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야드운동 이단 및 참여금지

빈야드 운동의 창시자는 “죤 윔버”이다.
이 운동은 각 교단이 잘 못된 성령운동으로 이단 및 불건전운동으로 참여금지를 아래와 같이 규정을 하였다. 이 행각을 하는 지도자나 교회들은 비성경적인 경계의 대상으로 멀리할 것이다.

① 예장합동 1996년 / 81회1997년/ 82회 그릇된 성경해석과 무질서하고 그릇된 예배의식 일침 판정 /도입. 참여 금지 참여자 또는 동조자는 다락방선교회 참여자와 같이 징계 한다 가결

② 예장통합 1996년 / 81회 도입금지 참여삼가 / 성령론, 특이한 현상의 비성경성, 무질서한 예배

③ 예장고신 1996년 / 46회 교회와 성도 참여금지 /2007년 57회 총회에서 참여금지 재확인함

④ 기 성 1998년 / 53회 사이비성 있음 / 전국교회 경계공문 발송

⑤『이단ㆍ사이비 규정 자료집 - 2000년~2007년』. 48. 빈야드(존 웜버) 이단 규정(2003년 6월)

※ 비성경적인 현상 : 짐승소리, 은혜체험 쓰러짐, 거룩한 웃음, 떠는 현상 등.

이제 빈야드운동과 문제점에 대한 통합 / 합동 연구보고서 / 월간 현대종교 2005년 10월호 기사를 인용하여 살펴본다.

빈야드 운동에 대한 (예장통합) 연구 보고서 연구분석 비판

2007.01.09 11:00 areobago2109 http://cafe.naver.com/areobago/352 .

1. 빈야드 운동이란? .

최근에 `제3의 물결' `빈야드 운동' 혹은 `토론토 축복'이라 불리워지는 운동 등이 있는데, 그것들이 `빈야드'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애나하임(Anaheim, California)에 있는 `빈야드교회(Vineyard Christian Fellowship)'를 이끄는 죤 윔버(John Wimber)를 비롯해서 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형성한 단체가 `빈야드 교회 연합(Association of Vineyard Churches)'으로서 이제는 일종의 교단처럼 되었기 때문이고, `토론토 축복'이라 함은 죤 아노트(John Arnott)가 개척한 `토론토 공항 교회(Toronto Airport Vineyard)'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언론이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빈야드 운동에서는 성령의 능력을 특히 강조하는 권능주의와 성령체험의 감정적 요소를 강조하는 감정주의의 두 관점이 강조되는데, 능력전도를 주장하는 죤 윔버의 경우는 권능주의적인 측면이 강하고, 감정적 경험을 중시하는 죤 아노트는 감정주의적인 면이 강하다고 하겠다.

죤 윔버는 권능(혹은 능력)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 능력이란 초자연적인 능력이요, 초자연적인 성령의 은사로서 병자를 치유한다든지, 귀신을 내어 쫓는다든지, 예언을 한다든지, 혹은 지식의 말씀이라고 하는 은사를 사용해서 전도를 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토론토의 죤 아노트는 신앙 체험에 있어서 감정을 대단히 중요시 한다. 그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다분히 감정적으로 해석한다. 그가 로멘스(romance), 감정(emotion), 느낌(feeling)이란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는 것과(John Amott, `The Father's Blessing' Orlando, Florida:Creation House,1995,pp.16,21,23,25,59,89.),

“하나님은 너와 더불어 깊고 감정적이며 의미 있는 관계를 가지고 싶어 하시며, 그는 또한 네가 그런 관계를 다른 사람들과 갖게 되기를 원하신다?(The Father's Blessing p.14)라고 말하는 것과, “우리는 감정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감정적으로 사랑을 받을 필요가 있다.

감정은 우리의 창조주로부터 온다. 하나님은 감정을 가지고 계신다. 그는 감정적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그는 우리를 감정적으로 사랑하기 원하신다. 그는 우리가 그를 온 마음과 생명과 뜻을 다해 감정적으로 사랑하기를 원하신다.”(The Father's Blessing p.26)라는 말이 이를 입증한다.

