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625)... 生老病死
아름다운 세상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당신이 있어 아름다운 세상” 3ㆍ1절을 맞아 가족과 함께 연희동 소재 한식 전문식당인 ‘수빈’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리 가족이 가끔 방문하는 이 식당에서 주로 1층에서 식사를 했는데, 3월 1일에는 2층에 좌석이 예약되어 2층 주방 입구 벽에 걸려 있는 액자에 적혀 있는 위 ‘글귀’를 보았다.
3월 1일자 ‘조선일보’ 1면에 <출산율 1.05명... 세계 유례없는 쇼크>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우리나라가 발전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 위하여 ‘귀여운 아기’들이 많이 출생해야 하는데, 작년 신생아(新生兒) 수는 35만7700명에 그쳐 2016년(40만6200명)보다 11%나 급격히 감소했다. 연간 출생자수는 2012년 48만4600명(출산율 1.30명), 2014년 43만5400명(1.21명)으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合計出産率)은 1.05명으로 종전 최저치였던 2005년 1.08명보다 더 낮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평균인 1.68명(2015년)을 크게 밑돌며, 저출산(低出産) 국가로 꼽히는 일본(1.46명), 싱가포르(1.24명)보다 낮다. 전 세계적으로 대만(2010년 0.89명)을 제외하면 1.05명을 기록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이란 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15-49세)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를 말하며, 국가별 출산력(出産力) 수준을 비교하는 주요 지표로 이용된다. 우리나라는 1970년까지만 해도 합계출산율이 4.71명에 달하여 한 해 신생아는 100만명이 넘었다. 이에 정부가 앞장서서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며 산아제한정책(産兒制限政策)을 폈다.
우리나라 여성의 출산율은 정부의 가족계획정책, 초혼(初婚) 연령 상승, 미혼율(未婚率) 증가 등으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젊은 층의 ‘혼인(婚姻)에 대한 가치관 변화’를 보면 미혼자의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10명 중 5.6명(2008년)에서 2016년 3.8명으로 줄어 저출산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젊은이들 일자리를 늘려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높여야 한다.
가임(可姙)여성 감소, 혼인 건수 감소, 만혼(晩婚), 취업난 등으로 인하여 저출산 문제가 계속되면 5-7년 내 신생아 수가 20만명대로 추락하여 ‘국가적 재앙’을 직면하게 될 수 있다. 지난 12년간 126조원 예산을 저출산 정책사업에 투입했으나 실패했다. 이에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로 바꿀 근본적 저출산 대책이 나와야 한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현상까지 겹쳐져서 지난해 노인 인구가 아동 인구를 추월했다. 출생아와 사망자 수의 차이인 자연증가 인구가 7만2000명으로 2016년 12만5416명보다 크게 줄었으며,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았다. 지난해 사망자는 28만5600명으로 1983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사망자(2만6900명)가 출생아(2만5000명) 보다 1900명이 많았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즉 인간의 일생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다. 노화ㆍ장수학자들은 인간의 한계수명을 120세로 보고 있다. 인간의 수명을 성서(Bible)적 차원에서 볼 때 구약성서 창세기(Genesis)에는 아담이 930세, 셋이 912세, 에노스가 905세, 최장수자인 므드셀라가 969세까지 살았다. 그러나 창세기 6장 3절에 인간의 한계수명을 120세로 규정해 두었다. 즉 “생명을 주는 나의 영이 사람 속에 영원히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살과 피를 지닌 육체요, 그들의 날은 120년이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요즘 ‘100세 시대’가 도래했다고 하나, 필자의 주변인 중에 100세를 넘긴 사람은 아직까지는 없다. 우리 장인어른(1919년생)도 작년에 98세에 별세했으며, 우리교회(연세대학교회) 교인 한 분(1918년생)이 금년 가을에 100세가 된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빌리 그레이엄(1918년 9월 7일 生) 목사가 99세를 일기로 2월 21일 노스캐롤라니아주(州) 몬트리트 마을(인구 700명)의 자택에서 소천(召天, demise)했다.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본명: William Franklin Graham Jr.) 목사의 추도식이 2월 28일 워싱턴 연방의사당 중앙홀에서 거행되었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상ㆍ하원 지도부 등을 비롯한 많은 조문객들이 참석했다. 장례식은 3월 2일(음력 正月 대보름) 고향인 노스캐롤라이나주(州) 샬럿에 있는 ‘빌리 그레이엄 도서관’에서 엄수된다.
