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키운 어머니들

 

2 대통령을 키운 어머니들.jpg 자신의 아이들을 먼저 세상으로 보내는 가슴 아픈 일을 여러 겪어야 했다. 로버트 케네디는 케네디가 그런 비극을 겪으면서도 또다시 가족을 동원해서 치열한 정치판으로 뛰어든 이유가 무엇이냐? 질문을 받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잠시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저희 어머니를 만나 보셨나요? 라고 말했다.

 


로즈는 아이들의 성공을 위해 자신이 있는 모든 것을 했다. F.케네디 대통령의 어머니 로즈 피츠제럴드 케네디는 보스턴 시장의 딸로 태어났다. 1974년에 펴낸 자서전에서 나는 위대한 책의 작가나 걸작을 남긴 화가보다는 위대한 아들, 딸을 위대한 어머니로 알려지고 싶다고 말했다. 로즈는 자녀를 인재로 길러내는 여성의 보람이라고 생각했다. 로즈 여사의 교육법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로즈 여사는 4 5녀의 생년월일, 건강, 기타 성장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기록한 육아일기를 빈틈없이 썼고 육아일기를 교육 자료로 삼았다. 로즈는 자녀들의 관심과 흥미를 만족시키려고 물건을 때도 함께 다녔다.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에는 알아듣기 쉽게 차근차근 대답해 주었다. 외할아버지에게서 어머니에게로,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아들로 이어진 끈끈한 관계는 로즈피츠제럴드와 로즈의 아버지의 관계에서 가장 뚜렸하게 나타난다.

 

로즈의 어머니 메리 조세핀 하논은 농촌 출신 아가씨치고는 용모가 뛰어났고 아주 멋졌다. 내성적이고 신앙심이 깊던 메리는 시장인 남편의 공적 생활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대신 로즈가 10대부터 어머니를 대신하여 역할을 맡았다. 로즈는 정치에 대한 사랑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고 밝혔다. 아버지는 내게 역사와 정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주셨고 생각해 보도록 배려해 주셨다.

 

로즈에게 어머니라는 단어는 여성형 명사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능동적인 동사로서 최고의 직업을 뜻한다. 그리고 그녀는 엄청난 힘을 기울였다. 회고록 추억의 순간들(Times to Remember)에서 로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아이를 기르는 일을 사랑과 의무 때문에 해야 하는 일로 여기지 않았다.

 

나는 세상의 어떤 명예로운 직업 못지않게 재미있고 도전적이며, 최선의 노력을 요구하는 직업으로 생각한다. 로즈 여사는 식탁을 자녀 교육의 장으로 적극 활용했다. 우선, 아이들에게 식사 시간을 지키게 했다. 어릴 때부터 시간 개념을 몸에 익히게 하려고 했다. 식사 시간을 가족들이 토론을 나누는 자리로 이용했다.

 

로즈 여사는 아이들의 눈에 띄기 쉬운 곳에 게시판을 마련해 두고 신문, 잡지 등에서 오린 중요한 기사를 붙여 놓았다. 식사 기사를 화제로 올리고 각자의 의견을 발표하고, 듣고 생각을 받아들이는 민주적인 정신을 실천한 것이다. 플리머스 부두는 로즈가 스테이션왜건에 아홉 명의 아이들을 태우고 소풍 장소다. 로즈는 팜비치에 있는 저택에 있을 때면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인디언 마을로 여행을 갔다.

 

유니스는 우리는 차를 타고 인디언 보호 거주지로 가서 인디언들이 어떻게 사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우리가 것에 대해 질문했다고 회상했다. 그것은 역사를 느끼게 해주는 로즈의 교육 방식이었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내는 간단한 시험을 싫어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머니를 즐겁게 해주고 싶어 했으며, 다른 아이들보다 앞서기를 원했다.

