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사도영성 신학(5)

하나님의 생명력을 깨닳은 사도들 순교를 각오한 사역

사도영성 아카데미 원장 홍항표(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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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어

기독교 영성가들은 이 자아 혹은 영혼의 정화 및 초탈의 최상의 방법은 철저한 자기 포기’(apatheia)자기 부정’(self-negation)이라고 보았다. 예수님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否認)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16:24)고 하신 말씀은 우리의 영적 성장과 완성을 위한 온전한 정화와 초탈, 그리고 철저한 자기 부정자기 포기의 길을 제시한 말씀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정화의 대상

자기를 버리기 위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욕구를 버리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욕구를 좇아 어떤 대상에 집착하면 그 욕구가 우리 마음 안에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 욕구가 강하면 강할수록 차지하는 자리가 크고, 그 자리가 크면 클수록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자리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편, 욕구의 해악은 다음과 같다.

욕구에 따라 사는 사역자는 항상 피로에 지쳐 있을 것이다. 욕구는 무엇이든지 못 마땅해하는 철부지 어린이와 같아서 아무리 채워주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우리를 졸라대면서 가만있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욕구의 지배를 받고 있으면 마치 욕구라는 밧줄에 묶여 욕심의 맷돌을 돌리는 것과 같아서 전혀 쉬지 못하고 학대를 받고 괴로움을 당할 것이다.

이는 마치 욕심 많은 농부가 쟁기 맨 소를 괴롭히고 닦달하듯이 욕구에 묶인 마음도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다. 욕구를 많이 지니면 지닌 만큼 괴로움이 많고, 강하면 강한 만큼 마음의 괴로움도 크다는 말이다.

 

욕구대로 살면 마음이 어두워져서 마음의 눈이 멀게 된다. 욕구에 사로잡힌 사역자는 당연히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며, 의지가 무뎌지고 이성이 흐려져서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다음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