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신문에 미래가 있나 ?
  정국의 태풍의 눈과 같은 미디어법(안)의 쟁점은 대기업과 신문사의 방송 겸업을 허용하는가 하는 문제다. 1996년에 일어난 일 지난 1996년 초여름에 경기도 고양에서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지국원 사이에 싸움에 벌어져서 조선일보 지국원이 칼에 찔려 죽은 일이 벌어졌다. 그 때 조선일보는 ‘삼성, 신문에서 손 떼야’라는 제목의 통사설(보통 사설을 2-3개 내보내지만,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어떤 날에는 장문의 사설을 하나만 내보내는 것을 의미한다)을 내보냈다.
 
 대기업이 언론을 하면 어떤 폐단이 있는가를 잘 지적한 사설이었다. 조선일보에는 ‘삼성에 불리한 기사는 한 줄을 못쓰는 신문’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칼럼도 실렸다. 당시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5-18 특별법 등 여러 사안을 두고 ‘사설 전쟁’을 벌릴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중앙일보에 대해선 동아일보가 조선일보 편을 들어서 재벌신문의 폐단을 비난하는 사설을 내보냈다. 당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사설은 대기업의 언론 참여에 반대하는 논리로서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된다. 미디어법(안)그리고 10여 년이 흘렀다. 이명박 정권은 미디어 산업 선진화를 내걸고 대기업과 신문사의 방송겸업을 허용하는 미디어법을 추진하고 있고, 민주당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10여년 전에 재벌의 신문 경영을 비난했던 조선과 동아가 이번에는 재벌의 방송진출을 허용하는 미디어법에 찬성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 10대 재벌의 매출과 영향력은 10여 년 전에 비해 엄청나게 커졌고, 이런 재벌들이 경영하는 보도 방송이 어떤 것이 될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에 대기업 7~8개가 지분을 갖고 참여하는 방송이 생긴다면 그 방송은 ‘전경련 방송’이 되고 말 것이다. 어느 대기업이 진정으로 미디어를 하고 싶다면 기존 사업을 정리하고 미디어로 업종을 바꾸어서 진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메이저 신문의 방송 진출은 별개 문제라고 생각된다.

 민주당과 진보매체가 신문의 방송진출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러면 ‘보수방송’이 생긴다고 보기 때문이다. “진보방송은 괜찮고 보수방송은 안 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신문의 방송 진출에 반대하는 주장에는 “신문이 방송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거나, “신문이 방송에 진출해서 성공한 사례가 없는데 왜 하려 하느냐” 하는 것들이다. 신문이 방송을 해서 성공한 예가 없다면서 반대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무모하게 방송을 하다가 망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팔자일 뿐이다.

  (최근에 조선일보의 방상훈 사장이 “신문이 방송을 하면 빨리 망하고, 안 하면 천천히 망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문과 방송이 겸업을 하게 되면 여론 형성력이 지나치게 높아진다는 우려도 있기는 하다. 이런 우려는 방송이 신문을 겸업하려는 경우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생각할 점은 신문 자체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기로에 선 신문 산업 우리나라 메이저 신문이 방송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신문으로 돈을 주체할 수 없이 많이 벌어서 새로운 투자를 하기 위함이 아니다. 반대로 신문이 사업성을 잃어가기 때문에 돌파구로 비슷한 업종인 방송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신문의 쇠퇴는 세계적 추세이고, 이제는 어느 누구도 이를 막을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 신문을 잘 읽지 않는 프랑스에선 우파 정부라는 사르코지 정부도 신문사에 대한 보조금을 늘려주고 말았다.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하는 프랑스 신문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이 사라져 버린 지는 이미 오래다. 크고 작은 도시마다 한두 개 씩 신문이 있었던 ‘신문의 나라’ 미국의 사정은 더욱 착잡하다. 인터넷에 의해 직격탄을 맞으면서 간신히 10년을 버티어 오다가 이제 백기를 들 상황에 처했다. 중소도시의 신문들이 속속 폐간하더니 이제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보스턴 글로브, 마이매미 헤럴드 등 대도시 신문도 존폐위기에 처해있다.

 뉴욕타임스는 외부에서 자금을 수혈 받아 버티고 있고, 부대사업(카플란 서비스)으로 돈을 버는 워싱턴포스트와 경제전문지인 월스트리트 저널 정도만 근근이 버티고 있다. 이유는 물론 인터넷 때문이다. 컴퓨터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돈을 지불하고 신문이나 잡지를 사서 뉴스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네트워크 TV의 저녁 뉴스와 마찬가지로 종이신문도 이제는 노년층의 전유물이 되어 가고 있다. 언제 어느 때나 컴퓨터와 아이포드를 통해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세대는 저녁 종합뉴스나 조간신문을 볼 필요가 없다.

