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전 목사/ 인천 만수남부교회
[시론] 한국교회의 미래가 걱정이다

▲이종전 목사?뉴스미션
방학 동안에 몇 권의 책에 매료되었다.
그것은 유학(儒學)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면서
조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퇴계(退溪)와 남명(南冥)에 관한 글이었다.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오늘의 한국교회를 돌아보게 했다. 두 사람은 생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면서도 서로의 학문을 통해서 16세기 조선의 유학을 이끌었다.

학문과 삶의 성향이 전혀 다름에도 그들을 따르는 유생들은 넘쳤고 유학은 당시대를 이끄는 정신으로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그랬던 큰 선생들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죽게 되자 조선은 정쟁과 함께 몰락의 길을 가게 된다. 물론 그 후에 유학과 정치의 중흥을 꽤하지만 정쟁의 소용돌이는 점차 조선을 무너지게 했을 뿐이다. 이것은 그들이 정치의 전면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었음에도 조선을 세우는 정신적 준거(準據)의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선을 세웠던 유교가 학문과 덕을 쌓지 않고 부와 권세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을 때 유교는 더 이상 시대를 이끄는 능력과 권위를 잃게 되었던 것처럼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이 가고 있는 모습은 걱정스럽기만 하다. 꿩 잡는 것이 매라는 식의 가치관이 교회의 지도자들과 신자들을 지배하고 있으니 말이다. 성경과 신학에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하련만 꿩 잡는 일과 그 방법에만 몰두하고 있는 현실은 참담하기 까지 하다. 성경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교회와 신자들을 만들고 있음에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교회의 지도자는 신앙인격의 준비와 함께 신학에 대한 바르고 충분한 정립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신앙과 사상의 틀이기 때문이다. 이 틀을 준비하지 못하면 세상을 읽지 못함은 물론이고, 교회가 가야 할 키를 잡고 있는 조타수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 한데 교회 지도자들이 성경과 신학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환경오염으로 잡히는 고기가 적어져 시름에 빠진 채 한탄만 하고 있는 어부들 같다. 교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하지 못한 채 신자가 줄고 있다고 걱정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것은 신앙에 대한 체계적이고 확고한 정립이 없고, 신학적 의식의 부재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지도자들은 임기응변적인 방법에만 몰두한 채 안절부절 하고 있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있고, 교회 성장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지만, 조타수로서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상황판단을 하지 못하고, 그 대답도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신자들도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신앙과 교회를 선택하는 정도라면 진정한 기독교회의 모습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말씀의 권위 앞에서 말씀의 이상을 구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체험하는 곳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통해서 헛되고 어리석은 모습을 깨쳐 감격하는 기쁨을 누리며 나누는 곳이다.

그러나 교회와 지도자들이 글 읽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성경의 가르침에 심취하려 하지 않는다. 신학적으로 앞선 깨우침에 귀를 기우리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듯 바쁘기만 하다. 무엇을 위해서 바빠야 하는지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련만, 정작 그것은 중요한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 뭔가 한 가지, 즉 꿩 잡는 재주를 익히려는 생각에 사로 잡혀있을 뿐이다.

하니 설교조차도 코미디가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성경을 설교하면 재미가 없어 한다. 성경의 가르침을 듣기는 들어도 그것은 그저 좋은 이야기 정도로 확인할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Living Word)의 권위 앞에서 순종하려는 자세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뿐인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예배도 퍼포먼스가 되어가고 있다. 이젠 예배마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전락되고 있는 지경이다.

기독교를 “말씀의 종교”라고도 한다. 그것은 창조에 있어서나, 하나님의 뜻을 나타냄에 있어서, 그리고 그 뜻을 이루심에 있어서도 말씀으로 하셨고, 현재도 말씀으로 함께 하시며, 말씀으로 인간과의 관계를 확인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말씀(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믿으라 하신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권위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 있어서 살아있어야 한다. 또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관심이 곧 신앙으로 고백될 수 있어야 한다.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이 가장 신실한 신자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교훈하는 하나님의 비의(秘意)를 깊이 깨닫기를 기뻐하고 사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로 즐거워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정작 교회도 신자들도 모두 성경은 재미가 없어서 싫다고 한다.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없음은 물론, 말씀을 들으려는 의식조차 없다. 말씀을 가르치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이러한 신자들의 요구에 지도자들은 모른 척 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니 어찌해야 하겠는가.

퇴계와 남명과 같은 큰 선생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얻으려는 수많은 유생들이 있을 때 나라가 번성했고, 유교 또한 권위를 가지고 나라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기에 백성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인가. 백성들을 이끌어가는 정신적인 지주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는 받고 있는가. 어떤 질문에도 답이 궁하기만 하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