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속기구 녹색성장위원회 김형국 위원장  
     요즘 우리는 가히‘녹색 시대’에 살고 있다. 녹색 기술, 녹색 산업, 녹색 경영, 녹색 IT, 녹색 금융, 녹색 건설, 녹색 의료, 녹색 외교…. 어디든 녹색이란 수식어가 붙지 않는 곳이 없다. 너도나도 녹색을 입에 올리다 보니 별 상관도 없는 개념에 억지로 갖다붙인 경우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녹색 과잉, 녹색 피로 현상이라 할 만하다. 그래도 어느 분야든지 붙여놓으면 큰 무리없이 대체로 어울리는 게 녹색이다. 녹색이란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숲, 나무, 청정, 자연처럼 거부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녹색 구호 물결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녹색성장을 국정의 기본목표로 삼겠다고 선언한 이후 녹색은 이 정부의 핵심 키워드가 됐다. 이때부터 이명박 정권의 표제어 같던‘실용’이란 말은 쑥 들어갔고 그 자리를‘녹색’이 차지했다. 야당과 시민단체는“말로만 녹색일 뿐 실제로는 삽질이다”며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비판했지만 녹색성장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었다. 따지고 보면 녹색성장은 21세기를 헤쳐나가는 유일한 생존법이기 때문이다.

온 세계가 탄소를 저감하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온실가스 신경 안 쓰고 지구 환경 무시하면서 세계 시장에 나설 길이 있는가. 기후변화 문제라면 어떻게든 요리조리 빠져나가던 미국마저 기후변화법안을 만들어 얼마 전 하원에서 통과시킨 마당이다. 그러니까 어떤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외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걸 녹색성장이라고 이름붙여 정권의 고유 브랜드처럼 만드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말하는 녹색성장의 개념 또는 실체가 국민에게 좀처럼 와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호만 요란할 뿐 구체성이 없고 녹색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정부가 녹색성장의 간판 정책으로 내세우는 4대강 정비사업을 상당수 시민단체에서는 구호의 허구성을 나타내는 상징적 사례로 보는 게 한 예다. 이런 인식 격차를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될까. 녹색성장은 자칫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아무리 시대의 흐름이고 유행이라 해도 국민의 지지와 공감을 받지 못하면 꽃을 피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주‘이종탁이 만난 사람’이 녹색성장위원회 김형국 위원장(67)을 찾아간 것은 이런 문제인식에서다. 녹색성장에 대한 민(民)과 관(官)의 인식 차이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 등을 들어보기 위해서다.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녹색성장위원회는 지난 2월 대통령직속기구로 출범한 공식 기구다.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을 총괄 조정하는 곳이다. 인터뷰는 지난 6월 30일 서울 종로구 녹색성장위원회 사무실에서 있었으며 김 위원장의 다른 일정 때문에 다하지 못한 질문이 있어 일부 이메일로 보완했다.

녹색성장이라고 귀 따갑게 듣긴 했는데 여전히 뭘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먼저 녹색성장이란 개념부터 정리해주십시오.“고전적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과거 대량 생산을 하는 산업시대에는 쓰레기가 부산물로 나왔습니다. 이 쓰레기는 그저 환경을 오염시킬 뿐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 쓰레기를 재처리해서 에너지로 만들고 다른 산업에 투입합니다. 경제자원화하는 것입니다. 이게 녹색경제입니다. 독일의 마르틴 예니케라는 사람(베를린자유대 석좌교수)이 창시한 이론입니다.” 재활용산업과 비슷한 거네요.

“과거에는 경제가 무조건 갑(甲)이고 환경이 무조건 을(乙)이었습니다. 지금은 환경이 갑이고 경제가 을이 되기도 합니다. 경제와 환경이 공존하면서 선순환하는 것이지요. 순천만 습지를 예로 들어볼게요. 2002년까지만 해도 이곳 방문객은 10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람사르총회 이후 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난해에는 260만 명이 찾았다고 합니다. 습지로 인한 도시경제효과가 1000억 원에 이른다는 게 순천시장의 말입니다. 인근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경제기여도가 700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녹색성장이지요. 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이것을 ‘녹색은 돈이다’라고 표현했어요.”

지속가능발전 개념과 어떻게 다릅니까.