 

로즈 케네디와 조제프 케네디 부부는 아들에게 훌륭한 미래를 보장해 주려고 아낌없이 투자했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아직은 대통령 당선자라는 호칭이 익숙하지 않은 F. 케네디는 어린 시절 그가 받은 영향에 대해 질문을 받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람들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어머니 공이 크다. 항상 우리와 함께 분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책을 읽어 주셨고, 플리머스 부두며 올드니스 교회 역사적인 장소에 많이 데려가 주셨다. 나에게 역사에 대한 흥미를 불어넣어 주셨다. 타임지의 휴시디 기자에게 말했다.

 

케네디가는 별날 정도로 가족간의 유대가 끈끈하다. 케네디가는 자족적인 집단이라고 로즈는 설명했다. 저녁 식탁에서 나누는 대화로 아이들은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았다. 케네디 대통령은 어머니는 우리가 자기 수양을 있도록 해주었다. 우리가 좋은 책을 읽고 좋은 대화를 나눌 있도록 항상 신경을 썼다, 말했다. 케네디가 캘리포니아에서 영화 사업을 하고 있을 때는 번에 주씩, 때로는 달씩 출장을 갔다. 그러다 집에 돌아오면 저녁 식사 시간에 주로 아버지가 혼자서 유명 인사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점심을 함께 먹은 유명한 사람들과 그가 다녀온 재미있는 장소들에 관한 이야기에 매료당했다.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학교생활과 운동에 관한 일을 시시콜콜하게 적은 편지를 정기적으로 보냈는데, 아버지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아이들에게 일일이 답장을 써주었다. 조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아주 열성적인 아버지였다. 그는 자신이 지닌 막대한 재산과 그것이 발휘하는 영향력보다 아이들이 훌륭한 유산이라고 생각했다. 조는 아이들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아이들이 느낄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조는 아이들이 기대에 미칠 때에는 엄하게 대했다. 조는 한마디로 무슨 일을 하건 이기라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역시 삶과 정치의 실체를 아이들에게 일깨워 주면서 아버지 몫을 다했다. 그러나 그는 과거에 대한 지적인 사색을 즐기기보다 현재의 사건들이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쨌든 로즈가 아이들과 실제로 함께한 사람이었다. 로즈는 아이들에게 현재에 뒤떨어지지 않으면서 역사상 사건들을 생각해 보고 미래에 일어날 흥미로운 사건들을 그려보라고 촉구했다. 정치가 고귀한 일이라는 생각을 아이들에게 심어 주었다. 부모의 이런 뜻을 받아들여 아이들은 순서대로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서 역사에 자신의 자취를 남겼다.

 

질서정연함을 유지하려고 로즈는 규칙들을 정해 놓고 아이들이 그것을 어겼을 때는 회초리를 들었다. 어머니는 훌륭한 권투 선수가 되었을 거예요. 어머니가 오른팔로 때리는 솜씨는 대단하거든요. 아들 테디는 말했다. 아이들을 키울 체벌해서는 된다고 요즘 전문가들은 주장하지만, 로즈는 아이들에게 체벌을 가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손바닥이나 볼기를 맞고 나면 회초리라는 말만 해도 아이들의 행동에 좋은 효과가 나타난다. 나는 사랑뿐만 아니라 제약도 두었다. 아이들을 때리지는 않았지만 아버지 조도 아이들이 잘못하면 호되게 꾸지람을 했다. 아이들이 제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로즈는 각자가 지닌 장점들을 강조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각자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라고 가르쳤다. 로즈는 맏이에게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이들 모두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키우고 싶다면 먼저 아이가 부모에게 와서 안녕히 주무십시오 하고 인사를 하거나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를 하면 동생들도 그렇게 따라 한다고 젊은 어머니들에게 조언한다. 로즈 케네디는 죽는 날까지도 어머니로서 의무를 다했다. 예전에 둘째 아들 잭이 말했듯이 어머니는 모두를 결합시켜 주는 접착제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