현재는 죤 윔버(John Wimber)가 이끄는 `빈야드 교회(Vineyard Christian Fellowship)'를 중심한 빈야드 운동(Vineyard Movement)과 죤 아노트(John Arnott)가 이끄는 `토론토 공항 교회(Toronto Airport Vineyard)'를 중심한 토론토 축복(Toronto Blessing)은 분리되었다.

2. 빈야드 운동의 문제점들.

(가) 성령과 그 사역에 대한 이해가 치우쳐 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시는 것은 다양하다. 성령의 은사는 기적적인 것도 있으나, 기적적인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것도 있다. 또한 그런 은사들은 각 사람이 모두 다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사명과 필요에 따라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빈야드 운동에서는 초자연적인 은사들과 능력, 그리고 신비 현상들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특정한 은사들이나, 격렬한 감정의 분출 현상이나 이적들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성령의 역사의 다른 중요한 측면들(즉 말씀, 사랑의 삶, 공동체 안에서의 교제, 사회에 대한 책임적 행위에 관련된 성령의 역사)이 간과되거나 약화될 수 있다. 웬일인지 최근에 윔버는 이 점에 있어서 나름대로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사람들에게 그가 미친 영향은 결국 초자연적 능력을 매우 강조하여 열광주의에 빠지게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나) 거룩한 웃음, 떨림, 쓰러짐, 짐승 소리 등의 현상은 비성경적인 현상들이다.

빈야드 운동이 사람들의 혐오감을 유발하는 가장 두드러진 점은 그들 가운데서 많이 일어나는 떨림, 쓰러짐, 거룩한 웃음 등의 현상 때문이다. 또한 이런 현상들이 실질적으로 이 운동의 특성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그들의 집회의 분위기는 그런 현상들을 암시적으로 격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짐승 소리는 토론토 교회의 현상으로서 죤 아노트가 그런 현상들과 특히 짐승 소리를 정당화하는 성경적인 증거로 예수님을 `유다 지파의 사자'라고 묘사한 계시록 5:5 이라든지 `하나님이 사자같이 부르짖으신다'는 아모스 3:8 등을 인용하여 정당화하고 있는데(The Father's Blessing pp.172~173), 이는 억지스런 해석으로 위의 본문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과 은유로 묘사한 것이지 실제적인 짐승 소리나 괴성을 정당화하는 말씀은 아니다.

또한 은혜를 체험하고 쓰러지는 현상은 가장 두드러진 현상으로 이들은 쓰러짐을 정당화하기 위해, 에스겔 1:28과 다니엘 8:17을 근거로 에스겔과 다니엘의 쓰러짐을 말한다.

그러나 에스겔이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스스로 앞으로 부복한 것이지 빈야드의 경우와 같이 은혜의 체험으로 뒤로 넘어진 것이 아닌 것을 볼 때, 전혀 성경적으로 합리화할 수 없는 현상에 속한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러 온 군사들이 넘어진 것(요 18:6), 무덤을 지키던 파수꾼이 넘어진 것(마 28:4) 등을 열거하지만(John Wimber, Kevin Springer, 능력치유 이재범 역, 서울 : 도서출판 나단, 1991, p.359), 성경의 그러한 예들은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에 넘어진 것이 아니므로 성경적 근거가 결코 되지 못한다. 그리고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쓰러진 것이라든지(행 9:4), 요한이 밧모 섬에서 쓰러진 일(계 1:17) 등은 주님 자신의 직접적인 출현에 직면한 것이었다. 거룩한 웃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브라함이나 사라의 웃음(창 17:17, 21:6)과 같은 것을 예로 들지만(능력치유 p.362), 아브라함이나 사라의 웃음은 어떤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광적으로 웃는 웃음이 아니다.