  신문이 사라지면 ‘암흑시대’가 다시 오나 ? 2008년 가을에 닥친 경제위기는 미국의 신문사에 치명상을 입혔다. 신문광고의 효용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던 기업들은 경제위기가 닥쳐오자 광고를 줄였고, 신문은 직격탄을 맞았다. 신문사들은 해외특파원과 워싱턴 주재원을 줄이고 편집국을 줄였다. 미국에선 작년 하반기 후에 2000명 이상의 기자가 직장을 잃었고, 기자 해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일반인들마저 신문이 자신들의 생활과 미국 사회에 절실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에 퓨 리서치가 행한 조사는 미국인의 대다수가 신문이 미국의 민주주의와 공공 생활에 필수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미국의 현직 법관 중 가장 탁월한 법률가의 한명으로 평가받는 리차드 포스너 연방항소법원 판사는 지난 6월 23일자 칼럼(The Future of Newspaper)에서 “신문사업이 회복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신문이 기자를 해고함에 따라 볼만한 기사의 질과 양이 떨어지고, 그러면 구태여 돈을 주고 신문을 사야할 동기는 더욱 없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다가 결국은 문 닫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포스너 판사는 종국에는 로이터나 AP 같은 통신사만이 뉴스를 생산하는 기능을 지속하게 될 것이며, 종이신문이 사라지면 온라인 뉴스공급자들의 광고수입이 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시카고 대학의 게리 베커 교수도 같은 날자의 칼럼(The Social Cost of the Decline of Newspapers?)에서 “이제 40세 이하의 미국인은 종이신문을 거의 읽지 않는다”면서, 그것은 “개인에게는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이지만 신문산업을 죽이기에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같은 권위지가 사라지면 ‘정확한 보도’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베커 교수는 “그것은 기우(杞憂)”라고 지적했다.
 
  베커 교수는 “온라인에서의 견해와 뉴스는 그 수준과 정확도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지만, 정확하고 신뢰성 있는 명성을 얻은 사이트가 이미 많이 생겼다”고 지적한다. 베커 교수는 “종이신문이 사라진 공백을 온라인 뉴스미디어, 각종 단체의 사이트, 개인의 블로그가 메울 것이며, 민주체제의 사람들은 자기 나라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는 데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에 정부 보조금을 ? 포스너 판사와 베커 교수는 보수성향의 법률가와 경제학자라는 점에서 이들의 평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면 종이신문이 사라지면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때문에 정부가 보조금을 주어서라도 신문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입장은 주로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 신문이나 블로그에서 얻는 뉴스의 대다수가 종이신문이 생산한 뉴스라면서, 종이신문이 사라지면 온라인에서도 뉴스가 사라지고, 그러면 중세의 암흑시대가 다시 오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정부가 세금으로 신문과 방송에 보조금을 주고 그 대신 보조금을 받은 신문과 방송은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지 못하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종이신문의 소멸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그런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뿐”이라면서, 종이신문의 종말을 기정사실로 받아드리는 분위기가 다수라고 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마이클 킨슬리도 지난 4월 16일자 칼럼(Life After Newspaper)에서, “신문이 미래를 보지 못해서 이런 상황에 이르렀다”면서 “GM이 사라져도 자동차는 있듯이, 뉴욕타임스가 사라져도 뉴스는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문이 없어지면 민주주의가 위협받는가 ? 보조금을 주어서라도 신문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종이신문이 없어지면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지난 3월 27일자 슬레이트닷컴에서 잭 세이퍼는 그런 주장을 반박했다. 세이퍼는 “미국에서 오늘날 같은 신문이 사실보도를 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이라고 한다. 즉 토머스 제퍼슨이 “정부는 없어도 신문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신문은 사실은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는 포럼이었지, 지금처럼 취재해서 사실을 보도하는 신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19세기 말까지 있었던 신문은 정파적 의견을 전달하는 매체였고, 제퍼슨은 그런 신문이 공공토론을 위해 중요하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세이퍼는 “미국의 신문들이 자신들이 해온 일이 중요하며, 시민들로 하여금 건전한 정치적 판단을 하도록 선도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겹다고 했다. 온라인 신문의 미래 그렇다면 신문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 마이클 킨슬리는 “보다 캐주얼하고 오피니언의 비중이 크고, 독자의 참여가 높은 온라인 신문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킨슬리는 미래에 대비하는 신문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지난 해 온라인 신문으로의 전환을 결정한 바 있다. 최근에 성공을 거둔 진보성향의 허핑턴 포스트(The Huffington Post)는 미래의 신문의 모습을 보여준다. 허핑턴 포스트는 전임기자 숫자를 최소화하고 외부 기고가들의 수준높은 칼럼의 비중이 높여서 성공을 거두었다. 보수성향으로는 타운홀닷컴(Townhall.com)이 그런 컨셉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종이신문의 종말은 생각보다 빨리 오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되면 종이신문과 종이신문의 ‘권위’를 이용했던 필자들의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뉴스와 오피니언의 생산에 공정한 게임의 원칙이 적용될 것이다. 정확한 뉴스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사실 요즘 우리나라 신문은 보도를 하기보다는 의견을 써서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 주업(主業)이 아니던가. 미국에선 종이신문이 인터넷 신문으로 전환을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서 우리나라에선 신문사가 방송, 그것도 돈도 되지 않는 보도편성방송을 하겠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c) 이상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