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상황에서의 교회의 책임과 사회봉사적 사역

이승열 목사

1. 들어가는 말

지난해 하반기부터 세계적인 금융의 위기 현상이 구체화되면서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도미노 현상처럼 파급되었으며, 그 끝이 언제까지인지 혹은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지를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오늘날 더 큰 위기의식을 갖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는 미국의 국제적으로 유명한 금융회사들과 대기업들이 도산하거나 혹은 정부의 금융특별지원을 받아야만 하는 부실한 구조와 문제점을 나타내었다. 이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번져서 주택과 부동산 가격의 하락과 함께 경기침체, 내수소비시장의 경색, 실직자 양산, 주가나 펀드 등의 투자심리의 하락과 함께 자산의 가치가 급격한 하락세를 이루어서 중산층들이 신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되고 빈곤층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되었다.

국내에서도 오래 전부터 부동산 투자와 함께 부동산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올라서 양극화의 현상 문제가 거론된 지가 오래되었다. 특별히 재개발, 재건축, 뉴타운정책 또는 택지개발 등의 이름으로 전국에 개발붐을 조성하는 가운데 부동산 투자자들과 그리고 비양심적, 비윤리적으로 부동산에 재태크하여 개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특히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아서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금의 현상도 비일비재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의 경제윤리관에 있어서의 갈등 문제가 있고, 빈곤층에 대한 구호적, 자선적 도움과 섬김의 과제가 교회의 대사회적 봉사의 중요한 핵심적인 과제로 등장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의 개신교회에서는 사회봉사 혹은 사회선교에 대한 신학적 정립과 이해가 부족하며, 여전히 전도와 선교 지향적인 교회성장주의에 매여 있기 때문에 교회의 대사회적인 사명과제로서의 디아코니아 영역에서의 이해와 과제와 사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많은 혼란과 갈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더더욱 개교회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한국의 개신교회에서는 이러한 디아코니아 사역을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에큐메니칼적 디아코니아에 대한 이해와 협력과 참여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러한 때에 에큐메니칼적 디아코니아 사역과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 이러한 경제 위기 상황에 매우 중요하고 유익한 교회의 선교적이며 봉사적인 사명으로 이해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도행전3장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지체장애인 한 사람을 만나서 고쳐준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베드로는 그에게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였다. 어떤 이들은 오늘날 한국 교회는 은과 금은 있는데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는 믿음과 정신도 사라지고 금권정치와 교권정치에 너무 혈안이 되어 있으며 마땅히 섬겨야 할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 계층의 사람들에게 선한 이웃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하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다양하고 전문적인 사회복지적 시설들과 섬김의 사역들이 있고, 감동적이며 선교적 열매까지 나타나고 있는 교회들과 봉사적 선교 사역들이 많이 있다. 이제 이 경제 위기 현상과 함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 시대의 작은 자들에게 교회는 무엇을 섬길 수 있으며 어떠한 섬김의 과제들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성찰해 보고자 한다.


2. 빈곤 상황에 처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교회의 섬김 사역에 대한 역사적 고찰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 된 자들에게 아버지와 같고 보호자와 같은 분으로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복지적 법을 율법 안에 세밀하게 제도적으로 장치해 놓았다. 그들은 구약시대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여건에서 살아가고 있는 빈곤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구약성서의 기록과 역사 속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섬기는 자의 모델로 욥기서에 나오는 욥이라는 인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욥은 고백하기를 "나는 맹인의 눈도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도 되고 빈궁한 자의 아버지도 되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송사를 돌보아 주었으며, 불의한 자의 턱뼈를 부수고 노획한 물건을 그 잇새에서 빼내었느니라"(욥29:15-17),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거나 과부의 눈으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던가. 나만 혼자 내 떡덩이를 먹고 고아에게 그 조각을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 만일 내가 사람이 의복이 없어 죽어가는 것이나 가난한 자가 덮을 것이 없는 것을 못본 체했다면 만일 나의 양털로 그의 몸을 따뜻하게 입혀서 그의 허리가 나를 위하여 복을 빌게 하지 아니하였다면."(욥31:16~20)

신약성서에서는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1:27)고 참된 경건의 개념과 의미의 상징적인 행위로 빈곤층의 사람들을 돌보고 섬기는 것의 의미를 귀하게 강조하였다. 그래서 초대교회인 예루살렘교회에서는 어려운 과부들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기 위하여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다가 어려운 갈등의 문제를 겪으면서 집사의 제도가 생겨나게 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2천년의 교회의 전 역사를 다 살펴서 대표적인 사례들을 열거하거나 종합하기는 어렵지만, 대표적인 몇 가지의 사례들은 통해서 일관되게 역사 속에서 이루어져 온 교회의 대사회적 섬김의 사역인 디아코니아가 특별히 경제적 궁핍과 함께 곤고한 상황에 처해 있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교회 안과 밖에서 도움을 주고 돌보는 섬김의 사역을 감당해 왔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제도와 직분, 그리고 형식은 시대 상황에 따라서 제각기 다양한 모습을 띄고 있고 일관성 있는 모습으로 발전해 온 것이 아닌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와 세상과의 관계성이나 대사회적 책임사명을 디아코니아 차원과 개념에서 이해하고 섬긴 것에 대하여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며 예외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역사적 통찰력과 안목을 높이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짧은 역사적 성찰을 해 본다. 초대 카톨릭시대에 감독과 집사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을 돌보는 일과 예전적인 사역을 감당하는 일에 매우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특히 여러 지역을 맡고 있는 성직자들과의 연락관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집사직은 매우 감독에게 도움을 주는 보조자의 역할을 감당했었다. 그러다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종과 함께 빈민 구제와 모든 어려운 자들을 돌보는 구제 사역이 국가의 책임 영역으로 넘어가서 국가의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쉽게 일관성 있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교회의 대사회적 책임이 교권과 함께 권력 기반을 이루면서 본질적인 정신이 퇴색되고 상실되는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중세시대에 있어서 교회는 더더욱 본질적인 사명을 상실하게 되면서 수도원 중심으로 디아코니아 섬김 사역이 이루어졌다. 특히 가난한 농부들에게 개량된 농사법을 가르치거나 그들의 자녀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일들을 수도원에서 감당하였다. 괄목할 만한 발전의 모습은 바로 가난한 사람들, 중병에 걸린 자들, 나그네 된 자들을 돌보고 섬기는 구빈원Hospital이 생겨났고 이런 구빈원이 나중에 병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시대에 있어서 루터는 자유로운 개인적 구걸 행위를 금지하고 교회의 구제함법을 만들어서 제도적으로 지역사회의 모든 빈민들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일에 기여하였으며 그 법들이 유럽 여러 나라에 파급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칼빈은 제네바의 종합구빈원을 통하여 가난한 자들을 돌보았으며 특별히 종교의 자유를 위하여 프랑스로부터 피난 온 위그노파 사람들을 위하여 ‘프랑스기금’을 만들어 그들을 섬겼다. 특이한 점은 교회의 공식적인 직제인 집사 직분과 함께 프랑스 난민들을 돌보고 섬기는 자들에게도 집사 직분을 주어서 섬기게 하였다. 그리하여 교회의 집사 직분이 가난한 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는 중요한 섬김의 직분임을 강조하였고 증명하였다고 할 수 있다.