또한, 떠는 현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사야 66:5이나 예레미야 5:22, 마가복음 5:33, 누가복음 8:47, 사도행전 16:29, 고린도전서2:3, 고린도후서 7:15, 빌립보서 2:12, 히브리서 12:21 등을 인용하지만(능력치유 p.356), 거기에 나타난 것들은 구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혹은 어떤 두려운 사건이 일어난 상황에서, 두려워서 떠는 의식적이며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빈야드 운동에서처럼 주체할 수 없는 주관적이며 잘못된 신비적인 감정이 아니다.

(다) 위와 같은 현상들은 격렬한 종교적 감정의 표현으로 그런 현상들 자체가 강조되 고 격려되는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고 감동된 사람들이 격렬한 감정 속에서 그러한 현상이 수반되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현상들이 격려되고 장려되어 은혜 받은 표적으로 정형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위험스럽다.

성령의 은사들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며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데 소용되는 성령의 선물이며 능력이다. 은사들은 구체적인 유익, 특히 타자를 위한 유익을 가져온다(고린도전서 14장, 에베소서 4:11). 빈야드 지도자들은 간혹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느냐 아니냐는 관건이 아니라고 스스로 말하기도 한다. 그들에 의하면 문제는 성령의 은혜로 삶이 갱신되고, 새롭고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며, 새로운 사역의 능력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The Father's Blessing, p.166; 능력치유 p.358).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각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는 무언가 그런 일이 일어날 때까지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기도(그들은 이런 것을 soaking prayer라고 부른다)를 하는 경향을 보인다(The Father's Blessing p.96).

그럴 경우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를 통제하지 말고 온전히 수동적이 되도록 하기 위해 심지어 방언도 하지 말도록 권한다고 한다(The Father's Blessing). 그런 경향은 암암리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현상 자체를 중요시하고 사모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되면 그런 체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에 어떤 차별이 생기게 되고, 특정 체험이 표준화되며, 오히려 성령의 포괄적인 역사를 제한하게 된다. 이 점에 관하여는 토론토 측이 더욱 문제가 된다.

특히, 절제하지 못하여 덕을 세우지 못하게 된다. 그러한 극단적인 감정의 분출 현상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경우에라도, 그런 것은 드러내고 공개하고 격려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현상들은 사람들에게 의구심과 혐오감을 일으키기 쉽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공개석상에서 방언하는 것에 대하여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배려를 하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 것에 주의해야 한다.

그런 현상들을 체험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어떤 유익을 경험했을지라도, 그것은 다른 이들에게 특히 불신자들에게, 덕이 되지 않고, 오히려 혐오감을 주게 될 우려가 있다. 그런데 빈야드 운동에서는, 특히 토론토 측에서는 그런 현상을 드러내고, 심지어 집회시 강단에서 간증할 때에도 나타나도록 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비디오 테이프 `Catch the Fire: God's Love, Bottom Line' by John Arnott, Toronto Airport Vineyard).

(라) 예배를 무질서하게 드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찬양과 예배의 갱신은 그들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요점이기도 하다. 그들은 형식에 얽매어 역동성을 상실한 예배를 자유롭고 무형식적인 예배를 통해 갱신하고자 한다. 무형식적인 예배는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따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어떤 면에서 항상 똑 같고 형식적인 예배에 식상한 사람들에게 그것은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형식 속에서도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빈야드가 아무리 무형식이라고 해도 거기에 이미 나름대로의 어떤 형식이 자리 잡게 된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긴 찬송 시간, 설교, 각 사람을 위한 기도 시간 등은 이미 하나의 형식이다. 사실상, 윔버 자신도 어느 정도 질서와 조직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Wimber & Springer, 능력전도 pp.57~58).

전통적인 형식들도 많은 경우 그 근원에 있어서 고대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각 사람이 무질서하게 각각 자기 원하는 식으로 찬송하고, 기도하고 하는 것은 여럿이 모였으되, 각각 자기 문제를 위해 기도할 때에는 문제가 없지만, 예배는 개인만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교류하며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 예배는 엄숙하고 질서 있게 드리고,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은 따로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하면 좋을 것이다.

