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립 교수, 이사야 1장 강해 (5) 

A Study on the Book of Isaiah

강의 제자신학원 김성립 목사

사무총장-김성립목사.jpg 지난 호에 이어서..

신학 포인트

본장은 이사야서 전체를 흐르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주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사야는 언제나 하나님의 책망과 구원의 약속 그리고 공의로운 심판을 반복적으로 나타내는데 그 속에서 면면히 흐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비록 유다가 그들의 반복된 죄악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형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 분명한 데도 하나님은 또 한 번의 회개를 촉구하고 계신다.

 

이것이 바로 유다, 나아가 이스라엘 전체를 회복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선한 의도가 엿보이는 말씀인 것이다. 유다의 죄악은 종교적인 형식주의에서 비롯되었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언동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약을 기억하며 변함없는 사랑으로 유다를 돌보고 계신다.

 

이사야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당연한 도리는 바로 회개임을 역설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이 유다에게 임한 것은 더 없는 그분의 신실하심을 드러내는 것이며, 여기에는 유다의 모든 백성들이 회개하는 길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심판으로 바뀌기 전에 유다의 회개가 있어야 하며, 그럴 때만이 유다의 구원은 보장되는 것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본문이 주는 메시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양면적인 속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없는 언약의 성취를 예견해주는 것이며 나아가 유다를 향한 무한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다. 비록 유다 백성들이 죄를 지어 바벨론이라는 강대국 아래 있지만 이것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한 과정이며 죄를 회개하도록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1)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 범죄 할 때는 징계를 해서라도 바로 돌아오도록 하신다. 2) 하나님께서는 공평한 심판을 통해서 회개한 자를 의로 구속하시지만, 끝까지 돌아오지 않는 자들은 멸망시키신다.

 

[2] 여호와의 날에 될 일들

본장은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는데, 특별히 말일’, ‘여호와의 날로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사야는 말일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모든 나라 위해 군림하게 될 것이며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상의 왕으로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실 것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며 겸손히 살아가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모든 우상들과 우상 숭배자들, 특히 교만한 자들에게 임하여 그 모든 것들을 파괴하시기 때문이다. 유다가 저지른 모든 죄들이 우상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많은 구절들이 나타나며, 이사야는 이러한 유다 백성들에게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내용 분해>

1. 말일에 성전을 중심으로 세워질 평화의 나라의 비전(1-5)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2. 남 유다 심판의 원인 제시와 여호와의 날의 심판경고(6-21), 3. 남 유다가 의지하는 대상들의 제거 경고와 여호와 영광 모독 책망(22-3:12)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신학 포인트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거하는 것이긴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하나님 자신의 언약에 근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에 위배되는 일이 행해지는 곳에 하나님의 심판은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어느 장소,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에게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사야가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의 백성에 걸 맞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촉구한 것은 이미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사실에서 충격을 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심판이 우상 숭배나 강대국에 대한 의존, 그리고 교만 등을 일삼는 성민에게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앗수르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민족이기 때문에 멸망 받는 것은 당연한것이지만 그 속에 어우러져 죄악을 일삼는 유다 백성들도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에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본장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구체적으로 이방 나라의 멸망으로 결과 되지만, 유다 백성들 편에서는 심판의 과정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볼 수 있는 호기가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말일에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지고 나면 율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된 자들을 가르치시며 다스리시는 도구로 여전히 사용될 것임을 보여 준다.

 

그것은 예수의 사역을 통해 나타나는데 즉, 예수께서는 인간의 죄성이 가미되어 만들어진 잘못된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가 담겨 있는 율법을 온전히 이해하고 따랐다는 것이다(참조, 5:17).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이르면 모든 허무한 것들이 멸망을 당하게 되고 교만한 것들이 낮아질 것이지만 홀로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시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이사야의 선포는 유다 백성들이 의지해야 할 유일한 대상을 지적하고 있다.

 

본문이 주는 메시지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은 유다 백성들이 저지르는 범죄와 앗수르의 교만한 행위가 결코 하나님의 공의로움과 능력에 부합될 수 없는 가증한 것임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앞당기는 행위는 성민이나 이방인들에게서 모두 없어져야할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결코 강대국의 힘이나 자신의 능력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모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즉 이스라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은 선지자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며 그 말씀을 따를 때 구원으로 나타난다.

 

1) 성도들이 세속화되어 헛된 물질과 쾌락만을 추구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게 된다.

2) 성도들은 영광스러운 주님의 재림의 날을 기다리며 더욱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3] 하나님의 심판

본장의 초반부는 사 2:22의 말씀과 논리적으로 연결이 되는데, 인생을 의지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장차 유다가 의지하는 인생들을 모두 제하여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멸망당할 대상 중에는 복술자들과 우상을 만드는 장인들이 그 선두에 있을 만큼 종교적인 타락이 있었다. 또한 통치자들의 권위와 정통성이 사라지고 윤리성의 타락은 사회적인 혼란을 가중시키며, 결국은 유다의 멸망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뒤이어 특권을 남용하는 지도자들의 폭력적인 행사가 나타나고 이것은 모든 유다 백성들의 타락을 부채질하는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내용 분해>

1. 죄의 추궁자, 심판자로 등장하신 여호와의 남 유다 남녀 상류층 심판 경고(3:13-4:1), 3:10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사 3:11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다음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