“지속가능발전은 경제, 사회, 환경 세 가지 부문을 동시적으로 병행하는 것입니다. 목표 자체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합니다. 그런데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에 대한 논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도덕적 선언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를 규범이론이라고 하지요. 반면 녹색성장은 생태근대화 이론입니다. 인(因)을 고치면 과(果)를 바꿀 수 있다는 뜻에서 설명이론이라고 합니다. 인, 즉 화석연료를 줄이면 과, 즉 지구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지속가능발전이 녹색성장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 아닌가요.

“이론상으로 보면 지속가능발전에는 있는 ‘사회’라는 개념이 녹색성장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국가 정책이 사회적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온 게 녹색뉴딜 정책입니다.”

이쯤에서 김 위원장이 교수 출신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미국 UC버클리에서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환경대학원장을 지내며 평생을 교단에서 보낸 학자다. 학자들은 복잡한 이론을 명쾌하게 풀어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간단한 얘기를 복잡한 이론으로 설명하려 든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어떻게 되나요. 지속위 홈페이지를 보니 위원장님이 아직도 지속위 위원장으로 돼 있더군요.

“해촉되지 않았으니 그곳 위원장도 공식적으로는 접니다. 하지만 제가 이쪽으로 온 뒤부터 사실상 활동은 없는 상태지요. 지속위를 어떻게 하느냐 논의가 많았는데 간판만이라도 없애지 않고 유지하는 쪽으로 결론냈어요. 녹색성장기본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지속위는 환경부 장관 소속으로 바뀔 것입니다.”

지속위가 일개 부처 소속으로 전락하면 이 또한 논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속위는 리우선언에 따라 유엔에서 각 나라에 설치하도록 권고한 기구여서 특정부처 장관의 지휘를 받는다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경제가 무조건 갑(甲)이고 환경이 무조건 을(乙)이었습니다. 지금은 환경이 갑이고 경제가 을이 되기도 합니다. 경제와 환경이 공존하면서 선순환하는 것이지요.”

 녹색뉴딜이란 무엇을 말하나요.
“그린 카, 그린 홈, 그린 에너지 보급과 같은 사업입니다. 또 프레시 워터라고 해 4대강 정비사업도 중요한 녹색뉴딜입니다.”
  4대강 사업에 대해 시민단체는 극력 반대하고 있는데요.

“제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치산(治山)은 좋았는데 치수(治水)는 문제가 많았어요. 건설행정도 도로만 만들었지 물길은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국가예산을 보세요. 홍수대책비가 복구비의 3분의 1에 불과하잖아요. 피해가 난 뒤에 많은 돈을 들여 복구에 나섭니다. 가까운 일본은 우리와 정반대예요. 4대강 사업은 이런 반복되는 홍수피해를 막으면서 물길을 바로잡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4대강 사업이 대운하의 전 단계라는 시민단체의 의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불신의 극치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이념적인 문제, MB라면 무조건 반대하는 심리도 겹쳐 있다고 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운하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없으나 임기중에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운하를 포기한다면 4대강 사업도 크게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22조 원이나 들여서 보(湺)를 만들고 준설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14조 원에서 왜 갑자기 22조 원이 되었느냐는 지적이 있는데 그 배경을 제가 잘 압니다. 4대강 사업 목적이 홍수 예방에 있다고 하니 반대 측에서 홍수는 4대강이 아니라 지류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맞는 말이지요. 그래서 그 비용을 계산해 넣다 보니 8조 원이 더 들어갔습니다. 보는 댐을 짓기 어려운 상황에서 물을 컨테이너에 담아두듯 저장할 필요가 있어 만드는 거고요.”

대운하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떤 입장입니까.
“운하반대운동을 하는 이정전 서울대 교수(환경정의 대표)가 지난해 정년퇴임할 때 제가 그랬어요. 운하를 하려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데이터를 갖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강 바닥을 긁어내면 흙이 나올지 돌이 나올지 서로 모르는 것 아니냐고요. 운하에 대한 제 입장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입장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인사를 할 때 운하에 대해 어떤 생각인지 따져보는 모양입디다. 제가 뉴트럴(중립적)하다고 해서 임명한 것 같아요. 다만 저는 한강운하(경인운하)는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대강도 수질개선 수량확보 생태복원 차원에서 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대통령이 말씀하는 운하는 그 위에 얹혀진 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덤을 국민에게 납득시키는 데 실패한 것이지요.”