(마) 수용하는 이들의 신학적 목회적 비성숙성이 더 문제를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목회자들이 빈야드 세미나에 참석하고 돌아와서는 자기 교회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시도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그런 경우 기존 신앙생활의 모습을 고수하려는 이들과의 사이에 마찰과 분열이 야기되고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의 무비판적인 수용은 오히려 교회를 어지럽히게 된다. 본 교단 소속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성령님의 여러 가지 놀라운 은사들과 역사를 받아들이고 추구하되, 성경이 가르치시는 바에 따라 건전하고 덕스러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연구결론.

빈야드 운동은 성령과 그 사역에 대한 이해가 치우쳐 있고, 거룩한 웃음, 떨림, 쓰러짐, 짐승소리 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그들의 성경 해석은 올바르지 않으며 또한 무질서한 예배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므로 본 교단 소속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빈야드 형식의 예배를 무분별하게 도입하여 들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이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삼가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예장합동 제82회 총회 보고서 pp. 411 ~ 431

자료검색:http://www.kjbnh.com/bbs/board.php?bo_table=bgroup6_3&wr_id=9 .

빈야드 운동에 대한 우리의 입장

(신학적, 성경적, 실천신학적측면에서 조사)

1. 序論(빈야드 운동 문제 제기)

2. 빈야드 운동이란 무엇인가?

3. 빈야드 운동과 John Wimber.

·존 윔버는 어떤 人物인가?

4. 빈야드 운동의 현상

1) 토론토 부레싱 사건

2) 빈야드의 영적 체험 현상

3) 빈야드 예배 현상

5. 빈야드 운동의 韓國敎會에 소개된 배경

6. 신학적인 면에서 빈야드 운동의 문제점

l)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의 배경과 신학기초

2) 성경해석의 문제

3) 성령論의 문제

7. 빈야드 예배의 문제점

1) 社會文化的 관점

2) 예배신학

8. 빈야드 운동이 왜 관심이 되고 있는가?

1) 목회 탈출구

2) 교회성장 모델

3) 예배 文化

4) 성령체험

9. 결론.

1) 빈야드 운동에 대한 입장과 대안.

빈야드 운동은 제3의 물결이라고 지칭하는 하나의 새로운 물결이라기보다는 오순절 운동과 은사 운동처럼 예수님과 초대교회에 있었던 강한 성령의 역사가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될 수 있다고 믿는 은사 갱신 운동의 발전된 다음 단계로 보고 있다.

(Wimber 능력전도 8장 성령의 역사 새로운 물결)

존 윔버를 비롯한 빈야드 주의자들은 內的으로 들려오는 음성이나 투사, 직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간주하여 신앙을 주관화하고 진동이나 넘어짐 낄낄대며 하루 종일 웃어대는 웃음, 몸부림치는 것과 같은 육체에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영적인 체험으로 간주하여 체험만이 신앙의 기초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윔버의 신비주의적 은사 운동은 18C중반 대 각성 운동 이후 조나단 에드워즈 체험한 미국 교회의 모습과 유사하다. 꼬꾸라지는 현상, 술 취한 듯한 현상, 몸부림을 치는 행위, 웃거나 슬퍼하는 행위가 하나님께서 온 것이라고 말하기 힘들다고 하였다. 비록 이런 것들이 하나님과 관련된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믿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영적인 체험을 신앙의 본질로 이해한다. 그러나 신앙을 主體化하거나 체험주의화 하는 것을 반대한다.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 대신 체험이 신앙의 온전한 판단기준이 된다면 기독교가 계시종교가 될 수 없고 모든 판단 기준이 결국 인간 자신이 된다. 체험을 강조하는 王體主義는 부패한 죄성의 영향을 받는 자율주의로 나가게 되고 자율주의는 극단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고 있다.

