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불행의 원인은 비교하는데 있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이전보다 나아지면 행복할 것 같은데 주변 사람과 비교하다보면 금방 불행해진다.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엄친아”라고 한다. 엄마가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하면 그 아이는 불행해진다. 비교해서 우위를 느끼면 불행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우위를 느끼면 자연스럽게 우월감을 갖게 되고 나아가서는 교만하게 된다. 그것도 불행의 원인이 된다. 심지어는 교회도 비교하게 되면 불행해지는 것 같다. 적은 숫자라도 모여서 예배드리고 교제 나누면 행복해야 하는데 옆에 있는 큰 교회와 비교해보면 갑자기 불행해진다.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옆 사람이 눈에 띄는 은사를 받은 것을 보면 갑자기 불행해진다. 그러니 행복하기 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이웃들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비교의식을 자극하는 옆집은 무시해야 한다. 이웃은 사랑하고 옆집은 무시하라는 말이다.

말은 맞는데 사회 속에 살면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다보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지 않기가 정말 힘이 든다. 거의 자동적으로 비교하게 된다. 비교하지 않으려면 가끔 텔레비전에서 소개되는 산 속에서 홀로 사는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비교는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비교를 하는 대신 대조를 하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다른 사람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을 안 보고 안 들을 수는 없다. 그러나 보고 들은 것과 나 자신과 비교하는 대신 대조를 하면 불행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저 사람은 저런 차를 가졌구나 나는 이런 차를 가졌는데, 저 사람은 차가 있구나 나는 버스 타고 다니는데, 저 집 아이는 공부를 잘 하는구나, 우리 애는 장난을 잘 치는데, 등등 대조할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말이 쉽지 그게 쉽게 되느냐 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씩 연습하다보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보면 내가 아주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교하는 습관을 버리고 대조하는 습관을 갖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행복을 위한 전략이기도 하지만 사실 아주 성경적인 사고방식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각각 독특하게 창조했다. 그런데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그 독특성을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불행하게 된 것이다. 비교하는 대신 대조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나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서로 대조하다보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게 되어서 공동체를 이루기 쉬어진다.

물론 다른 사람과 비교하다보면 도전을 받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신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다. 그래서 경쟁이라는 것이 필요악이 되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라고 다르게 만드시지 않으신 것은 확실하다.

예수님에게 사랑을 고백한 베드로가 요한에 대해서 질문했을 때, 예수님의 대답이 인상적이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요21:22)” 은근히 요한과 비교하던 베드로의 속내를 아신 주님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