경건주의운동은 16세기 아른트로부터 시작되어 스페너, 프랑케, 진젠도르프 등을 거쳐 20세기초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진행되었으며 특별히 개신교회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경건주의가 칼빈주의와 청교도주의와 함께 영적 경건성을 강조하면서도 한편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섬기는 디아코니아 사역이 함께 발전해 온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국 교회에 미친 영향에서는 디아코니아면에서는 매우 부정적이며 소극적이었음을 볼 수 있다. 그 원인은 정통주의 신학의 영향과 세대주의적 종말론에 근거하고 있고 또한 보수적인 근본주의적 성향의 신앙에서 온 세계관 때문에 세상 혹은 사회와의 관계성 자체에 큰 장벽이 놓여져 있었으며 이것을 극복하는 신학적 이해가 부재한 것이 아닐까? 즉 사회선교적 디아코니아적 선교관이 필요한 부분이다.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는 역사와 시대는 독일교회의 19세기 교회의 사회선교와 디아코니아의 발전에 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주목할 인물은 독일교회 사회선교Innere Mission의 아버지 혹은 독일교회 남성중심적인 디아코니Diakonie의 개척자라고 불리우는 요한 힌리히 뷔헤른Johann Hinrich Wichern과 개교회의 여성봉사자들Diakonissen 제도를 만들어서 목회자의 목회 동역자로서 함께 참여하게 한 프리드너 목사Theodor Fliedner이다. 이들은 산업혁명이 일어나 엄청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난 격변기에 태어나서 도시빈민들의 문제와 청소년들의 도덕적 타락에 따른 아이들의 사회교육적 필요성 그리고 가정예배와 성수주일의 전통적인 신앙의 가치관이 붕괴되는 때에 영적 교육, 직업교육, 봉사자 교육을 통한 사회교육으로 훌륭한 봉사자들을 길러내고 교회의 조직적인 사회선교와 디아코니사역을 감당하게 하는 기틀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였던 인물들이다. 한국 교회는 특히 1848년에 개최된 제1회 ‘교회의 날’Kirchentag 행사와 이때 독일교회 최초로 조직된 <사회선교중앙위원회>Central Ausschuss der Inneren Mission과 이 조직이 뷔헤른을 중심으로 만들어낸 ‘독일교회 사회선교백서’Denkschrift ...를 자세히 소개하고 학습할 필요성이 있다. 여기서 뷔헤른은 사회적 책임성을 지닌 교회와 그렇지 못한 교회들을 비교하고 있으며 모든 사회적 빈곤층과 사회적 재난의 상황을 상세한 통계와 발로 뛰며 조사하고 분석한 여러 가지의 현황들을 소개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독일 개신교회가 공식적으로 1848년을 기점으로 발전해 온 모든 디아코니 사역과 사회선교 사역의 160년 역사가 이때의 역사의식과 신앙적 각성을 계기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교회의 디아코니 역사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주목할 부분은 전후 직후 독일교회의 죄책고백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져서 ‘바르멘Barmen선언’과 ‘슈튜트가르트죄책고백’Stuttgart Schuldenbekenntniss이라는 문서에서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저들이 죄를 하나님과 세계 앞에 고백했을 때에 세계의 기독교가 전범국가인 독일에 엄청난 구호금과 구호물자를 <세계로부터의 빵>Brot aus der Welt이라는 기구를 통해서 전달하여 갖가지 구호 사업과 무너진 교회 예배당의 수축을 비롯한 도시 기반과 경제 회복을 이루는데 귀하게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독일경제가 회복된 이후는 <세계를 위한 빵>Brot fuer die Welt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구호 활동과 섬김의 활동을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행해 온 역사를 볼 수 있다.

3. 한국 교회의 역사를 통해 본 빈곤복지

한국 교회의 선교 역사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 호주, 카나다 등지에서 온 선교사들의 사회봉사적 선교Diakonische Mission을 통하여 직접적인 선교의 길이 열렸고 그들의 병원 설립과 의료선교, 그리고 학교 설립과 교육선교를 통해서 더 효과적으로 선교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 목회자들은 1907년에 첫 졸업생 7명을 평양신학교가 배출한 이후 계속해서 교회를 설립하는 일과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는 직접적인 선교목회를 중심으로 목회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외국 선교사들은 한국인 목회자들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네비우스선교정책을 적용하면서 구체적으로는 한국인 목회자들의 지적 수준을 높이지 않았고, 특히 인문사회과학과는 거리를 두었으며, 디아코니아 사업은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하고 내국인 목회자들은 상관없게 하였다. 그러나 최초로 목사안수를 받고 평양 장대현교회를 목회한 길선주 목사는 놀랍게도 사회개혁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생각을 목회에 접목시켜서 놀고먹는 실업자 청년들이 한 사람도 없게끔 잘 아는 기독실업인들에게 부탁하여 일자리를 소개해 주었고 모든 장대현교회의 청년들이 직업을 가지고 일하게 되었다.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1928년에 시작된 농촌계몽운동이다. 이 해에 총회의 농촌부가 신설되었으며, 그 다음해인 1929년부터 1932년까지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인 경제공황의 여파가 한국땅에도 미쳐서 경제적인 위기 현상과 더불어 일본의 경제수탈이 더욱 심해지는 때에 한국 교회는 농촌운동을 통해서 실제적인 농촌교회의 구성원들이 농가의 소득이 증대되는 효과를 얻어낼 수가 있었다. 전체 교회의 73%가 농촌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일제의 경제 수탈과 함께 교회의 경제적 핍절함이 심각했었다. 농촌계몽운동은 문맹퇴치를 위한 야학도 있었지만 외국으로부터 경제전문가들을 초청하여 농사의 개량된 방법에 대한 강의와 농가소득증대의 주요 수단이 되는 양계, 축산, 양돈, 잠농, 과수재배법 등이 소개되었으며, 장기저장이 가능한 통조림 만드는 기술이 이때에 국내에 전수되었다.