토론토 에어포트, 빈야드 교회는 신비적인 체험을 강조하고 그것이 성령이 능력으로 역사한 것이라고 한다. 존 윔버는 극단적인 체험주의로 나가는 토론토 빈야드 교회를 그들의 모임에서 제명하였는데 이는 빈야드 주의자들의 신학이 가지는 한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개혁주의 교단인 우리 교단의 신학에서는 신앙의 主體的인 성격을 강조하지만 객관적인 면을 중요시한다.

하나님을 만나는 가시적인 현상의 체험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 가는 삶의 체험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성령의 사역성을 강조하면서도 말씀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Calvin은 신학의 원리로써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을 통한 성령을 내세웠고 개혁주의 신학자들도 신학적인 전통에 서서 말씀만을 강조하여 성령의 사역을 제한하려고 하지 않았고 성령만을 강조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 하는 실수를 犯하지 않으려 했다.

2) 빈야드 신학이란 무엇인가?.

빈야드 운동의 존 윔버는 Peter Wagner의 제3의 물결 운동으로 규정한 것이 새로운 물결 운동이라고 하기보다 은사 갱신 운동의 발전된 다음 단계로 보아야 한다고 했는데 빈야드 운동은 존 윔버의 체험적인 신앙이 기독교의 교리로 설정되어 있다.

1) 불신자를 예수 믿게 만드는 것이 신학 정립의 目的으로 보고 있다.

신학의 주제가 선교이고 모든 성경의 신학 주제들은 그것을 위한 보조 신학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빈야드의 전 교리는 선교에 편중되어져 있다고 보아진다.

2) 선교의 최상의 방법은 먼저 음악으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존 윔버는 대중음악의 그룹멤버였고 경배와 찬양이라는 대중음악에 곧잘 적용하는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찬양 예배를 만들었다.

3) 영적인 체험을 망하는 이들에게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을 신학의 으로 성령의 능력의 역사로 간주한다.

4) 오순절 운동이나 은사 운동보다 구별되게 자신들의 사역을 성경적이고 복음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빈야드 교회 연합에서 발표한 “신학적 철학적 선언”을 보면 개신교의 복음주의 신학 사상과 다름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빈야드 운동가들은 표면적인 것은 복음주의를 말하고 있으나 실질적 행위는 신비적 체험 행위를 답습하고 있다. 성경은 그들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사역을 변호 증명하는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과연 그들의 주장과 사역이 복음주의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오직 성경,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 구원에 치중한 신학 사상이 계시 의존 사색이 아닌 자의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사역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실행 재현되어지는 오늘날 우리를 신앙의 모델로 주어진 것인가?

넘어뜨림이 성령의 역사이며 성령 안에서의 안식인가?

빈야드 운동을 교회에 그대로 접목시키려다 교파가 분열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성취시키기 위한 수단인가?

짐승 소리, 기이한 현상, 웃음 이런 것들이 성령의 역사로 단정하는 그들의 행동을 그들의 사역은 성경적인 것도 신학적인 것도 아직 검증된 일이 없다. 또한 성령의 역사라고 확실하게 말하거나 단정한 것은 그들 자신들이나 추종자들 뿐이다.

다만 韓國교회 아니 세계 교회 우리 시대의 교회가 복음전도와 교회성장이 침체에 빠져 헤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상황에서 또한 목회 일선에서 능력 있는 목회로 교회를 성장시키려는 목회자들에게 수요와 공급의 거래가 맞아 떨어지듯이 체험적 능력의 가시적 현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어 이러한 새로운 물결이 재철 성수기를 만난 것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지금까지 성경의 진리가 역사 속에 진행되는 과정에서 시대마다 물건을 모방한 유사 모조품이 교회와 성도들 목회자들에게까지 악성 전염성처럼 퍼져 고난을 당했던 것이다. 유사종교, 유사복음일수록 전면에 복음을 내세우고 복음을 말한다. 그러나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내면의 교리가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빈야드 운동이 새로운 은사갱신이란 이름으로 또 21C를 제3의 물결이라고 한 알빈 토플러의 신조어를 신속히 도입하여 시대 정황과 젊은 세대에게 새롭게 개혁되어 가는 매력적인 운동인 것은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운동의 본질이 성장계시의 본래적 큰 진리를 벗어난 보조적 부수적인 것을 본 진리로 바꾸어 놓고 그것을 성경에서 찾아 보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에 온전히 바탕한 진리로서 일어난 운동이라고 할 수 없다. 지난 94총회 시 예태해 목사의 넘어지는 사건이나 96총회 시 류광수 목사의 다락방 운동도 본래의 성장의 진리 운동으로 사역한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갔으나 그들의 사역의 내부 진상을 조사해 본 결과 자기들의 사역을 주 목적으로 하고 성경을 그들의 주 사역을 변호 증명하는 보조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성경적 이요 성경이 보증하고 있다. 그런데 근본 진리를 벗어나 부제를 주제로 바꾸어 놓은 격이었다.

