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으신 세 가지 시험(마4:1-11)은 당시 세 가지 문화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헬라적 배경에서는 “떡” 즉 물질에 대한 시험, 로마적 배경에서는 “천하만국과 영광”이 상징하는 권력 지향성 시험, 유대적 배경에서는 표적을 추구하는 종교적 시험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그분에게 신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사탄이 예수님을 실족케 하려고 제기한 시험입니다.

그 중 첫째인 “돌로 떡을 만드는” 시험은 인간에게 가장 근원적인 유혹거리입니다. 신적인 권위를 지닌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경제 문제를 수월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강한 자신감에 찬 이 한마디로 빌 클린턴은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요구받는 것이 바로 이 문제 해결입니다. 이것은 저에게 전혀 유혹거리, 번민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돌로 떡을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병이어 기적’의 능력을 소유한 예수님께는 대단한 유혹거리였을 것입니다.

사탄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은 부여받은 권능을 활용해서 현생에서 위대한 입신양명자로 드러나야 한다는 거짓말을 수용하게 합니다. 어려운 일, 불가능한 일을 척척 해낼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묘한 유혹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은사를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유화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公)의 사유화(私有化)에 다름 아닙니다. 결국 이 첫 번째 요구를 수용하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은 물질, 권세, 명예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오용하는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요구를 결연히 거부하셨습니다. 못해서가 아니라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능력을 내 것인 양 사용하는 것은 연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는 하나님의 능력은 주신 분의 뜻을 이루며 교회 공동체에 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이런 것을 유념하지 못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는 이런 유혹을 종종 받고 있습니다. 이런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는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모든 것이 가(可)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지만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그 권한을 내려놓겠다고 했습니다(고전9:12).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겠다”는 윤리는 사회 각 분야에 요구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을 다 쓰지 않고 내려놓는 다는 것은 때로는 어렵습니다. 목회를 해 보니까 담임목사로서 주어진 권한도 크고 마땅히 누려도 되는 것들도 많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런 것들을 누리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덕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때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내려놓고 포기해야 합니다. 최근의 생태, 의료, 기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복제, 줄기세포 연구, 유전자 조작 연구 같은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농후해서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허용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비극이 자명하게 예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스로 규제하고 한계를 긋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못할 일이 거의 없어진 현대는 더더욱 이런 윤리적 태도가 필수적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류는 ‘판도라의 상자’를 다시 여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뿐입니다. 갈수록 우리에게 많은 권한과 능력이 주어집니다. 그것을 남용하거나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가 많습니다. 공직자, 사업가, 교사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의 특권을 내려놓는 운동을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사순절 기간입니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비우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예수님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고통의 잔”을 피할 수 있었지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오직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해야 합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생명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을 연습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컴퓨터, 오디오, 텔레비전, 휴대폰 같은 것을 일정 기간 사용하지 않고 지내보는 미디어 금식(media fasting)도 해 볼 만합니다. 그리고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하는 것”을 시도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 통해서 자신의 삶의 방향과 좌표를 다시 점검하고 재정렬하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윤리는 자율성에 기초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윤리의식입니다. 할 수 있지만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 스스로 하지 않는 그런 자발성이 있어야 합니다. 과연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글쓴이 : 기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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