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솔직히 말해봐! 너 실제로는 이 주소로 이사를 가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 주소에 주민등록만 옮겨놓은 거지?”“아니예요, 선생님. 저 진짜 이사했어요.”“야! 선생님이 교사 생활 1-2년 하는 줄 알아. 그러면 선생님이 오늘 네가 떼어온 주민등록 상의 주소로 가정방문을 한번 가 봐야겠다.”“안 돼요, 선생님. 엄마 아빠가 이 지역의 학교들이 대입 성적이 좋지 않다고 대입 실적이 좋은 옆 지역 학교 근처에 아는 분이 있어서 그 분 집으로 주민등록을 옮겨놓았대요. 엄마 아빠가 이 정도는 큰 문제가 될 거 없다고 하셨어요. 왜 다른 선생님들은 안 그러는데 선생님만 문제를 삼고 그래요.”

몇 년 전까지 내가 근무했던 M중학교는 큰 내를 사이에 두고 교육열이 높기로 소문이 난 K지역과 인접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중2나 중3이 되면 한 반에 4-5명 정도는 주소를 K지역으로 옮겨 그 지역의 고등학교에 배정을 받는다. 냉정하게 보면 M중학교가 위치한 지역의 고등학교와 K지역의 학교를 비교할 때 외적인 교육 여건의 차이는 거의 없다. 물론 K 지역이 전반적으로 사회경제적으로 안정되었고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높아 K지역의 고등학교에 전반적으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공부라는 것이 어차피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 하는 것보다는 그곳에서 본인이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달린 것이기 때문에 M중학교에 다니던 학생이 K지역의 고등학교로 진학한다고 해서 대학 진학에 유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문제는 아이들이 위장전입이라는 불법 행위와 그로 인한 도덕적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중3 2학기가 되어 고등학교 원서를 쓸 즈음이 되면, 학교에서는 위장전입이 불법임을 여러 번 가정통신문을 통해서 알린다. 그리고 교육청에서는 각 학교에서는 위장전입 학생을 적발하라고 쌍심지를 켠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주민등록 등본이라는 서류만 가지고는 위장전입을 밝힐 길이 없다. 결국 학교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주민등록상의 주소가 바뀐 학생과 학부모에게 물어봄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부모는 학생에게 실제로 이사를 했다고 거짓말을 하라고 신신부탁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자신의 미래에 조금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선 위장전입과 같은 불법은 저질러도 되고 이와 관련된 거짓말은 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을 학습하게 된다. 혹은 이 과정에서 양심의 가책을 참고 견딤으로 양심을 무디게 만드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위장전입을 하지 않고 그냥 자기가 속한 지역의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들 가운데는 위장전입을 통해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들에 대해 부러움을 갖는 아이들도 제법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 위장전입을 통해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들 대부분이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위장전입을 시도하지 않고 그냥 주어진 대로 자신이 속한 지역의 학교로 진학의 폭을 좁혀 버리는 부모님이 무능하거나 답답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은 자신도 커서 어른이 되면 위장전입과 같은 불법을 사용하더라도 자신이나 자기 자녀의 세속적인 성공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게 보이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하겠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고위 공직자들을 보면 위장전입은 고위 공직자가 되기 위한 필수품인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에서부터 시작하여 국무총리, 국무위원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없다. 그리고 그들이 이러한 불법 행위에 대해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자고 하는 말이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 자녀를 좀 더 여건이 좋은 학교로 진학시키기 위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물론 이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행한 위장전입은 대부분 자녀를 다른 지역에 있는 상급학교로 진학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은 부동산 가격도 제일 높은 곳이고, 그곳에 있는 학교는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보내고 싶어하는 제일 인기있는 학교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녀교육을 위해 위장전입을 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자녀를 다른 지역의 학교로 진학시키기 위한 위장전입이 워낙 보편화되었기 때문일 것이고, 한국에서 자녀교육이라는 명분은 어느 정도의 불법을 덮을 수 있는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자녀를 다른 지역의 학교로 보내기 위한 위장전입은 사회경제적으로 상류층이 아닌 중산층에 속한 사람들 혹은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을 꿈꾸는 중하위층에 속한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중학교 2, 3학년 시기, 도덕적 감수성이 민감한 시기에 자녀를 도덕적 갈등의 한 가운데로 밀어 넣는 이 행위는 도덕교육이라는 측면에서는 교육적으로 매우 유해한 행위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 뿐 아니라 그 시기의 많은 또래 아이들의 도덕적 감수성을 한 등급 끌어내리는 행위다.

우리가 정말 자녀를 위하고 우리 자녀가 살아갈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우리 아이가 다른 그 무엇보다 참된 도덕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다음 세대가 좀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자녀교육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위장전입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