빈야드 운동은 사람들에게 특히 젊은 층에게 호응하는 은사 운동의 새로운 물결로이 거센 물결을 전면에서 가로막아 내기에는 우리 교단과 韓國교회에 파장이 클 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은 계속 더 조사 연구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써 우리 교단의 성경적신학적 실천 신학적 면에서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것으로 더욱 분명하게 걸려질 때 까지 경계 금지해야 될 것이다.

▣ 참고자료.

김성봉 : 조직신학적 입장에서 본 빈야드 운동〈빈야드 운동 무엇이 문제 인가?〉

한국 개혁주의 신학연구소 1996

오덕교 : 조나단 에드워즈의 입장에서 본 빈야드 운동<빈야드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한국 개혁주의 신학 연구소 1996

이광희 : 실천 신학적 입장에서 본 빈야드 운동〈빈야드 운동 무엇이 문제인가?>정동수 번역 : 빈야드 운동의 실〈생명의 샘〉

권경흠 : 빈야드 운동은 과연 밀려오는 성령 임재의 징조인가?〈체험 수기>김영한 : 성령의 역사인가, 사단의 미혹인가?〈목회와 신학〉1995. 6.

이재범 : 새물결의 파고 “빈야드 운동 어떤 것인가?”

이한수 : 오늘날 신유에 대한 신학적 판단

김현석 : 현장에서 본 빈야드 운동

김영재 : 오순절 성령 운동가 성령 세례에 대한 이해와 새지평<목회와 신학〉1994. 3.

정종헌 : 성령님은 어떤 분인가?〈목회와 신학〉1994. 3

최갑종 : 빈야드 운동 그 성경적 조명〈개혁주의 신행협회〉

정일웅 : 빈야드 운동과 빈야드 예배 문화의 비판적 성찰〈신학지남〉 96. 여름

교회와 이단 : 빈야드 운동과 토론토 브레싱의 정체〈기독교 이단 문제 연구소〉

존 아더맥 : 은사(1)“예언자인가 광신자인가?”〈생명의 삶〉

은사(2)“성령의 역사인가 사단의 장난인가?”〈생명의 삶〉

존 윔버 : 이재범 옮김. 능력전도〈나단 출판사〉

능력치유〈나단 출판사〉

현대종교 : 빈야드와 현장에 나타난 잘못된 성령론 l997.4.(출처:목회와진리)

한국의 빈야드운동의 대표 초락도 기도원 탐방기

최근 본지에“이단 아니냐”“치유가 실제로 일어나냐”“그 기도원 가도 괜찮냐”는 등 적잖은 문의가 오는 한 기도원이 있다. 그곳은 바로 충남 당진군 석문면 초락도리에 위치한 초락도금식기도원(홍준표 원장)이다.

특히 지난 5월 23일-26일, 홍 목사가 안양실내체육관에서 개최한 치유성회 전후를 계기로“초락도기도원이 어떤 곳이냐”“치유성회 건전한 곳이냐”등의 문의가 빗발쳤고, 심지어“초락도기도원의 실체를 밝혀달라”며 취재를 급하게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기자는 초락도기도원을 찾았다.

◎ 초락도금식기도원 전경.