1932년에 <조선예수교서회>대한기독교서회의 전신가 출판한 곽안련Charles Allen Clark 선교사의 저서 ‘교회사회사업’은 이 당시에 한국 교회가 사회봉사적 의미에서 어떠한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떤 사업을 사회봉사적으로 해야 하는지를 증명해 주는 중요한 문서이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영역은 민중의 경제상 생활에 대한 교회의 책임, 자선사업, 빈민구제, 고아와 양로사업, 한센인(문둥병), 정신병, 맹인, 농아, 폐병과 같은 난치병자에 대한 교회의 책임, 죄수와 교회의 책임, 폐창과 교회의 책임, 금주와 교회의 의무, 담배와 독약(마약), 동물대우, 평민의 오락에 관한 부분까지 포괄적이며 중요한 사회적 책임영역으로서 다루어진 내용들이 오늘날보다도 더 앞선 의식과 사상이 깔려져 있음을 볼 수 있다.

특별히 제일 먼저 다루어진 “민중의 경제상 생활에 대한 교회의 책임” 부분에서 다루어진 내용을 보면, 오늘날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겪는 경제 위기 현상과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도 얻을 수 있으며, 개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들이 사회적 문제와 영적 지도자로서의 균형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구체적으로 행동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데 매우 유익한 문서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다음에 몇 가지의 내용을 소개하려고 한다.

첫째, 우리 민족의 4/5가 농민인즉 모든 목사와 교역자들이 마땅히 주의하여 농업을 개량할 과학적 원리와 방법을 지도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였다. 경제생활에 필요한 소비조합의 원리를 교육시키고, 자본주를 권하여 공장이나 산업시설에 대한 투자를 권고하게 하고, <기독청년회>에서나 고등학교 등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이 농사학습을 받도록 하는 것이 목사와 교회의 책임으로 알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시대가 모든 일이 분업화 되어 가고 있으며 온 세계가 피차에 서로 의지하는 관계를 가지고 살게 되었다는 현실 분석이 정확하고 미래적 전망을 바르게 하였다. 문제점으로 본 것 중의 하나는 민중들의 의복이 전에는 직접 실로 천을 짜는 방적을 해서 입었으나 현재에 민중들이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생활필수품들이 일본이나 타국에서 만든 포목을 쓰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만큼의 최근 20여 년 동안의 사회생활의 변화를 지적하였다.

셋째, 민중들에게 목사가 노동의 신성함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육체노동을 부끄러운 하등한 노동으로 여긴 잘못된 생각을 고치도록 목회자도 친히 자기의 손으로 노동하는 모법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목사가 교회 청년들에게 아직 조선에 소개되지 않아서 잘 모르고 발달되지 않은 영업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많은 흥미를 갖게 하고, 그 영업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크게 유익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옥건축업(서양신식목수, 미장이, 석수, 칠하는 일, 수도 놓은 일, 건축과 토목업), 이런 일은 대부분 중국노동자들이 와서 크게 돈을 벌어서 중국으로 가져간다고 하는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어떤 조선청년의 말이 “우리는 중국인과 같은 기력이 없고 따라서 장구한 시간으로 계속할 수 없으며 또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자조적인 비관적 말에 대하여 곽안련 선교사는 주장하기를 “이 세상은 익숙하고 유력한 자가 주관하는 세상이 되는 것을 우리가 부인할 수 없다. 중국인이 우리보다 힘이 세고 더 부지런하면 무슨 방책으로 막든지 필경 그 효력을 보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고 그 원리를 따라 제힘껏 일하는 자가 놓은 지위와 행복을 얻는 것이다."

다섯째, 전기업, 철공, 기관수와 같은 직업, 자동차, 철도, 전차와 같은 차량운전영업, 각종 기계제조, 수선업과 같은 일군이 앞으로 많이 필요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그러므로 기독청년들이 교사하는 좁은 길로만 가지 말고 각종 공업을 실습하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고 보았다.

여섯째, 과학적 농업을 하도록 농업에 대한 개량법과 좋은 종자를 주어 권장해야 한다. "예수교공의회 위원이 지도하는 더 좋은 돼지와 양계와 묵은 토지에 양을 기르는 일과 우유사용과 기름 버터 만드는 것과 기타 전에 쓰지 않았던 새 곡식과 과실을 재배하는 부업 같 은 것을 함으로 큰 유익을 얻을 줄로 생각한다.”, “근육노동에 대한 부업뿐 아니라 뇌로 하는 부업도 있고 또 농촌 아이들이 양토(養兎:토끼 키우기)로 고기와 새끼를 얻을 수 있으니 부지런히 그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 장래에 큰 소망이 있으려니와 직업에 대한 귀천을 따지고 큰 이익을 볼 것만 찾으면 장래에 큰 소망이 없을 것이다”, “목사는 이제 농업에 대한 과학적 방법을 충분히 교수하지 못하나 공부할 만한 곳을 소개도 하고 배울 기관을 지어줄 수도 있은즉 농촌교회와 농민생활에 대하여 낙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곱째, 모든 채소장사를 중국인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이제는 외국인에게 맡기지 말고 조선 사람들이 하도록 해야 한다. "어떤 청년의 말이 중국인들은 채소 재배에 특별한 기능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일에는 너무 노력을 많이 쓰게 되나니 물을 대는 것과 햇빛을 조절하는 일과 비료를 운반하는 여러 가지 어려운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새벽부터 저녁 어두울 때까지 쓴즉 할 수 없다한다. 조선 사람이 저 중국인과 같이 노력과 시간을 쓰지 아니하고야 어찌 같은 결과를 바랄 수가 있을까? 조선 사람이 저 중국인만 못할 이유가 없고 저들의 기능이나 지혜가 우리보다 나을 것이 없다. 물론 처음에는 노력이 많이 들고 이익도 적을 것이다. 채소영업자는 그 용달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고 어떻게 그 원하는 뜻을 맞추어 보기좋고 먹기 좋게 배양할 것이요 또 여러 가지로 개량하여 좋은 씨를 구하며 합당한 비료를 사용함으로 많은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방면으로는 채전에 세금도 비싸고 그 채소를 팔기 위하여 행상을 아니할 수 없으니 실로 난감한 일이다. 그러나 중국인이 하여 모으는 돈을 조그만 수고를 아낌으로 빼앗겨서는 안될 것이다."