빌리 그레이엄은 16세 때 성령(聖靈)의 은혜를 체험하고 고교 시절부터 전도에 힘썼다. 1940년 플로리다 성서신학교(Florida Bible Institute)를 졸업하고 남침례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43년 일리노이주 웨스턴 스프링제일침례교회에서 목사로 시무했으며, 1947년에는 노스웨스턴 성서학교 교장과 대학장을 역임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1949년 로스앤젤레스(LA) 전도대회 중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신앙을 갖게 되면서 미국 전역에 알려졌으며, 1950년 빌리 그레이엄 복음전도협회를 설립하고 세계 전도 활동에 나섰다. 1954년 영국 런던 집회를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세계적 부흥집회 강사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후 성가 지도자와 성악가를 대동하고 전도팀과 함께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는 6대주 185개국 이상을 다니며 2억1500만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한국 교계(敎界)에도 잘 알려진 인물인 그레이엄 목사는 1952년 북한의 6ㆍ25남침전쟁 당시 서울과 부산 집회에서 피난민들을 위로했으며, 1956에는 서울운동장에서 8만여 명이 모여 집회를 가졌다. 1973년 5월 16일부터 27일까지 전국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집회를 가졌고,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여의도 광장에서 매일 집회를 가졌다. 마지막 날인 6월 3일 낮에는 115만이 여의도광장에 모였고, 이 기간 동안 연인원 334만 명이 모여 4만 4천명의 결신자(決信者)를 내는 등 세계 전도 사상 괄목할 만한 기록을 세웠다. 1972년 朴正熙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에 초대형 아스팔트 광장을 만들었으며, 이듬해 1973년에 전도대회가 열렸다.
1973년 교파(敎派)를 초월해 100만 인파가 몰렸던 서울 여의도광장 ‘빌리 그레이엄 전도집회’에서 통역을 맡았던 당시 39세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였던 金章煥(현 극동방송 이사장) 목사가 덩달아 유명해 졌다. 김장환(별칭 빌리 킴) 목사는 1934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6ㆍ25전쟁 때 미군부대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하우스보이’로 일하던 중 칼 파워스 미군 상사의 주선으로 1951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58년 밥존스 대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귀국 후 12명의 신도로 수원중앙침례교회를 설립했다.
한국에서 열린 전도대회 통역을 그레이엄 목사 측에서 韓景職 목사께 부탁했으나 당시 70대였던 한 목사가 사양하면서 김장환 목사를 추천했다. 전도대회 이후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한국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으며, 김장환 목사는 매년 미국으로 그레이엄 목사를 방문했다. 김장환 목사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 장례식에 참석한다.
그레이엄 목사는 지난 1992년에는 북한을 방문하여 선교집회를 열고, 金日成 당시 주석을 만나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도 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부인 루스 벨 여사는 선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1931-1937년까지 청소년기의 학창시절을 평양에서 보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복음(福音) 전도사’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로 꼽혀 왔다. 그는 미국 대통령들의 ‘영적(靈的) 멘토’로 활동했으며, 해리 트루만 대통령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은 그레이엄 목사를 찾아 영적 조언을 구했다. 또한 세계 정치 지도자들의 영적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인물 2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2005년 전도 집회를 끝으로 설교자로서의 삶을 은퇴했다. 그의 전도여행에서 가장 많은 인파를 기록한 것은 1973년 6월 3일 115만명이 모인 서울 여의도광장 집회였으며, 미국 집회에서는 91년 9월 뉴욕 센트럴파크 집회로 25만명이 모였다.
2007년에는 아내와 사별(死別)의 아픔을 겪기도 했으며, 자택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온라인 목회 상담 사역을 펼쳤다. 그는 20년 가까이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에 시달렸으며, 최근에는 기관지염, 폐렴 등으로 힘든 말년을 보냈다. 199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장례식에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고, 우리 모두를 평등하게 만든다”고 말한 것과 같이 그도 자연스러운 노쇠(老衰)현상을 겪으면서 죽음을 맞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애도(哀悼)성명을 통해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지난 세기 가장 위대한 인물이자 미국의 영웅이었다”며 “그가 ‘하나님의 대사(God's Ambassador)’라는 사실은 그가 남긴 삶의 족적(足跡)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100세가 되는 올해 9월 7일 ‘백수(百壽)잔치’를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 하나님 나라에서 열기 위해 소천 하신 것 같다. 사랑하는 주님 품에서 편히 쉬소서! 삼가 고인의 명복(冥福)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