서울에서 출발. 초락도금식기도원 버스를 타고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초락도금식기도원을 들어서자 중앙에는 개인, 교회차량들로 메워져 있었고, 전남, 전북, 서울, 부산, 경기, 충남, 충북, 인천 등 전국에서 온 20여 대의 개인차량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정면에 대성전을 비롯하여 주위에는 사무실, 매점, 식당, 컨테이너 박스 등이 있었고, 컨테이너 박스에는 이불을 깔고 자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등 예배시간 외의 시간을 나름대로 보내고 있었다.

기자는 성전 앞 의자에 앉아 몇몇 성도들의 대화를 들었다. 어떤 사람은 “홍준표 목사가 40일 금식하라고 해서 했는데 낳았다”며 “홍준표 목사를 만난 것이 행운이다”라며 기뻐했고, “밤 11시부터 2시까지 3시간 사이에 기도하면 40일 금식과 맞먹고 하나님께서 고쳐주신다”(기도원의 입장과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대화내용은 금식과 치유, 홍 원장이 대단하다는 내용으로 압축됐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한 병원차량이 기도원에 도착했고 몇몇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응급환자를 수송하는 차량이었는데, 도착하자마자 환자를 사무실로 옮기고 있었다.“환자가 어떻게 기도원에 오게 됐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병원차량 운전자는“가족들이 꼭 기도받으러 와야 된다고 해서 왔다”고 답했다.

또한 기자가“환자는 어떤 상태인가?”라고 묻자“췌장암 말기 환자다”라고 답했다. 운전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기자에게 대전 모 병원에서 2시간이 넘도록 왔다고 했다. 1시간 정도가 지나자 병원차량은 기도원을 떠났다.

◎ 8월 30일 오후 8시 집회.

기도원 예배는 새벽 5시 30분, 오전 10시 30분, 저녁 8시 이렇게 세 번 있다. 기자는 오후 8시 집회와 다음 날 5시 30분 집회에 참석했는데, 저녁 집회는 150여 명이 참석했다.

첫 곡은 느린 찬송을 불렀으나, 두 번째 곡부터는 빠른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바로 성도들 중 30% 정도가 일어서더니 강대상 앞으로 자연스럽게 나갔고, 춤추며 찬양했다. 박자에 맞춰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하는 사람, 성전을 계속 돌며 뛰는 사람, 돌다가 균형을 잃고 뒤로 쓰러지는 사람, 허리를 굽히고 성전을 걸으며 도는 사람 등 가지각색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뛰다가 지쳐 헉헉대며 걷는 사람도 있었는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인지, 박자에 맞춰 춤추다 지친 것인지 의아했다.

중간에 홍 원장의 등장과 함께 찬양의 가사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반주소리만 커졌는데, 이에 곳곳에서 동작이 거칠어진(?)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손을 흔들며 동시에 온 몸을 흔드는 사람, 본인도 돌면서 성전 주위를 도는 사람 등 온통 뛰며 돌며 성전 안은 정신이 없었고, 사람들은 대부분 입을 벌려 찬송하기 보다는 박자에 맞춰 몸만 움직였다. 어떤 사람은 앉아있는 사람들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적극적으로 일어나 나오라고 손짓했다. 반면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신기한 듯 뛰는 사람들을 쳐다보거나 생각없이 박수쳤다.

사람들은 여전히 서서 손과 온 몸을 흔들고 있었는데, 홍 원장이 그 중에 한 사람을 가리켜 나오라고 하더니, 그 앞에서 그 사람을 향해 “불로!”라고 강하게 외치며 손을 뻗자 바로 쓰러졌다. 40대(여)로 보이는 한 사람은 처음부터 강대상 위에 올라가 계속 춤을 췄는데, 지친 기색을 보이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계속 돌다가 쓰러졌다. 설교 중에도 누워 있었는데 간혹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비틀며 소리치기도 했다. 1시간쯤 후에 찬양이 끝났는데, 약속이라도 한 듯 반주가 끝나는 동시에 모두 그 자리에 쓰러지더니 “불로”를 외쳤다.