여덟째, 농업을 교수하고 장려할 뿐 아니라 목사가 농민을 권하여 그 토지를 팔지 않도록 할 것이다. "농민이 자기 토지를 지키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리 곤궁하다 할찌라도 평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으나 한번 토지를 팔고 보면 그 생황의 장래를 위하여 어떤 공장에 들어가 종노릇을 하든지 살기 어려운 외지로 쫓겨날 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지를 팔아먹는 일이나 빚을 지는 일이나 저당 잡히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게 힘써 권면해야 한다."

아홉째, 유망한 업종을 소개하고 권면하였다. "도회지에서 인쇄, 제책영업, 차량제조업 등이 장래에 발전할 희망이 많은 영업이다. 그러므로 많은 시간과 수고가 들지라도 한번 배워놓은 후에는 매우 유익하다."

열 번째, 30년 후의 미래에 산업 시대가 도래할 것을 정확히 전망하고 공장 문명(산업화된 공장)의 일군 양성을 권면하였다. "불과 25년 내에 놀랄 만한 공장 문명을 볼 것이니 우리 민족의 번식이 해마다 증가한즉 단순히 농업만 가지고 생활하기 어려울 것은 분명한 것이다. 현존한 몇 가지 공장이 아직 적은 규모로 하며 약간한 자금도 잠겨있으나 후일에 생길 것은 대규모로 된 큰 공장과 많은 직공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지금 청년들이 현재 소규모의 공장에서 영업을 학습함으로 후일 큰 공장에서 주인 노릇할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50년 전에 있던 일본의 경제 형편이 현재 우리나라와 같아서 모든 국민이 빈한하고 인구는 너무 증식하여 식량까지 문제가 되어 있었다. 그때에 정부에서 많은 청년들을 택하여 타국에 가서 공장에 들어가 직공으로 일하게 하였는데 고등계급에 있던 집 자녀들도 외국에 가서 하등지위에서 그 사업을 친수로 배워가지고 본국에 돌아와 노동복을 입고 여러 가지 공장을 설립하여 일을 하고 그 중에 더러는 농업을 학습하여 본국 농업을 개량하였는데 힘썼음으로 전국을 위협하던 빈한한 형편은 그 나라로부터 쫓겨나가기를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높다는 계급에 있는 청년과 부호의 자녀들이 학업을 마친 후에 노동복을 입고 친수로 수고하지 아니하면 타국인이 그 모든 일을 주관하게 될 것이니 그 때에 우리는 남의 손아래서 적은 임금을 받고 종으로 일할 밖에 없을 것이다. 어찌 소홀히 지낼까 보냐" "어찌하든지 이 공장 문명은 분명히 우리에게도 올 것이니 모든 목사는 이 일에 대하여 연구하고 청년들을 옳게 지도함이 가하다. 이제부터 30년 후에 민중이 공장에서 일자리를 못얻으면 그 의식주 유지가 말유할 터이니 민중의 큰 생활기관이 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산업시대에 도래할 문제를 미리 헤아려 보는 혜안으로 내다보면서 노동자를 보호하고 합당히 적용할 법이 시행되기를 희망한다는 언급도 하였다.

열한 번째, 교회에 상당한 자본가가 있으면 가난한 무산자들을 돕기 위한 영업 시설을 지도할 것을 권면하였다. "목사는 교회에 자본주와 신자를 권하여 손해나 곤란을 받지 않을 정도에서 지혜있게 지도함이 좋으니 보통 평민을 위하여 다 돌아볼 수 없으나 신자 중에 가난한 자를 위하여 도와주는 뜻으로라도 하게 하되 목사가 그 사업 성패에 결과를 책임질 것은 아니다. 이런 일에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어떤 자본가가 건물을 준비하고 제조기계를 사서 노동자를 사용하여 물건을 제조하면 으례히 이익을 얻을 줄로 생각하나 뜻밖에 복잡한 난관이 많은 것이다." 여기에 노동자의 임금 결정도 그 직공의 능률과 시간에 따라서 임금을 결정해야 하고 영업의 결과와 새 재료를 들여오는 것과 재고품 처리 문제 등 복잡한 영업에 따른 문제까지도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교역자들이 그 본직을 수행하면서 민중을 도와주고 힘을 쓰고 빈한한 신자들을 위하여 특별히 무직업한 청년들을 위하여 이런 일 맡아보는 단체와 기관에 더욱 소개하고 도와줄 것이며, 교역자가 신자의 경제생활을 도와주는 것 보다 그들을 위로하고 장려하여 앞길에 희망의 광명을 줄 수 있으면 더 큰 운동을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부지런히 직접 자기 손으로 노동을 하고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외국인, 즉 중국인들에게 의존적이었던 힘들다고 생각되는 일도 우리가 직접 하고 미래에 도래하게 될 시대적 안목을 가지고 준비하는 지혜를 주고 있는 이 문서는 교회와 목회자들의 사회적 책임에 있어서 너무나도 구체적인 실례를 들면서 삶의 가치관과 태도, 그리고 세상의 변화와 시대적 상황에 대하여 너무나도 적절히 대응하고 적극적으로 처신하는 중요한 지침서가 된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책임으로서 감당해야 할 사회봉사적 사명과 책임에 대한 지혜를 얻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첨가해서 소개할 내용은 '빈민'에 대한 글이다. 저자는 가난하게 살면서 생활 유지를 못하는 일곱 가지의 원인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음주도박과 까닭 없는 게으름

둘째는 질병이나 빚진 것으로 낙심과 실망으로

셋째는 수단과 정신 작용이 부족하여 일할 줄 모름으로

넷째는 수단과 정신 작용이 부족하여 일할 줄 모름으로

다섯째 돈이 생기면 간수할 줄 모르고 합당히 쓸 줄 모르는 이유로

여섯째 신체 불구로 적합한 취직을 하지 못함으로

일곱째 정신 능력이 부족하여 살림을 경영할 수 없음으로

위의 일곱 가지의 원인으로 인하여 어렵게 살고 있는 빈민에게 사랑으로 도움을 주는 구제행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지침을 주고 있다.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떠한 태도와 인간 관계를 맺으면서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논하는 윤리적인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시대와는 시간적인, 환경과 문화적 차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번쯤 새겨볼 만한 의미도 발견될 수 있다.

