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과 배반의 세월

송택규 목사(지저스타임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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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자신의 자녀가 사랑스러워 자신의 가장 값진 자유의지라는 보배의 검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자유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선물입니까. 자유가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하기 두렵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 귀한 자유를 남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유라고 하는 미명하에 자신의 사욕을 위해서 온갖 음모와 중상모략으로 상대방을 음해하고 해하려 하는 것은 선한 자유가 아니라 악한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상대방이 억울하여 반격이라도 시작되면 서로 죽기 살기로 목숨을 건 싸움으로 발전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 틈새를 이용하여 양의 탈을 쓰고 숨어 기회만 보던 늑대들이 탐욕의 이빨을 드러내며 배신과 배반의 굿판을 벌리는 일입니다. 이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현재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바라볼 때 두렵습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배신과 배반의 세월 한 가운데 서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유의지를 주시면서 배신과 배반을 염려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은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라는 제어장치를 두시고 “따먹지 말라 따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엄명을 하셨든 것은 아닌지요.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염려는 현실화 되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고 엄중한 법을 어겨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눈은 밝아 졌지만 진리가 없어 선악을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 서로가 서로를 정죄하며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부터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배신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 왔고 고난과 고통의 세월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후 인간들은 배신의 원죄로 말미암아 고난 중에 살다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선악과로 인하여 타락한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선악을 분별하는 율법, 즉 십계명을 주시고 반드시 지켜라 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십계명이 선악과였으며, 인간이 영원토록 지켜야 될 윤리와 도덕이었습니다. 이것은 주님도 강조를 하셨습니다. 이것을 지키는 자는 선이고 이것을 지키지 않는 자는 악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윤리와 도덕은 반드시 지켜야 될 기본적인 도리요 계명으로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짐승만도 못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원히 지켜야 될 지고의 가치인 윤리 도덕이 상실 되었습니다. 삶의 원칙인 기본질서의 파괴로 동성애가 합법화 되고 간통죄가 없어졌습니다. 조국을 배반하고,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배반하며, 아내와 남편이 서로 배반하고 배신해도 죄의식 좇아 갖지 않는 무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건 아닙니다. 이런 세상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이 아닙니다.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될 윤리와 도덕을 지키지 못할 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전에 세상의 심판을 먼저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윤리를 어긴 자들을 세상에서는 배신자들이라 부릅니다. “배신자여 배신자여”하는 노래가 있듯이 그들에게는 평생 배신자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닙니다.

 

자녀들은 배신자의 자식, 배신자의 가족들이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래서 배신자는 남의 눈치를 보게 되고 항상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 또 자신도 언제 배신을 당할 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또 다른 배신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큰 죄악입니다. 죄악의 아이콘인 배신과 배반의 세상, 이 나라 젊은이들이 배울 가, 나는 그것이 두렵다는 말입니다. 배신과 배반의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 자신의 죄가 탄로나 처벌이 두려울 때, 둘째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하여, 셋째 이간질이나 모함에 걸렸을 때, 넷째 정책적으로 거짓 투항 할 때, 다섯 번째 전쟁에서 패한 후 살려고 배신하고 배반 할 때 등 모두 동기가 불순하고 불의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레위기 2615절과 17절에서 “나의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나의 법도를 싫어하여 나의 모든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배반할 찐대”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좇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진리는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입니다.

 

중국 역사 소설 삼국지에 보면 난세일수록 영웅호걸들이 난무했고 이때에도 약 사십 여명 이상의 약삭빠른 배신과 배반자들이 날뛰었습니다. 그중에 서너 명의 배반자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첫째 서주의 유비 밑으로 들어가 충성을 다하는 척하던 여포는 자기의 주군으로 모시던 유비를 배신하고 서주의 땅을 빼앗아 맹주가 되었습니다. 윤리적 정당성을 갖지 못한 여포는 배신자로 낙인찍혀 결국 조조와 유비에게 사로잡혀 참수를 당했습니다.

 

두 번째 촉의 미방은 오나라에 항복 하였다가 오나라 마충의 목을 베어 촉에 다시 재 항복 하였지만 촉의 유비에게 죽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는 촉의 장비를 죽이고 오나라에 항복한 장달은 오나라의 장병이 사신으로 촉에 갈 때 압송도중 장비의 장남 장포의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렇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를 어긴 배신자나 배반자들의 끝이 대개는 좋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공의로운 정상적인 사회가 되려면 먼저 인간의 기본적 정신인 윤리와 도덕이 속히 회복되고 진리의 원칙이 살아있는 인격적인 나라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배신과 배반 사회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절망적인 세상이 되어 인류의 파탄은 물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현재와 같은 세상을 만든 죄를 하나님께서 묻는다면 첫째 기독교의 목회자들이야 말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목사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삼아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여 죄악 된 세상을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명은 이 땅의 권세 잡은 자나 박식 자나 돈 많은 자들에게 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종들에게만 준 권세입니다.

 

세상 권세 자들 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고 죄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며 구원받아야할 존재이지 하나님을 능가 하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세상을 깨우는 한해가 될 것입니다. 목회자들이여 크리스천들이여 우리가 먼저 회개하고 하나님의 영성으로 깨어나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윤리와 도덕인 십계명을 회복시키고 진리와 의리와 정의와 공의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세상을 만들어 배신과 배반의 세월들을 저 멀리 지구 밖으로 떠나보냅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보시고 계십니다.

 

주필 송택규 목사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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