9시 30분쯤 홍 원장의 설교가 시작됐다. 홍 원장은 “올리브 오일도 기적이 일어난다”“기름 가지고 와서 기도해 달라고 해라. 낫는다”“물병 가지고 와서 기도해 달라고 해라. 낫는다”고 말해 이단으로 규정된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씨의 단물(이 목사가 안수해서 쓴 물이 먹을 수 있게 변했다는 물), 손수건(이 목사가 안수한 손수건으로 안수해 병고치는 사역) 사역이나 맹물을 축복해 판매하던 박태선 씨(천부교 설립자)와 비슷한 주장을 폈다.

또한 홍 원장은 “(홍 원장이 초청받은) 해외 첫 집회에서 99%가 치유받았다”며 “그 후에 13개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한 번만 히트를 치면 세계에서 오라고 한다”며 “남미에서도 오라고 했는데 바빠서 못 갔다”고 말했다. 또한 “3년 정도 있어야 알려진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있어서 빨리 알려질 수 있다”며 “열심히 생명 내어놓고 해라”고 말해 자화자찬(自畵自讚)과 함께 유명해지기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또한“웃는 사역은 남미에, 쓰러지는 사역은 보편화됐다”며 ‘빈야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이단이 아니라고 언급했고, 이곳(초락도금식기도원)은 여러 가지(금이빨, 웃고, 쓰러짐 등) 현상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곳이라며 더 대단한 곳임을 내비췄다. 게다가 “성경에 보면 예수님 가신 곳이 시끄럽다”며 홍 원장이 있는 곳이 시끄러움을 비교하기도 했고, “여기에 일주일 있다 가면 원하던지 원하지 않던지 은사를 받고, 결국은 쓰임을 받는다”는 주장도 폈다.

설교 중에도 홍 원장이“후! 훅!”하며 바람소리를 내거나 “성령의 기름부음 받을찌어다! 받을찌어다!”, “불로!”라고 크게 소리치자 사람들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특징적인 것은 갑자기 크고 강하게 소리쳐 사람들이 정신이 번쩍 들고 깜짝 놀라게 한다는 것이다. 설교가 끝나자 홍 원장은 “다 일어나라”며 “기도해 주겠다”고 말했다.

홍 원장이 앞에서부터 한 사람씩 손을 대자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손을 대기도 전에 홍 목사가 가까이 오자 쓰러졌고, 간혹 시간이 걸려 쓰러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자도 쓰러지는 것을 경험코자 서 있었는데, 홍 원장은 먼저 기자의 두 손을 잡았다.

반응이 없자 천천히 밀었고, 그래도 가만히 있자 홍 원장은 포기(?)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날 홍 원장의 설교 중에 “다른 곳에는 손을 대고 밀어서 쓰러뜨린다. 그러나 나는 손을 대지 않아도 쓰러지니 진짜다”라고 했으나 직접 할 때는 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홍 원장에 의해 쓰러진 후 집회는 끝이 났다.

한편, 초락도기도원에서 구입한 CD(2003년 1월 27일, 제12회 전국목회자부부능력대성회 집회현장)에서 재미있는 장면들을 볼 수 있었다. 홍 원장에게 건넨 성경을 다시 돌려받자마자 바로 쓰러진 사람, 홍 원장이 던진 손수건을 받고 쓰러진 사람, 홍 원장의 옷을 잡자마자 쓰러진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홍 원장이 겉옷을 던지자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쓰러지기도 했다.

또한 홍 원장은 컵에 담긴 물을 들고 “예수이름으로 명하노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될찌어다!”라고 외친 후 사람들에게 먹이자 그 물을 먹은 사람들은 모두 쓰러졌다. 홍 원장을 거치면 도구를 통해서라도 다 쓰러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여러 현상에 대해 묻고자 기자는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홍 원장은 이를 거절했다.(출처:목회와진리)

기독교이단대책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