1) 음주, 도박과 게으름으로 인한 빈민

"이들을 교회나 사회가 먹여줄 책임이 도무지 없으니 굶겨두는 것이 은혜가 될 것이다. 주리는 중에 죄값이 얼마나 지독한지 깨달을 수 있으니 공산주의를 힘써 찬성하는 자 중에 이러한 무리가 있다. 로국(러시아)정부가 전국민의 의식을 담당하는 이만큼 술먹는 자나 게으른 자도 생전에 놀고 먹을 수 있을 줄로 생각하였으나 정부에서 그런 사람을 먹여주면 부지런히 일할 사람이 하나도 없고 다 게으른 자가 될 수밖에 없는고로 모든 게으른 자를 잡아 일을 시키되 보호하는 병정을 두어 만일 게으르면 죽여버리는 법을 세웠으니 자본주의국에서보다 더 고생을 하는 것이다."

2) 질병이나 부채나 기타 고장으로 된 빈민

"이들은 전자와 형편이 다르니 교회가 힘써 붙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빚진 것이 많고 앞으로 희망이 없으며 일자리도 없으면 크게 낙심하여 그 생활유지를 할 생각도 아니하게 된 즉 그런 사람에게 동정하고 위로하며 조금이라도 붙들어주면 다시 일어나서 그 궁곤한 자리에서 벗어나올 수 있나니 어떤 때에 금전으로 돕지 않고 동정만 하여도 좋을 때가 있다. 병으로 직업이 없을 때에 임시로 잠간 도와주면 다시 그 책임을 감당하게 될 수 있으니 이런 도움을 받지 못하면 그 살림을 헛저버리고 사회에 기생물이 되기 쉬운 것이다."

3) 신체 건강하고 취직도 원하나 일없음으로 된 빈곤

"현시에 제일 큰 문제가 되어 있으니 농촌에서 그 농토를 빼앗긴 농군들은 도시로 모여들고 도시에 노동자들은 직업을 얻지 못하여 그 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자 날마다 그 수가 더하여 간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형편에 있는 자를 위하여 부자들이 토막화목을 많이 준비한 후에 그 실업자를 불러 화목을 만들어 시장에나 신자의 집에 팔게 하는데 이런 일을 하게 되면 교회나 그 당사자가 이따금 손해를 당하기 쉬우나 도움을 받은 빈궁한 자는 벌이하여 얻은 돈으로 알고 자존심과 자립 생활에 아무 손해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구걸성을 기르지 아니할 것이다. 어떤 목수나 장인이 그 연장을 잃어버리든지 없어짐으로 벌이를 못하고 있거나 농군이 씨나 기름을 변통하지 못하여 귀경하지 못하면 한번만 도와줌으로 자립 생활을 할 수 있고 다시 도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4) 수단과 정신작용이 부족하여 일할 줄도 모르는 원인으로 된 빈궁

"다만 근력만 남만 못하지 아니하나 수단과 눈치가 없어서 임금이 적은 노동밖에 얻을 수가 없은즉 항상 그 생활이 곤란한 자가 있으니 이러한 자에게는 독촉을 하여 좀 더 유익한 일을 배우도록 권할 것이다."

5) 돈이 생기면 간수할 줄 모르고 합당히 쓸 줄을 몰라 빈궁한 자

"이런 자는 실로 도와주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 식구 중에 똑똑한 정신이 있는 자가 있으면 그를 시켜 그 생을 유지하도록 지도할 것이다. 만일 없으면 그 식구들을 남의 고용살이로 주선하여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6) 신체불구(장애)로 적합한 취직을 하지 못함으로 인한 빈궁한 자

"아무리 불구자 중에 있으나 생활에 대한 자존심만 있으면 생활비를 벌 수 있을 것이다. 게으른 자는 그 신체의 불구를 오히려 자랑삼아 걸식을 영업으로 택하나니 이런 불구자들에게 할만한 사업을 가르쳐주는 교회나 무슨 기관에 보내어 일을 배우게 하는 것이 임시 금전을 주어 돕는 것보다 좋은 일이다."

7) 정신이 불완전하여 빈궁하게 된 자

"이런 자들에게도 여러 계급이 있으니 사회에서 이런 사람이라도 가정을 이루어 자식을 낳게 하는 제도는 큰 유감이다. 이런 부모에게서 난 자식은 정신이 부족하고 실신하는 자와 간질병자가 많아 구미에서 억지로 이런 사람에게 수술을 행하고 피임케 하는 것이 합당하다 하며 그대로 실행하는 곳도 있다. 이런 사람은 자기생활 자립을 경영할 정신이 없으며 그 일가친척에게 위임하여 돌아보게 할밖에 다른 소망이 없다."

"현금을 주어 일시 구제하는 것보다 그 사람에게 장구한 유익을 주는 것이 좋다고 하였으니 예수의 사랑을 진실로 보여주려면 돈을 주지 아니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십중 팔구는 현금을 받아가지고 대부분을 허비하여 버리며 또한 받는 자를 기생물로 만들기 쉬우니 이는 예수의 참정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현금을 집어주는 것은 가장 게으른 자의 방법이요 사욕 있는 자의 방법이다. 구제의 참비결은 돈보다 우리에게 있는 사랑과 정신을 주어야 참구제가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영업적으로 구걸 행위를 하게 하는 조직적인 단체의 문제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자에게는 일을 시켜보면 일자리가 있어도 일을 하기 싫어하니 사회의 해로운 자요 도적과 같다. 일을 주어도 아니하면 땀흘려 얻은 것을 그런 사람에게 값없이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홍수나 큰 화재 지진 같은 천재에 대하여 구제할 것은 균일한 도움을 주려면 중앙사무실이 있어야 되고 시제를 한 후에 따라가서 마땅히 구제를 받을만한 사람인지를 알아보아야 한다고 했다. 서양에서 늙어 병든 자들의 생활자립을 할 수 없는 자들을 위하여 정부가 빈민원을 세워 유지하는데 어려운 노동을 해야 하고 그 생활 형편이 형무소보다 나을 것이 없으니 이런 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일을 싫어하고 기생생활을 좋아하는 자가 몰려들기 쉬운 것이다. 이런 기관을 교회가 경영하게 되면 비용문제, 음식문제, 등으로 불평이 많고 비평하게 될 것이다. 임시로 거처를 얻어서 살게 하면 기간이 지나서 나가지 않고 눌러앉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다만 추운 겨울 6 개월 동안만 근처 음식점이나 하숙집 같은 곳에 약조하여 숙식비를 교회에서 주다가 때가 되어 나가게 하고 서양처럼 경찰서 옆에 공동숙박시설을 두고 일할 수 없는 자들을 추운 겨울에 지내게 하는 것도 귀한 일이다."

