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우울증은 결코 정신과에서 다루어야 하는 병이 아닙니다! (2)

 김주원 박사.jpg현대에 존재하는 많은 정신과적인 질병이라고 명명되어진 정신심리적인 병명중에서 가장 흔하고 흔한 것이 정신분열증이나 우울증이다. 정신과적인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반사람들을 정신분열증이라는 카테고리를 정해놓고 그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분류하여 정신분열증이라고 병명을 옷에 붙이는 라벨처럼 붙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기분이나 감정상태 혹은 몸의 상태등의 관찰로 우울증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또는 병원을 찾아온 환자(?)들이 스스로 우울을 경험한다고 하는 개개인들의 고백이나 경험들을 토대로 하여 진단을 한 후 우울증이라고 판단을 하여 그 카테고리로 몰아가서 멀쩡한 사람을 우울증이라는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는 환자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정신과나 신경의학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정신병자로 분류를 하고 또 그에 따라서 어떻게 처방하는 지에 대해서는 이 아까운 지면을 할애하여 장황하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많은 정신과적인 우울증의 이론들이나 학문적인 체계들이 완전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가설로서의 생각들이거나 무분별하게 수용되고 있는 외국의 학문 이론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서나 문화 혹은 가정 사회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았거나 걸름이 없는 무조건적인 외국학문의 수용은 말할 가치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외국의 학문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적용에 있어서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프로이드계통의 심리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Psychosis나 기타 심리학의 아류에서 파생한 오래된 책들을 번역하여 그 이론적인 증거를 배경으로 삼거나 실제로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믿고 환자들을 다룬다는 것이다.
 
 그 흔하디 흔한 성적인 학대(Sexual Abuse)의 예가 한국인들의 정서적이고 정신적인 문제들을 다룸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아동기의 성적인 학대 (Childhood Sexual Abuse)나 기억 (Past memories)을 통한 치료를 지양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유아기 혹은 더 발달되어진 아동들의 엉덩이를 툭툭 때리면서 예쁘다고 하는 것이나 혹은 이웃 사람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아동의 볼이나 기타 신체부위를 살짝 꼬집거나 만지면서 예쁘다고 하는 것은 다분히 한국의 문화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들이다.
 
 예전에는 심지어 미취학 아동의 아래 바지를 입히지 않은 채 놀게 하기도 했고 어른들이 많이 컸다는 말을 하면서 아이들의 생식기까지 만지곤 했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적인 상황을 외국의 이론과 서적에 대입시키다보니 있을 수 없는 엄청난 아동학대 혹은 성추행 등의 행위로 말미암아 그 아동들의 장래에 많은 영향을 미쳐서 결국은 현재에 정신 분열 혹은 장애 또는 우울증이나 조울증 등의 정신적인 질병을 만들어 냈다는 허무맹랑한 말들을 하는 정신과의사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적인 환자의 경험이나 혹은 자신도 경험해보지 못한 현상들에 대해 책에서 답습한 것을 적용하고 또 환자들에게 그렇게 기억하도록 만듦으로써 있지도 않은 정신병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예전 가난한 시절에 부모들이 맞벌이를 하거나 밤 늦게 까지 일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베풀지 못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겼다고 말을 하지만 이것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시대적인 상황이나 문화를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다. 만약 외국의 정신의학서적이나 프로이드계통의 학문을 공부한 사람들이 본다면 현재 한국사람들이 겪고 있는 정신병이나 우울증 등은 아동기의 성적인 학대나 유아기시절에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해서 혹은 가정적이고 사회적인 원인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과는 많이 다르다. 이미 서양이나 서구의 사회나 학문에서는 없어진 학문의 분야들을 문화나 정서가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적용하고 그렇다고 믿게 만드는 행위들은 한 나라의 정신건강을 피폐하게 만드는 신종 마약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서양의 정신의학이 진화론이나 기타 유사 심리학 또는 뉴에이지운동의 영향을 받은 사상들이 사람들을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진화론체 혹은 생물체로 규정을 하고 있는 사상가들이 말하고 있는 인간의 불안정이나 정신적인 불안에 대해 말할 때 사람들은 누구나 정신병을 가지고 있거나 정신병을 나타낼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들에 대해 현대의 한국 정신과 의사들이나 심리상담계통에 있는 사람들이 책이나 기타 자료들을 통하여 [현대인들은 누구나 약간씩 혹은 한 두 가지 이상의 정신병이나 장애를 가지고 있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말을 듣는 사람들은 마치 환상적인 최면에라도 걸린 듯이 무조건적으로 그들의 말을 수용한다. 그리고 확실하게 믿는다.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이 정신과의사들이나 심리상담자들의 말을 믿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착실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믿는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 마음이 많이 씁쓸하기만 하다. 현대인들이 누구나 한 두 가지 이상씩의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참 아이러니 하고 의아한 것은 정신과 의사들이나 심리상담자들은 그러한 범주에서 벗어났다는 말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만약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현대인들이라는 범주에 자신들도 들어간다면 정신병자가 정신병자를 치료한다는 우스운 결론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나는 정신분열증 환자입니다. 하지만 나는 의사입니다. 내 병인 정신분열이라는 병은 고칠 수 없고 당신이 앓고 있는 우울증은 내가 전문가 입니다. 그 병을 내가 고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누가 선뜻 자신의 문제를 내어 맡기겠는가? 흔히들 환자라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에 급급한 나머지 자신들의 문제를 다루는 사람에 대해서 고려해 보지 않고 자신들을 맡기는 경향이 있다.
 
 알코올중독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라는 사람이 환자를 다룰 때는 술을 마시지 않지만 업무시간이 끝난 이후에는 병원 밖에 나가서 진탕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에게 어찌 환자를 맡길 수 있는가?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금연에 관한 교육을 하러 온 강사가 강의 시간에는 금연교육을 하고 쉬는 시간에는 잠깐 나가서 담배 한대 피우고 들어와서 강의를 한다면 어떻겠는가? 이와 비슷하게 같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정신과의사가 비슷한 종류의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는 스스로의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인터넷이나 혹은 의학을 다루는 서적에서 검색을 한 결과를 자세히 읽어본다면 그 결론은 자명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지금 어느 검색이든 검색을 통해서 [우울증의 원인과 치료]라고 검색을 하고 그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모두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의 깊이 살펴봐야 하는 것은 누구 하나 딱 부러지게 이렇다고 말하는 의사나 학자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하나같이 이러 이러한 원인이 있고 이러 이러한 약을 쓰면 된다 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처방이나 원인들을 분석 한 다음에 환자가 그러한 치료를 받고 나음을 입었다는 것은 별로 볼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환자들은 6개월 이상의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