌의 윗 짝은 돌아가야 한다. 즉 신약적 진리는 완전히 돌아야 한다. 복음의 진리는 땅끝까지 돌아야 한다. 그것을 가리킨다. 계시록에 보면 창녀 바빌이 그때에 맷돌에 맞아 완전히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성경은 짝으로 되어 있고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재판관기 종말론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에프라임 사람들과 므낫세 사람들하고 같이 도망을 가는대 어떤 사건이 일어났느냐? 하면 쉽볼렛십볼렛이라는 언어가 나온다. 여기서 에프라임 사람들이 큰 실수를 저지른 계기는 발음이 정확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만 이천 명이 죽임을 당한다. 무엇을 가리키는가 에프라임인들이 쉽볼렛이라고 하면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생존할 수 있는 암호이다. 죽지 아니하고 살 수 있는 암호이다. 그래서 쉽볼렛하면 살 수 있다. 이것이 아군의 암호이다. 적군이 아닌 자기편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암호에 대한 발음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면 불택자이다.

 

재판관기 12:6에서 에프라임 사람들에게 쉽볼렛이라고 암호를 가르쳐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만 이천 명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여러분 이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 가를 알아야 한다. 이 암호처럼 마지막 때 살아남는 암호의 비밀을 가르쳐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발음 하나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발음을 잘못했다는 것은 불택자인데 말씀에 분별력이 없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쉽볼렛을 십볼렛으로 암호 발음이 틀린 것이다. 쉽 이라는 앞자를 십이라는 말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들은 불택자로서 사만 이천 명이 죽임을 당했다.

 

다시 말하면 예언의 말씀을 듣고도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살다가 다시 말하면 영적 비밀을 바로 알지 못하고 살다가 그만 불택자와 똑같이 그날에 죽임을 당하고 마는 것을 보여 준다. 그래서 쉽볼렛이라는 암호의 비밀을 에프라임 사람들이 아닌 것은 알려주지 않았다. 즉 불택자들에게는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런데 에프라임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암호를 가르쳐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암호를 바로 하지 못하여 쉽볼렛 하면 살 것인데 십볼렛이라고 대답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건너가게 하라는 재판관기 12:5에 말씀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요단강 건너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강건너 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성경에서 홍해 건너는 것과 요단강 건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홍해를 건너는 것은 예수님 초림을 말하고, 요단강을 건너가는 것은 재림을 말한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물로 세례를 받고, 두 번째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다. 반드시 나중에는 강을 건너서 도피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지막 때 강을 건너서 도피하게 되는데 비밀을 알아야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에프람인들은 비밀을 가르쳐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암호를 바로 대지 못한고로 망했다. 왜 그들이 몰랐느냐? 는 것이다. 왜 발음을 잘못했느냐? 는 점이다. 이는 한 마디로 영적 비밀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이 영적인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도 되나요? 그들이 왜 그랬을까? 오늘 이 시대로 말하면 언어구사에 있어서 표준말을 하지 못하고 지방 사투리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경상도 사람들에게 쌀, 그렇게 말해 보라고 하면 쌀 바름을 못한다. 쌀을 살이라고 한다. 쌀 발음이 안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에프라임 사람들이 쉽볼렛을 십볼렛으로 발음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쉽게 말하면 7년 대환난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우리는 공중으로 올라가는데 그러나 어떤 이들은 7년 대환난은 자기들과는 상관이 없어서 7년 대환난 전에 올라간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진리가 혼돈이다. 거짓을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발음하나가 이렇게 엄청난 생사를 가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발음하나가 틀려서 사만 이천 명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진리의 말씀을 바로 분별치 못하면 불택자와 같이 죽임을 당하되 영원히 죽임을 당한다. 불택자 에프라임 사람들에게는 쉽이라는 말을 가르쳐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끝까지 간직하지 못하였기에 말씀에 분별력이 없어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모세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반석에게 명하라고 일러 주셨지만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반석을 때려버렸다. 이것도 마찬가지의 사건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자기 사상이 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자기 경험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쉽볼렛인데 십볼렛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완전히 자기의 신분이 달라지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가 자기주의 사상이 깨어지지 아니한 사람들은 완전히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이 그때에 들어 나는 것이다. 결과는 죽는 것이다. 어느 곳에서 죽느냐 하면 요단강 건널 때에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지금은 괜찮은 것같지만 별일은 없는 것 같지만 다시 말하면 쉽볼렛이 건, 십볼렛이 건 아무려면 어떠 하랴 하겠지만 그러나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면 다 들어나게 되어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쉽볼렛은= 옥수수, 이삭, 시냇물이란 뜻이 있고, 십볼렛은=“무거운 짐그러한 뜻이다. 이 말을 사용케 된 것은 요단강 나루턱을 지키던 길르앗 사람들이 에프라임 사람들을 색출해 내기 위한 방법으로서 발음의 차이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쉽볼렛=> 시냇물이란 말을 바로 발음하지 못한고로 십볼렛= 무거운 짐이란 말로 대답을 했기에 그 결과 이만 사천 명이 죽임을 당했다는 말이다. 약간의 발음 차이가 이 엄청난 비밀이 있었음을 그들이 몰랐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점을 마음속 깊이 받아 간직하셔서 나와 여러분이 이러한 실수는 하지 말아야 되겠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다같이 주님을 맞이하는 복 있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라나타················ 오직 예수 영광!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