한국 교회는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통치하에서 세계적인 경제 공황을 겪었고, 일본의 노골적인 경제수탈과 대동아전쟁 기간 동안에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지속적이며 악랄한 비인간적인 수탈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물자에 쓰이는 기본적인 철의 공급을 위하여 민중들의 가마솥과 놋쇠로 만든 밥그릇, 수저, 세수대야까지도 빼앗아 갔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탈의 과정을 겪은 뒤에 해방을 맞이하였지만 변변한 산업시설이나 경제적 기반이 되는 시설들이 채 갖추어지기도 전에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모든 기반이 다 파괴되고 무너지는 엄청난 재난을 우리 민족은 겪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겪으면서 폐허더미에서 다시 일어나 황무지를 개척하고 민둥산에 나무를 심고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우리 민족은 60대를 기점으로 산업화의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에는 세계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경제대국이 되어 가는 중에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 중에도 빈곤층의 삶의 형편은 너무나도 열악하고 양극화의 현상이 심각하고 경제정의에 대한 그리고 경제윤리에 대한 의식과 도덕적 의식의 결여로 인하여 발생하는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것을 보고 있다.

4. 세계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의 한국 교회의 대응과 과제

실업자의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서고 실질적인 실업자수가 350만 명을 넘어서며, 일자리 창출과 잡셰어링Job-Sharing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일자리 지키기와 소비절약이 삶의 중심이 되고 있는 오늘의 현황이다. 정부에서나 지방자치단체에서나 교회에서마저 사회적 기업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고, 복지선교적 목회를 중요시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

이미 10년 전에 겪었던 IMF 때와는 전혀 다른 배경과 상황이라고들 말하며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복합적인 문제들이 사회학적으로 분석되고 거론되지만 정작 교회는 당장에 영향을 받고 있는 개교회적 예산운영에 차질을 빚으면서 당황해 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경제 불황 속에서 개교회 상황에 따라서 차이가 있겠지만 예산에 못미치는 수입결산과 절약과 자제하는 지출전략을 경험하였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 있는 현상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볼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고, 섭리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으로 고백하는 믿음에 근거해 볼 때에는 새로운 기회가 되고 더욱 미래를 긍정적으로 기대해야 할 근거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다음에서 지난 IMF 상황과 연관하고 또한 새로운 경제 위기 현상에서 예장(통합)측 총회적 차원에서와 교단 내에서의 경험과 현상을 정리하면서 대응의 바람직한 태도와 사회복지 혹은 기독교사회봉사적 차원에서의 과제 등을 서술하는 것이다.

4.1.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교회의 신앙각서

  예장통합측 총회는 지난 1998년 9월 24일에 개최된 제83회 총회시에 한국 교회 최초로 신앙각서라는 이름으로 IMF 경제 상황을 겪으면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교회의 신앙각서’를 발표하였고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이 문서는 한국 교회의 역사상 매우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 문서가 되었다. 대사회적인 교회의 책임과 입장을 밝히는 문서의 종류로는 서양의 교회들이 전문적인 신학적 연구와 사회학적 연구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정책문서로 내어 놓은 도큐멘테이션Documentation, 혹은 백서 내지는 각서 형태의 Denkschrift가 있고, 총회장이나 감독이 그때그때 순발력을 가지고 심각한 사회 문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이나 기독교인으로서 입장과 태도를 밝히는 담화문 혹은 목회서신 형태의 글들이 있다. 이 모든 문서들이 사회선교적 차원과 교회의 대사회적 책임과제로서 매우 중요한 문서가 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의식과 삶의 태도에 변화와 자극 내지는 도전이 되고 바른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문서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당면한 어려운 상황을 타개해 낼 수 있는 역량을 이끌어 내고 힘을 모으고 해서 사회적 영향력을 크게 집대성할 수 있는 기회를 삼게 되는 것이다. 이 문서가 발표되고 세계교회 앞에서도 소개가 되었을 때에 한국 교회가 그만큼 사회적 책임의식이 있는 성숙한 교회로서 성장한 것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문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신앙각서는 구조에 있어서 전문, 국가경제 위기와 교회의 책임, 기독교 신앙에서 본 경제와 윤리, 정의로운 경제공동체를 향한 교회의 선교적 과제(1.경제구조와 현실의 개선을 위한 노력, 2. 교회의 재정과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의 반성, 3. 가난한 자와 희생당한 자를 위한 봉사의 실천), 공동기도문, 그리고 부록으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교회의 선교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부록 ‘IMF 시대 난국을 극복하는 종합프로그램’에는 1. 상담프로그램, 2. 교육프로그램, 3. 복지프로그램, 4. 재활프로그램, 5. 정보네트워크 등이 소개되어 있다.

