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강해-2-

크고 두려운 주의 시온에서의 나팔소리


1고문 정기남 목사1.jpg

2:1~3 1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내어 땅의 모든 거주민들이 떨게 하라. 주의 날이 이르니라. 날이 매우 가까우니 2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구름이 끼고 짙은 어둠이 덮인 날이라. 날은 산들 위로 퍼지는 같으니 이는 크고 강한 백성으로 인함이라. 이와 같은 것이 지금까지 없었고 그것 이후에도 많은 세대의 여러 햇수에 이르도록 다시는 없으리로다. 3 불이 그들의 앞에서 삼키고 불꽃이 그들의 뒤에서 태우는도다. 땅이 그들이 이르기 전에는 에덴의 동산 같으나 그들이 이른 뒤에는 황폐한 광야 같으니 참으로 아무것도 그들을 피하지 못하리로다. 아멘...

 

( 16:8~9)넷째가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했다. 마지막에는 견디기 힘든 재앙과 환난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말씀에서 보신대로 끝까지 떨지 않는 자들은 양심이 마비된 자들이요 페륜범들이 되어서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그저 석고처럼 굳어져서 회개를 모른다. 오히려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지옥 가기 위하여 작정한 자들이다. 사실 이들은 지옥도 모르는 자들이다.

 

이들은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도 전혀 모르는 자들이다. 한마디로 간덩이가 부은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환난이 일어날지라도 태연하다. 사람들이 죽고 환난을 당하는 일들을 보면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또한 하늘에 태양이 빛을 잃고 세상이 어두워져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회개할 모른다. 이들은 결국 떨지 않는 자들이다.

 

성경에는 땅에 거민으로 떨게 할지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떨지 않을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제일 복된 자가 될까요? 회개를 사람들이다. 죄를 짓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많이 지은 괴수일지라도 나와 같이 다윗처럼 회개만 하면 그가 최고의 복을 자요, 복을 제일 많이 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옥 가는 것은 죄가 있어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죄가 없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기 때문에 지옥 간다는 사실이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죄를 짓지 않을 없다. 끝까지 죄는 우리가 회개를 해도 짓고,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도 죄를 지을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지옥 가느냐? 그렇지 않다. 때문에 지옥 가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구원론을 바로 가르치기 때문에 그러한 일은 없지만, 옛날에는 할머니지금 돌아가시면 천국 있습니까? 하고 여쭈어보면 글쎄요 그랬다.

 

나이가 많으신 장로님께도 장로님 지금 돌아가시면 천국 있습니까? 하면 글쎄요 두고 보아야 알지요, 그랬다. 그래서 어떤 이는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깨끗하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한다. 만일 이렇다면 구원받을 사람 아무도 없다. 사람이란 회개하고 짓고, 깨끗해졌다가 회개한다. 이렇게 된다면 짓고 죽을 확률이 많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이지, 죄와는 상관이 없다고 했다. 일단 우리가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 죄가 있으면 마지막에 검사가 정죄를 한다. 우리라 해도 정죄를 없을 것이다. 정죄를 하면 회개를 하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께서 지워 놓았기 때문에 검사가 와서 , 아무리 서류를 보아도 아무개의 죄가 없다. 그러니까 사람은 관계가 없겠지만. 미쳐 해결나지 못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그런다면 분명히 기록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검사마귀가 보세요 판사님! 이와 같은 죄에 해당 된다. 이렇게 한다면 만일 이러할 때에 변호사가 있다. 예수님이 계신다. 보혜사가 계신다. 보혜사가 나오셔서 변론할 때에 무어라고 하겠는가? 판사시여! 재판관이시여! 하나님이시여! 아버지이시여! 아무개는 죄가 있다. 예수를 믿기는 믿었어도 죄가 있는 것은 분명히 인정하는데, 회개도 못했고, 그러면 나의 억울하게 죽은 것은 어떻게 것인가? 보상으로 오늘 우리가 가는 것이다. 나의 죽은 보상은 무엇으로 하겠는가? 그러면 재판장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원하시느냐? 저희의 영혼을 원하신다. 아무개의 영혼을 원하신다. 강도의 영혼을 원한다고 하면 어찌 도리가 없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다. 예수가 없이 죽었기 때문에 많은 죄인들이 구원받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없이 회개하면 좋은 것이다. 그리고 죄를 회개하고 깨끗할 죽을 없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회개 잘하는 것이 어쨌든 복이 있는 사람이다. 할렐루야! 여러분 오해는 마세요, 여러분이나 내가 죄를 가지고 죽어서는 아니 것이다. 다시 2:1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하셨다. 1) 이는 최후의 심판을 통하여 소멸되는 ! 날을 말한다.

