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강해(33)

!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며...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

요엘 1: 13~20 작성자 정기남 목사

 jungginam.jpg지난주간 이어서...

 다함께 ( 1:20)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아멘 말씀에서 들짐승은 염소를 가리킨다. 그리고 세상 사람을 가리킨다. 들은 세상을 가리키고, 짐승은 예수를 영접지 아니한 인생들이다. 악인들도 염소요 들짐승이다. 또한 이들은 죽은 자들이요, 흙덩이에 불과하다. 성경에 에서를 가리켜 들사람, 들짐승이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염소 같은 인생을 들짐승이라고 부른다. 망할 자들을 가리킨다. 바로 여기 짐승들이 마지막 때를 당하고 보니헐떡거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마지막 때를 당하고 보니 그때 하나님을 부르고 찾고 주님을 향하여 무엇을 달라고 구하며 헐떡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용이 없다. 마지막 발악하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시내가 말랐다고 했다. 시내가 말랐다는 것은 교회가 말씀이 말라버리고 없다는 것이다. 하늘 문이 굳게 닫쳐있기 때문에 시내가 말라버릴 밖에 없다 시내는 교회요, 강물도 교회이다. 작은 시내도 교회요, 강도 교회이다. 옹달샘도 교회를 가리킨다. 요한 계시록에는 쑥이 샘물에 떨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마지막 때는 교회이든, 작은 교회이든 망한다. 개척교회도 망한다. 말씀이 말랐기 때문이다.

 

때가 바로 삼년 일어날 사건이다. 교회가 때는 말씀이 완전히 말라서 없다. 그러므로 삼년 때는 말씀이 마르기 전이라 있다. 증인이 활동하는 기간은 그래도 말씀이 바닥나지 않은 때이다. 성경대로 교회가 말씀이 말라버릴 때가온다. 교회이든 작은 교회이든 개척 교회이든 하늘 문이 닫혀진고로 물이 없다. 말씀이 오염되고 없이 물을 받아 마시고 죽는다. 질식해서 죽고 만다. 참된 진리가 없는 때가온다.

 

다시 20절을 보면들의 풀이 불에 탔다고 했다여기서 들은 가지 개념으로 있다. 들은 들인데 풀이 풍성한 초장은 교회를 말한다. 성경에서 푸른초장이라고 했다. 또한 믿음의 세계도 들로 말씀한다. 반대로 세상도 들이다. 좋은 풀이 있는 곳은 영적인 들이다. 23편에서 들은 푸른초장이다. 그러나 마지막 때는 들이 말라서 꼴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에 타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때를 알아야 하겠기에 우리는 말씀을 이렇게 정리해서 보는 것이다. 이점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27장을 생각하면 바울이 1 2 전도를 마치고 마지막에 로마로 간다. 바울은 알렉산드리아의 배를 탑니다. 배는 276명이 타고 있었다. 아주 배라고 있다. 여기서 인솔자는 백부장 율리오였다. 배가 출항한지 얼마쯤 후에 미항(아름다운 항구)이라는 곳에 들어간다. 거기서 바울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다가 계시를 받는다. 계시의 내용은 바울이 배가 항해를 하는 중에 변을 당하리라는 것이다.

 

27:9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는데, 바로 금식하는 절기가 710일이 된다. 그런데 절기 중에는 지중해에서 발달한 태풍이 불어오는 때이다. 우리나라에도 매년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 태풍이다. 그러니까 금식절기가 지나면 항상 지중해에서 정기적으로 태풍이 불어온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때에 바울이 기도 중에 계시를 받았다. 그리고 계시 받은 내용을 선장과 선주에게 전해 것이다. 배가 이대로 항해를 계속할 경우 반드시 풍랑으로 인하여 배는 깨어지고 많은 인명피해가 있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항 즉 아름다운 항구에서 출항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항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가 겨울이 지난다음에 출항하는 것이 좋다고 일러 주었다. 여기서 바울이 겨울이 지난 다음에 출항하라는 것은? 앞으로 되어질 일을 내다 것이며, 금식하는 절기를 지나서 미항을 떠나자는 것이다. 그래서 27:11 보면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믿더라 했다. 다음으로 항구가 과동하기가 불편하다. 다시 말하면 미항이란 아름다운 항구는 모든 면에 있어서 머물러 있기가 불편하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즐길 있는 오락장도 부족하고 극장도 별볼일 없는 곳이다. 그래서 미항보다는 그레데 있는 뵈닉스 항구로 가자는 것이다. 뵈닉스 항구로 가자는 수가 절대 다수이다.