전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과 같이 이러한 경제위기 앞에 우리 성도들은 시대의 징표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신앙적으로 깨달으려고 하며,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서 경제를 살리며 나라를 구하기 위한 교회의 책임과 과업이 무엇인지를 성찰하면서 위기의 시대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부과된 선교적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려고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가 이제까지 신앙과 경제문제가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바른 경제윤리를 가르치치 못했으며, 잘못된 경제행위나 그릇된 경제적 가치관을 비판하지 못했음을 회개해야 한다. 이 기회에 기독교 신앙과 경제문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정립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정의로운 경제공동체의 모습을 거울삼아 불의하고 모순된 경제현실을 비판하고 개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아울러 그리스도인들 자신과 교회공동체의 경제적 행위와 삶의 방식에서도 반성과 개조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국가경제의 파탄과 기업들의 파산사태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터와 희망을 잃고, 실업자, 노숙자, 자살자들이 날로 늘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고 있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사랑하고 보살펴야 할 책임이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온갖 자원과 역량을 바쳐 희생자들을 돕고, 절망 속에 낙심한 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전문 중에서)

4.2. IMF 이후 10년 동안의 변화

지난 IMF 상황 이후 1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회적 변화가 이루어졌으며, 특히 사회복지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변화와 학문적 발전, 그리고 사회복지제도의 발전이 있었다. 교회 또한 사회봉사(디아코니아)와 사회선교 그리고 기독교사회복지에 대한 관심과 의식이 높아졌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목회자가 늘어났고, 개교회에서 노숙자쉼터나 그들과 노인들을 섬기기 위한 무료급식소 운영하는 교회들이 생겨났으며 그 후 10년 동안 꾸준히 이러한 섬김의 사역을 계속해 온 교회들도 아직 많이 있다. 그래서 지난 2008년 10월에는 예장(통합) 총회 사회봉사부는 노숙자쉼터 사역 10주년 기념예배를 드렸으며 그날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노숙자 사역을 감당해 온 목회자들에게 총회장 명의의 감사패와 사회봉사부장 명의의 감사패 증정식도 있었다. 그리고 12월에는 전국의 6개 지역에서 7천여 명의 노숙자들과 함께 그리는 성탄절 거리예배가 있었고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점심식사와 선물을 전하고 위로하는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IMF 상황에서 무너지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가정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회복시키기 위한 치유적인 개교회적인 섬김프로그램으로 기억되는 모델은 청주 지역에 있는 S 교회의 ‘열두광주리헌금제도’이다. 이 교회의 목회자는 평소에도 소외된 장애인들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어려운 성도들을 잘 돌보고 섬기는 나눔과 섬김을 기뻐하는 목회자였다. 갑자기 닥친 IMF 상황에 부도가 나고 경제적으로 파산이 되어 무너지는 가정들을 돕기 위한 결단으로 ‘열두광주리헌금제도’를 결심하고 교회적으로 시행했다. 결코 쉬운 참여가 아니었지만 기존에 교회에 내던 십일조 외에 십일조를 한번 더 내도록 권면하여 어려움을 겪지 않고 가정의 경제생활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는 여러 가정이 한 가정을 완전히 살려내는 그러한 정신으로 내는 이 헌금으로 200여 가정이 일 년 내에 모두가 힘을 내고 완전히 회복되어 한 가정도 낙심하거나 망한 가정이 없고 다 은혜와 사랑 안에서 힘을 얻고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과도 같은 역사가 일어나고 교회는 이전 보다 더 크게 부흥하고 성장하였다.

지난 10년 동안에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더 발전하여 일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이르게 되었지만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현상이 심각하고, 가진 자들의 부동산투자와 함께 땅값과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솟았고, 그리스도인들도 주식투자나 펀드투자로 인하여 많은 손실을 보는 경우도 흔한 일이 되었다. 즉 경제정의와 경제윤리의식의 결여 혹은 갈등과 혼란의 문제들이 혼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한때 일확천금을 얻고자 ‘바다이야기’ 같은 도박장이 전국적인 열풍으로 번져나갔으며 아직도 몰래 영업을 하는 곳이 많고, 강원도 폐광촌에 건설된 국내인들이 유일하게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에는 매일 8천 명에서 1만 명의 사람들이 출입하며 가산을 탕진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현상도 생겼다. 어렵고 추하고 위험한 일 즉 3D 업종에는 체면상 자신의 품위 유지를 위하여 실업자로 살지언정 일하지 않고 회피하는 현상이 심각하여 이 땅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외국인노동자들로 넘쳐나고 이 땅에 외국인이 1백만 명이 넘게 살고 있는 다문화사회가 되었다. 그리고 이주민 결혼이민자들도 많이 생겨나서 농어촌에는 외국여성과 결혼한 가정들이 많으며 다문화가정에 대한 복지정책과 그 가정의 자녀들과 여성들에 대한 섬김의 과제들이 복지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말미암아 발생한 미국 월가의 금융 위기와 갈등은 미국의 부동산값의 하락과 부실은행의 부도사태, 위험한 파생금융상품의 문제로 인하여 도덕적 문제와 실질적인 경기 침체와 파산 가정의 속출 현상이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확산되어 갔다. 여기에 고유가, 고금리, 고환율 현상도 생겨나서 한때 원유값이 배럴당 150달러를 넘었던 때도 있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도시재개발, 재건축, 뉴타운건설, 택지개발과 같은 개발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가고 있다. 그러나 경기의 불황과 함께 수많은 기업들과 특별히 건설회사들의 부도와 미분양아파트의 문제가 있고,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위한 그동안 투자 억제를 위하여 만들었던 대부분의 부동산투기억제정책을 다 풀어주었다. 또다시 부동산 투기 현상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며, 빈곤층에게 공급할 안정적인 임대주택의 공급 계획이나 재개발 지역에서의 세입자들의 문제는 지난 두 달 전에 발생한 용산 사태에서 본 바와 같이 빈곤층에게 매우 불리하고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재개발 문제와 연관해서 교회들도 어려움을 함께 겪고 있는데 특히 상가건물에 세를 들어 있는 임대교회들의 문제가 심각하다. 그래서 예장(통합) 총회 사회봉사부는 <도시재개발지역교회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세미나를 개최하였고 자료집 발간과 법개정을 위한 연구와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4.3. 새로운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교회와 과제

사회복지의 문제는 항상 있어 왔으며 인권의 문제와 함께 삶에 있어서 자립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여러 가지의 조건과 환경 가운데 살아가는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도와줌으로써 더욱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삶의 여건을 유리하게 도와주는 중요한 사회적 질적 성숙함의 과제이며 책임으로 이해되고 있다. 특별히 교회는 대사회적인 책임과제이며 교회의 본질적인 과제로서 섬김이라고 하는 디아코니아 사명을 가지고 있으며 오랜 역사 속에서 나름대로 다양한 모양으로 그 사명을 감당해 왔다.

이 마지막 부분에서 오늘날 당면한 경제위기 상황과 연관해서 대응하는 교회적 과제를 디아코니아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연관있는 프로그램과 운동, 그리고 방향성에 대하여 고찰해 보려고 한다.