 

그러나 준비 자는 그렇지 않고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전혀 관계가 없다. 2) 이때 25:51절에양과 염소가 구분되는 순간이다. 여기서 양은 알곡이요, 알곡을 모아다가 천국에 들인다고 했다. 염소는 쭉정이요 쭉정이를 모아다가 꺼지지 않는 불에 넣는다고 했다. 그때가 바로 여호와의 크고 날이라고 하셨다. 이제 임박하였으니라고 하셨다. 여호와의 날이 임박할 때에 마지막 차를 타는 자는 복이 있고, 마지막 순간에 아슬아슬하게 차를 타는 자는 최고의 복을 받았으나, 그렇지만 이것은 아주 불안한 것이다. 끝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반항하는 자들은 결국 둘째 사망에서 심판을 받아서 영원한 영멸에 들어가는 것이다. 영원히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해서 2 1절의 말씀이 끝난다. 거듭 말하면 날이 오기 전에 오늘 우리는 어서 속히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요엘은 2800 전에 사실을 이미 내다 보았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같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이미 미래를 보았다고 했다. 주의 , 여호와의 날이 임박했음을 보았다. 이스라엘은 1948년에 독립되었다. 세대를 50년으로 본다면 이미 50년이 지났다. 이것을 생각해볼지라도 여호와의 날이 임박했음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주님이 오실 그날까지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한다.

 

본문 2:2에서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라고 했다. 이는 흑암의 세력을 말한다. 이는 또한 7 대환난의 시대를 가리킨다. 다음으로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라고 했다.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날이라 말씀을 24:29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쉽게 말한다.

 

9:2저가 무저갱을 여니 구멍에서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그랬다. 9:2에서 저가? 떨어진 별을 가리킨다. 여기 떨어진 별은 사단 마귀도 있고, 마지막 쓰임 받는 적그리스도도 있다. 이는 마귀이다. 그가 구멍에서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를 낸다고 했다. 연기?사상을 가리킨다 연기 같은 것이 올라오는데, 해와 공기가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진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예수님을 가리키며, 진리를 가리킨다.

 

그런데 마지막 , 영적으로 생각한다면 마지막 때는 마귀의 권세, 사상이 세상 사상, 문화, 이러한 것들이 결국 진리를 어둡게 만든다는 것이요, 혼탁케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들이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어둡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된다. 해가 빛을 발하지 못해서 캄캄하고 어둡다. 마지막 때에 이렇게 된다고 했다. 이것이 참으로 무섭다고 했다. ( 32:7)내가 너를 끄듯 때에 하늘을 가리워 별로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우며 달로 빛을 발하지 못하게 것임이여라고 했다. 이렇게 같은 말을 했다. ( 5:20)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 했다. 이것도 마지막 그렇게 된다는 말씀이다.

 

( 1:15) 날은 분노의 날이요”“환난과 고통의 날이요”“황무와 패괴의 날이요”“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구름과 흑암의 날이요라고 했다. 16)보면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했다. 이처럼 처처에서 마지막 때에 일어날 사건에 대해서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다. 스바냐는 3장으로 되어 있는데, 1:18, 2:15, 3:20, 53절이다. 그런데 스바냐의 기록된 말씀의 내용은 무섭고 떨리는 경고의 나팔소리이다. 마지막 결코 일어날 사건을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강단에서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초림 때는 사도 베드로가 당시 사람들에게 바로 설교를 했고, 내용은 요엘서 강해를 했으며, 당시에 마음이 약한 자들은 어찌할꼬 하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으며 구원받은 역사가 일어났다.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요엘서 강의는 계속해서 살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불안과 공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 설교의 핵심은 미리 미리 때를 준비하자는 말씀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