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철호 목사(주월교회), 전시회 열어 이웃돕기와 사회복지 등 다양한 활동

 방철호 목사(주월교회 원로·사진)는 교단에 몇 안 되는 민주화운동 인사다. 서슬 퍼런 유신시대 민주쟁취국민회의 광주전남집행위원장 맡았고, 광주항쟁 당시에는 시민수습위원을 맡아 일하기도 했다. 수차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가택연금에 시달렸다.

그는 또한 광주지방과 성결교단을 위해 헌신한 교단과 교계의 지도자였다. 1972년에 광주 주월교회에 부임하여 2005년 조기은퇴까지 35년을 헌신하며 내실 있는 교회로 일구는데 앞장섰고 총회 유지재단 이사, 연금관리위원, 심판위원, 활천사 이사 등을 맡아 교단 발전에도 헌신했다. 교단 총회 때는 강직하고 올곧은 소리로 대의원들에게 호통을 치기도 했다.



 광주시기독교연합회장, 광주시기독교교단협의회장 등 기독교 단체 대표와 한국사회발전시민실천협의회 광주전남 공동대표, 기독시민운동협의회 광주상임회장, 15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한 광주시민사회단체총연합 대표회장 등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단체가 없을 정도다.

그렇게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는 지난 2005년 조기은퇴를 선언했다. 지역사회의 은퇴식 제안에도 ‘검소함과 무욕’을 강조했던 평소 소신에 따라 후임 목사 취임식에서 은퇴선언하는 것으로 40여년의 목회 여정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교회 일에서 물러난 그는 일반 성도로 돌아가 후임 목사와 성도를 섬기고 있다. 후임 목사를 힘들게 한다며 축도도 거부했다. 다만 평소 관심이 많아 은퇴하기 전 설립한 사회복지시설의 이사장으로 노인을 돌보는 일만 맡아 교회를 돕는다.

하지만 그는 은퇴 전보다 은퇴 후가 더 바쁘다. 아직까지 광주 기독교계와 시민사회단체에서 그의 역할을 필요로 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역사회복지에 대한 애정과 관심 때문이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광주지회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1999년부터 광주시 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을 맡아 10여년 이상 헌신적으로 사역하고 있다.

“신부와 수녀들이 시설에서도 안 받는 사람들을 정성껏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에 그런 시설이 거의 없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가질 때가 많았죠. 그래서 소외받는 이웃을 돕는 일에 힘써보자는 생각에서 노인요양시설을 지어 복지단체 대표를 맡아 일했습니다.”

특히 그는 미술을 전공했던 미술인으로 자신의 특기와 장기를 살려 소외된 이웃을 돕는데도 힘쓰고 있다. 목회의 길로 들어서기 전 조선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중등학교 교사로 근무한 그는 군사독재정권 시절 가택연금을 당했을 때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방 목사는 지금까지 17차례 개인전을 열어 그림 판매 수익금 전액을 나눔 사역에 사용하고 있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목회의 길에 들어서면서 붓을 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군사정권 시절 가택연금이 되면서 다시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림을 좋은 일에 사용하도록 하시는 것 같습니다.”

 방철호 목사는 대한민국미술인협회 회원과 한국현대미술대상전 추천작가로 스위스에서 초대전을 열 정도로 실력을 갖춘 중견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선명한 색채감과 과감한 필치는 방 목사의 활달한 성격과 인격을 그대로 닮았다. 꽃과 나무, 산과 바다 등을 주로 그린 그의 그림의 밝고 화사한 색채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여기에 그의 폭 넓은 인맥은 세계적 금융위기가 닥쳤던 지난해 열린 작품전시회에 낸 39점의 작품이 모두 새 주인을 만난 데서 드러난다. 그는 이날 모인 수익금 6900여만원 중 최소 경비를 빼곤 전액 사회복지 시설 등 나눔에 사용했다.

“사실 비용을 남겨 좀 편해져 보자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작품전 명칭이‘나눔을 위한 작품전’인데 그 비용을 다른 곳에 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마음이 들더군요. 결국 전시에 소요된 최소비용을 제외하고는 전액 사회복지 사업에 쓰게 되었습니다.”

그는 30여년 이상을 살아온 교회 뒤편 언덕 위에 작업실을 두고 한 달에 작은 작품은 한 두 점, 큰 작품은 두 서너 달에 한 작품씩 완성한다. 그렇게 작품이 모이면 이웃을 위한 나눔전을 또 개최할 생각도 갖는다.

“나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많은 원로들이 은퇴 이후 특별히 할 일 없이 교회를 간섭하는 경우도 많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교회를 불편하게도 하는데 저는 하나님이 바쁘게 하셔서 행복합니다. 밖의 일을 많이 하다 보니 교회를 대형교회로 키우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후임 목회자가 잘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남은 삶도 지역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사후 시신을 전남대학교 의대에 기증, 의료연구용으로 사용키로 서약한 방철호 목사는 성도와 후배목회자들에게 유언 아닌 유언을 한다. 나중에 자신이 죽으면 장례식도 하지 말고 통장에 있는 작은 돈으로 성도들에게 밥 한끼 잘 대접하라는 것이다. 주월교회에서 그의 작업실로 오르는 좁은 길에서 원로의 흔적을 느낀다.

한국성결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