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한 J군
백석문화대학 조영길 교수(본지 논설위원)

  B고교 3학년 담임을 할 때의 일이다. 하루는 J군이 등교하는데 기분이 몹시 나빠 보였다. 이유를 알아보려고 상담실로 불러서 물었더니, 아버지에 대한 분함을 이기지 못해 대뜸 욕을 퍼붓는데 그야말로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로 소리를 지르면서 마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너무 욕설이 심해 마음 같아선 뺨이라도 한대 때리고, “아버지에게 무슨 그런 말버릇이 있느냐” 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상담을 하는 선생으로서 안내심을 가지고 계속 경청하기로 했다. J군은 얼마동안 이런 저런 욕을 하더니 분이 풀렸는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먼저 사과부터 하고는 아버지에 대해 막말한 것을 사과하고, 아버지에 대한 평소에 가지고 있던 마음을 이야기 하면서 아버지를 훌륭한 분이라고도 했다. 그 때 J군이 그랬던 것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아버지가 너무 지나치게 야단을 치셨기 때문에 화가나서 그런 행동을 한 것으로 지금 기억하고 있다.

필자는 이 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경청해 준 것으로 상담을 끝냈으며, 상담은 성공을 했다. 경청은 다른 사람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에서 나오며 또한 상담자가 자신을 의식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상담의 방향이 내담자보다 상담자에게 집중되어 상담자가 자신의 경험을 그 상황에 삽입시키지 않는 데서 얻어진다. 경청은 언어 뒤에 있는 감정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경청은 감정을 진지하게 대변하는 심적 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감정만이 유일한 동기가 되지는 않는다. 경청은 내담자의 모든 것에 주의를 집중하는 태도이다. 그래서 내담자의 핑계와 모순된 이야기, 비논리적인 말과 두려워하는 것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듣고 그 과정에서 경청은 상담자로 하여금 내담자를 있는 그대로 보도록 돕는다.

상담이 실패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잘못된 경청에 의해서이다. 전문적인 상담자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경청자는 아니다. 언젠가 내가 알고 있는 유명한 상담자의 테이프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내담자가 한마디의 말도 끝나기 전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에게 말해 주고 있었다. 내가 걱정하는 바는 아무리 많은 상담경험이 있다 할지라도 그가 경청하지 않는다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청하는 데는 사람의 모든 능력이 동원되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듣고 판단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마가복음(10:46-52참조)에 소경 바디메오의 이야기가 있다.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심히 추종하는 무리들에게 둘러싸여서 여리고를 지나가고 계셨다. 무리들에게 있어서 바디메오의 처지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도와 달라고 부르짖는 바디메오의 외침에 예수님께서는 머물러 서셨다. 바로 여기서 예수님의 경청에 대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멈추어 서셔서, 무리들로부터 무시당하고, 경원시되었던 한 사람을 주목하셨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그 거지가 소경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게다가 그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까지도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 소경이 말하는 것을 들으셨다. 그의 대답이 무엇인지 알면 서도 그의 대답을 들으셨다. 바디메오가 자신의 일을 말한 그 때에야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구원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일을 행하셨다. 예수님께서 경청을 해주셨던 사람들은 구원의 길, 즉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상담에서 경청은 매우 중요한 많은 것을 내포한다. 아담스(J. Adams)의 주장과는 대조적으로 경청은 내담자의 감정을 존중한다. 감정에 지배당하는 것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우리는 생각보다 감정에 의해서 잘 행동하기 때문이다. 감정은 관계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상담자의 책임 중 하나는 내담자로 하여금 실제 상황에 대한 감정에서 벗어 나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내담자가 어떤 자가 되기를 원하고 또 자신을 어떤 자로 생각하든지 있는 그대로의 그를 사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