 

그래서 ( 27:12~13) 보면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그랬다.


그러나 14절에서? ( 27:14) 얼마 못되어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 27: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그랬다. 그리고 계속해서 읽어보면 너무도 일이 급하게 되자 배에 싫고 있던 모든 보따리를 강물에 던져버린다. 그리고 14 동안 지중해에서 죽을 고생을 다하다가 14일이 지난 다음에야 생명을 건질 있었다. 상항에서 그들이 올라간 육지는 바로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고 했다. ( 27:40)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킷줄을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을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그랬다.

 

물이 합쳐진 곳에서는 배가 깨어지는 곳이다. 매우 위험스러운 곳이다. 배가 깨어지고 깨어진 배의 널조각을 타고 당도한 곳이 있는데 그곳 이름이 멜리데라는 섬이다. 멜리데란 피난처, 그런 의미가 있다. 거기서 겨울나고서 봄에 로마로 것이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여기서 유라굴라 광풍은 앞으로 땅에 일어날 7 대환난 일어나는 아마켓돈 전쟁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에 따뜻한 봄에 로마로 간다는 것은 천년세계에 들어가는 모형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물이 합쳐진다는 것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말하는데, 이데올로기가 합쳐지게 되면 이제는 우리 교회들이 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알렉산드리아 배는 배인데, 배가 깨어진다. 여기서 배는 바빌론 성을 가리킨다. 바빌론이 깨어집니다. 배가 깨어질까요? 금식하는 절기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언제나 희년을 머릿속에 두고 삽니다. 내가 땅을 살지라도 땅을 파는 사람이 동안 땅을 사용했었는 가를 알아보고 삽니다. 소유주가 30 년을 사용한 것인지, 50 년을 사용한 것인지, 50 희년을 계산한 다음 사용한 기간만큼 값을 감한 다음 땅을 사는 것이다. 여기서 희년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천년왕국을 가리킨다.

 

25장과 27장을 보면 희년이란 말이 20 나온다. 희년 50년에 20년을 곱하면 천년왕국이 된다. 희년은 자유가 선포되고 모든 노예가 해방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덴이 회복되는 희년 제도는 우리에게 천년왕국시대를 보여준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년 절기 가운데 나팔절기에 나팔을 불게 된다. 여기서 나팔을 부는 이유는 10 후에 속죄절이 온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속죄절이 되면 대제사장은 1년에 성소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대제사장이 1년에 지성소에 들어가는 , 속죄절에 죄가 있다면 성소에 들어갈 없다. 만일 죄가 있으매도 불구하고 성소에 들어갔을 대제사장은 즉사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속죄절이란 심각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5일이 지나면 속죄절을 지내기 위하여 탠트를 치고 그곳에 들어간다. 지금도 그들은 마당이나 지붕위에 종려가지를 꺾어다가 집을 만든 곳에서 산다고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바로 초막을 말한다. 초막은 천년왕국을 가리키고 있다. 21장을 보면 천년왕국에 여호와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이 내려오는데 모든 눈물을 씻기시고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더라고 했다. 장막이 바로 천년왕국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절기가운데 나팔절과 속죄절과 초막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에 대한 절기이다. 여기서 말한 절기는 구약적인 절기가 아니라 신약적인 절기에 맞추어서 보는 것이다.

 

또한 절기는 영적인 것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것이다. 27장에서 선주와 거기타고 있던 사람들이 금식하는 절기를 무시하고 항해 도중 무엇을 만나는가? 유라굴라 광풍을 만난다. 절기 때에 그들이 머물러 있는 아름다운 항구 즉 미항에서 바울의 말을 믿고 떠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의 말을 거절한다. ? 거절했는가? 이유를 가지 든다면, 하나님의 절기를 무시한 번째 이유는 인간의 경험, 자신의 경험을 중요했기 때문이다. 자기 경험주의를 앞세운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복음을 전하다가 쇠사슬에 포박이 죄수의 몸으로서 끌려가고 있다. 그러므로 죄수의 말을 믿지 않고 배를 움직이는 그들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백부장은 선주와 선장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믿었다는 것이다. 백부장이 선주와 선장은 바울보다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이점이 바로 경험 때문이다. 물론 경험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경험 때문에 하나님의 예언된 절기를 무시한 것이다. 결과는 배가 깨어지고 고통이 덥쳐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