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정치인생을 마감하고 영원히 잠들은 김대중(DJ) 전 대통령
온 국민과 남과북의 정상들도 고인의 빈소에 조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폐렴으로 입원 치료받던 중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18일 오후 1시 43분께 50년 정치인생을 마감하고 서거했다.

6명으로 구성된 북측 특사 조의방문단은 21일‘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모하여. 김정일’의 이름이 적힌 조화를 앞세우고 국회에 도착했다. 수백명의 시민들이‘통일’을 연호하며 이들을 환영했다. 조문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사절단은 빈소를 찾아 헌화한 뒤 이희호 여사를 만나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한국 교계에서도 애도를 표하고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이희호 여사와 가족들을 위로했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종교는 천주교이지만 고인은 한국교회와 민주화 운동으로 연결된 동지적 관계에 있었다. 이에 고인의 서거 소식에 교계, 특히 그와 함께 민주화 운동을 벌였던 인사들은 깊은 애도의 뜻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엄신형 대표회장은 이날 논평을 내고“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생을 정치인으로서 격동하는 대한민국의 현대사 속에 민주화와 남북평화에 크게 기여했다”며“온 국민과 함께 애도하며 유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길 기도한다”고 애도했다.

이어 NCCK는“이런 업적은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기여를 했고, 우리 민족의 자랑이었다”면서 “하나님께서 고인의 영혼에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모든 장례 절차를 주관해 주시고, 슬픔 가운데 있는 유가족들과 국민 모두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한국교회 언론회와 기독윤리실천운동에서 각각 논평과 성명서를 내었으며, 교계 지도자들도 애도를 표하여“마음 아프다”비록 종교는 달랐지만 고인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같이하며 동지적 길을 걸었던 교계 인사는 물론 고인의 생전에 함께 교분을 나눴던 많은 목회자들도 고인의 서거에 슬픔과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연보]

▲1924년 전남 하의면 출생
▲1943 목포상고 졸업
▲1946 차용애 여사와 결혼.슬하에 홍일.홍업 두아들 둠
▲1948 목포일보 사장
▲1952 흥국해운 사장
▲1951 한국 해운조합연합회 이사
▲1954 3대 민의원 선거 목포출마.낙선
1957 민주당 중앙상임위원
▲1959 4대 민의원 재선거 강원도 인제 출마.낙선
▲1960 민주당 기획위원겸 대변인.차용애 여사 사망
▲1961 제5대 민의원
▲1962 이희호 여사와 결혼
▲1963 제6대 국회의원
▲1965 민중당(민정.민주 통합야당) 대변인
▲1967 제7대 국회의원
▲1970 신민당 대통령 후보.경희대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1971 제7대 대통령 선거 출마.낙선.제8대 국회의원
▲1972 일본 동경서 유신 반대 첫 성명 발표(1차 망명)
▲1974 민족회복 국민회의 참여
▲1976-1978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구속
▲1978 가석방 후 가택연금
▲1979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결성
▲1981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
▲1982 미국 망명(2차 망명)
▲1983 재미한국 인권문제연구소 창설
▲1985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
▲1987 4월 통일민주당 상임고문
▲1987 10월 평화민주당 총재 겸 대통령 후보
▲1988 제13대 국회의원
▲1991 신민당 총재
▲1992 제14대 국회의원.14대 대통령 선거 낙선.정계은퇴 선언
▲1993 영국 케임브리지대 객원교수
▲1994 아시아.태평양 평화재단 이사장
▲1995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1997 제15대 대통령 당선
▲1998 제15대 대통령 취임
▲2000 새천년 민주당 총재.남북정상회담.노벨평화상 수상
▲2002 새천년 민주당 탈당
▲2003 제15대 대통령 퇴임.김대중도서관 개관
▲2004 내란 음모사건 재심 무죄 선고
▲2006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2009 서거

(김대중 전 대통령 연보제공 김응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