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서 강해(16)

교회의 환난(1)

요엘 1:7~12절                                                                        작성 정기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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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7에서?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 아멘

 

여기서 그들이란 6절에 등장한 자들이다. 사자들로부터 시작해서 그들은 4절에‘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고 했는데 이들은 곧 적그리스도를 위시해서 암사자의 어금니를 가진 아주 강한 자들이 와서 괴롭힌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지독히도 핍박을 받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포도나무는 무엇을 말하는가?

 

15:1에서‘나는 참 포도나무요’라고 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가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또한 오늘 우리교회를 가리키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교회가 우리 교회들이 어려운 환난이 닥쳐오고 큰 고통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본문에서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져서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여러분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표상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구약교회를 말하고, 또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나라를 말한다. 오늘 이 시대에 이스라엘의 국화가 무화과나무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와 또 이스라엘교회 ‘또 구약교회 율법교회를 무화과나무로 비유한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는 구약이며, 포도나무는 신약을 말해준다. 성경을 이렇게 이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무화과나무는 율법으로 보고, 포도나무는 복음으로 보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문제는 7절에서 무화과나무를 긁어서 하얗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모든 가지들이 그만 하얗게 되었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에서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가지가 하얗게 되었으니. 이 말은 교회가 성도들이 큰 어려움과 큰 환난이 닥쳤음을 말해준다.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되었으니, 그의 가지인 성도들은 그만 하얗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이 적그리스도를 위시해서 마지막 때 등장하는 짐승들에 의해서, 그리고 이적과 권세와 능력에 의해서 황충이와 같은 악마적인 것들로 인하여 완전히 삼켜져서 하나님의 교회가 우리 성도들이 엄청난 환난과 어려움을 당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여러분 무화과나무가 잎이 활짝 피었고, 포도나무가 잎이 활짝 피었다는 것은 오늘 은혜시대를 가리킨다. 또한 잎이 이렇게 활짝 피었다는 것은 오늘 교회가 크게 부흥이 되고 세계적으로 복음의 잎이 활짝 피어있다. 잎이 무성하게 피어있기에 보기에도 아름답다. 또한 포도나무 넝쿨도 세계를 향하여 국경을 넘고 넘어서 무성하게 가지가 뻗어있고 잎이 청청하다. 아주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교회들이 잎은 활짝 피었는데 열매가 없다는데 심각하다. 때가 되었으매도, 꽃이 피었으매도 열매가 없다고 했다. 이는 말세에 살았다하는 이름 예수님의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교회가 죽어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심각한 일이다. 말세에 사데교회와 같은 교회, 죽은 교회가 있다는 말씀이다. 

 

 사 1:8~9“딸, ‘교회’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징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았도다”고 했다. 여기서 시온도 교회이요, 딸도 교회이다. 그런데 딸 시온은 아주 참한 교회를 가리킨다.

 

 이렇게 참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포도원의 망대같이 원두밭의 상징막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남았다고 이사야는 말하고 있다. 사실 딸이란 참으로 아름답고 귀엽고 예쁘다. 그리고 시온은 너무도 좋고 아름다운 교회이다. 그렇게 좋은 교회가 지금 어떻게 되었다고 했는가? 겨우 남았다고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도 겨우 남았다. 그 외의 교회들은 다 망하고 만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이나마 남겨두시지 않으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같고 고모라 같았을 것이라고 하셨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조금 남겨둔 것도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기 때문이다. 아니 보호해 주셨기 때문이다. 보호해 주시지 않으셨더라면 다 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내가 택한 자를 위해서 그 날을 환난의 날을 감해 주지 않으면 어떠한 육체도 견디지 못한다고 하셨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믿음이 좋고 믿음이 있다할지라도 계속해서 고통을 주고 환난을 주고 넘어지는 일이 계속된다면 두 손을 들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그 고난과 환난으로 지치고 고통스러워 할 때에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 그 환난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음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여러분과 내가 죽으면 죽었지 짐승의 수요 사람의 수인 육백육십육인 표를 받지 않겠다는 순교의 각오로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겠다는 신앙으로 결단하고 하나님 앞에 약속할 수 있을런지요?

 

 한때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소위 군부독재하에서 국민들이 불안하게 살아갈 때에 그 당시 억울하게 죄인이 된 죄 없는 민간인들, 학생들이 보안법에 걸려들어서 고문을 당하는데 얼마나 그 고문이 견디기가 힘들었으면 허위자백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정치인들 가운데도 고문당했던 분들이 많았다. 대통령을 역임한바 있는 분 가운데도 허위 자백은 하지 않았지만 죽음 직전에서 구출된 바 있다.

 

 이처럼 짐승의 수요 사람의 수인 육백육십육이 등장하면 이제 더 무서운 고문과 대 학살이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무서운 시대에 그 고난을 참아내며, 짐승 앞에 절하지 아니하고 육백육십육인 짐승표를 받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이를 거부하고 그 신앙을 끝까지 지키기 위하여 고난을 견딜 수 있을런지요? 현재 이 말씀을 접하시면서 나는 자신 있다며 큰 소리칠지 모르지만 막상 그 환난의 날이 닥쳐오면 참으로 자신이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믿음 있는 신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오늘 우리 교회 지도자들이 이러한 날이 오기 전에 눈물로 기도하며 성도들에게 바로 가르치고 신부단장 시켜야 한다.

 

 이 진리를 바로만 배웠다면 순교도 웃으면서 찬송을 부르면서 감사하면서 주님의 곁으로 달려갈 수 있다. 우리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고 배워야 한다. 그 날이 닥쳐오기 전에 지금 미리미리 신앙생활을 바로 해야 한다. 그리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3:1에 ‘사데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신 이가 가라사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고 하셨다. 오늘 우리 교회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오늘 우리 신약교회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오늘 현대인들 중에는 입으로는 믿음이 충만한 1등 신자이다. 또한 자신의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우리 주님이 보실 때는 죽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 많다는 것을... 우리가 아무리 살았다고, 그리고 환난을 통과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죽은 자라고 하셨다. 이러한 자들은 환난이 주어지지 않았어도 죽은 자들이기에 더 거론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말세교회의 현상이 아닌가, 구약에도 신약에도 그렇다는 말씀이다. 

 

다음주간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