한강운하는 어떤 점에서 찬성합니까.
“1000m길이의 다리를 건설하는 데 999m는 완성하고 1m가 연결 안 되면 전체를 쓸 수가 없습니다. 한강이 그 꼴입니다. 강의 시작과 끝이 북한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강의 흐름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합니다. 한강운하를 통해 서울이 바다로 접근할 수 있다면 여러 가지로 좋을 것입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서울은 항구다’라고 했는데 수도가 바다에 접근할 수 있다면 경제성을 따지기에 앞서 안보면에서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대학에서 그는 동료교수나 후학들로부터 존경받는 학자였다. 화투나 골프, 잡기를 일절 손에 잡지 않고 정년이 다 될 때까지 연구실에 틀어박혀 책과 함께 지냈다. 그런 개인적 신망이 그의 공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래서 강 개발사업에 대한 세간의 반대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가 “공직은 원래 욕먹는 자리”라며 각오하고 있다는 점만 기억해두자. 이제 화제를 옮겨보자. 올해 녹색성장의 최대 수혜주는 자전거다. 대통령부터 지자체장까지 강력한 자전거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특히 강변에서 레저용으로 타는 자전거가 아니라 버스나 지하철과 연계한 도심 교통수단으로 추진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자전거의 교통수단 분담률을 현재 1.2%(서울)에서 외국처럼 5~10%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자전거를 위해 도심의 자동차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교통 혼잡이 심한 곳이 자카르타와 방콕입니다. 얼마전 외지를 보니 방콕의 교통경찰은 가위를 갖고 다닌다고 해요. 차 안에서 출산하는 산모가 있을 때 탯줄 끊어주는 용도랍니다. 어느 경찰은 이걸 한 달에 두 번이나 사용했다고 합니다. 도심 혼잡을 막으려면 자동차 진입을 최대한 억제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혼잡통행료를 물리고 속도를 제한해야지요. 시속 30㎞ 제한은 이미 외국 도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실천하려면 먼저 국가적 차원에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대내외에 선언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 계획이 있습니까.

“2020년까지의 감축 목표를 올해 중 발표하기 위해 현재 전문가들이 연구하고 있습니다. 막바지 실무작업 중인데 분석이 끝나면 각계 의견 수렴을 거쳐 확정할 예정입니다. 그 수준이 어떻게 될지 말씀드리기는 이른 것 같습니다.”

 오는 12월 코펜하겐에서 교토의정서를 대체하는 새 협약이 마련될 예정입니다. 여기에 임하는 우리 입장은 무엇입니까. 이번에도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아 의무감축국이 되는 것을 피해보자는 쪽인지, 의무감축국이 되는 것을 기정사실로 보고 적극 수용하자는 쪽인지 궁금합니다. 정부의 태도가 명확하지 않거든요.

“대통령이 지난해 G8 확대정상회의에서‘한국은 능력이 허용하는 한 선도국가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는 자발적으로 능력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겠다는 뜻입니다. 코펜하겐회의에서 기후협력체제에 관한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가정하고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수준에서 감축 노력을 할 것입니다만, 아무래도 기후변화와 관련해 선진국과는 역사적 책임이 다른 만큼 차별화한 수준에서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정부 전략과 관계된 민감한 사안이어서 그런지 조심스러운 것 같다. 일부 지자체에서 탄소포인트제를 시행한다고 합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탄소세를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요.
“중장기적으로 소득세 중심의 세제를 탄소세로 전환한다는 게 정부 방침입니다. 탄소세 도입 시기·방법 등에 관한 연구를 현재 관계기관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유일한 취미는 활쏘기다. 환갑이 되었을 때 “학교를 그만두면 뭔가 놀이가 있어야 할 것 같아” 시작했는데 그 매력에 빠져 <활을 쏘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활쏘기는 과녁에 그려진 표적을 맞히는 놀이다. 녹색성장이라는 과녁을 향해 쏘아대는 그의 활쏘기가 얼마나 정곡(正鵠)을 찌를지 지켜보자.

<글·이종탁 출판국 기획위원 jtle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