1) 경제 위기에 대응하는 교회의 사명과 과제에 대한 사회포럼

예장총회 사회봉사부 산하의 전문위원회 중의 하나인 사회문제위원회는 사회 문제의 이슈 중에 경제 위기 문제를 가장 크고 중요한 과제로 삼고 십년 전에 있었던 경제 위기 상황과 연관해서 신앙각서를 만들었던 경험과 상황을 비교하면서 금년에는 다섯 차례에 걸쳐서 사회포럼을 통하여 전문적인 입장에서 경제 위기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경제정의, 경제윤리와 연관된 과제들과 현안들을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하여 바른 그리스도인의 경제정의와 윤리관을 확립하고, 더 나아가 경제위기의 극복과 새로운 사회 발전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 차례 이미 사회포럼을 개최하였고 이어서 후속적인 지방에서 개최될 사회포럼을 준비중에 있다. 그리고 금년 중에 개최되는 여러 차례의 사회포럼을 통하여 얻어지는 결과물들을 통해서 제2의 경제 위기에 대응하는 신앙각서를 만들어 총회에 보고하고 인준을 받아서 전 총회와 전체 한국 교회 앞에 그리고 세계교회 앞에 소개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참고로 지난 2월 26일에 있었던 사회포럼에서는 자료집에 10년 전에 채택되었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교회의 신앙각서’ 전문과 2006년 2월에 남미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개최된 <세계교회협의회, WCC> 제9차 총회에서 채택된 ‘아가페로의 부름’AGAPE Call 문서를 번역본을 소개하였다. 이 문서는 경제세계화에 대한 연구의 결과물인데 의 중앙위원회의 지도 아래 정의, 평화, 창조 위원회가 작성한 것이다. 그 최종판을 2005년 9월 실행위원회가 받아들였고 경제정의분과에서 만장일치로 이 문서를 사용하기로 승인한 바가 있다.

이 문서의 서론에는 주장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고삐풀린 시장 권력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우되고 지배자들의 정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경제세계화 문제를 연구하였다. <국제금융기구>와 <세계무역기구>를 비롯한 여타 기구들은 경제세계화를 재촉한다. 아가페 과정의 참여자들은 점증하는 불평등성, 부와 권력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는 문제, 그리고 지구의 파괴문제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였는데, 이 모든 문제들은 남반구에서만이 아니라 북반구에서도 빈곤을 악화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정치군사적 권력의 점증하는 역할이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전 세계 민중은 자신들의 공동체에 미치는 제국주의적 권력의 영향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가 민중과 땅을 돌보는 변혁적 공동체가 됨으로써 우리의 차별성을 드러낼 수 있고, 또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 안에 세계의 분열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부름받은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에 힘입어 세계의 차별을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 스스로를 변혁해야 한다. 경제세계화를 감시하고 변혁시켜 나가면서, 신앙공동체와 운동에 헌신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행동하는 교회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이 문서의 성격과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해주고 있다. 이 문서는 연합기도문을 제시하고 있고, 구체적인 책임과제와 사명으로서의 기도제목을 제시하고 있다. 빈곤의 근절, 무역, 금융, 토지와 자연자원의 지속가능한 사용, 공공적 재화와 서비스, 생명농업, 품위있는 직업, 해방된 노동, 그리고 민중의 살림살이, 교회와 제국의 권력 등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또 한 가지의 중요한 문서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아크라 신앙고백’이다. 이 문서는 2004년 7월 30일~8월 12일까지 아프리카 가나의 아크라에서 개최되었던 <세계개혁교회연맹, WARC>에서 채택되었던 문서이다. 이 문서는 “경제와 창조세계의 정의를 위한 계약/경제와 지구의 정의를 위한 계약”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이 문서에는 42개의 항목에 걸쳐서 오늘날의 경제 구조 속에서 계속되고 있는 인신매매의 문제, 경제적 억압, 생태계의 오염과 탄식의 문제, 불의한 경제 구조, 절대빈곤의 계층 중에서도 여성과 아이들의 문제, 다국적기업의 문제, 신자유주의 경제세계화의 문제, 시장의 세계화 문제, 경제 불의와 생태계 파괴에 대한 신앙고백으로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 대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책임과제에 대한 고백을 구체적으로 나누어서 하고 있다.

이러한 에큐메니칼 기관의 중요한 공식문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들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우리 모든 세계교회들이 함께 공유하고 성찰하면서 우리들의 자신과 교회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성찰하면서 반성해 보고 우리의 기도의 제목과 갱신의 방향성으로 받아들여야 할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함께 연대하며 함께 고백하며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우리의 신앙의 정체성을 건강한 신학적 성찰과 함께 갱신해 가야할 중요한 책임도 함께 감당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이러한 고백문서들과 각서들이 우리들의 운동성 있는 다양한 사회선교적, 사회봉사적, 사회복지적 목회와 여러 사업과 프로그램과 프로젝트에 녹아지고 배려되고 포용되어야 할 것이다.

2) '빈곤복지선교지침서' 제작

총회사회봉사부 산하에는 ‘사회복지위원회’라는 전문위원회가 있어서 사회봉사와 사회복지에 대한 중요한 정책을 만들며 또한 개교회와 노회가 참고할 중요한 복지선교지침서를 매년 제작해서 보급하였다. 지금까지 사회선교지침서, 장애인헌장, 실직노숙자 선교지침서, 환경선교선언문, 노인복지선교지침서, 가족복지선교지침서, 기독교사회운동지침서, 장애인복지선교지침서, 아동청소년복지선교지침서, 정신지체인(발달장애인)의 세례를 위한 지침서, 환경선교지침서, 교회자원봉사메뉴얼 등을 제작하였다. 금년에는 특별히 빈곤복지선교지침서를 제작하려고 계획하였고 진행중에 있다. 개교회와 노회 그리고 총회가 빈곤층 사람들에게 어떻게 섬기며 나누며 함께 더불어 상생하며 살 수 있는지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사회복지학적으로 그리고 사회봉사와 사회선교적 차원에서 자세한 매뉴얼로 지침서가 제작되어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이러한 복지선교지침서들이 전체적으로는 복지목회를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고 목회의 비전과 철학을 정리하고 확립하는데 있어서도 그리고 목회의 방향성을 제고하는데 중요한 길잡이의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3) '사랑의 연탄나누기 운동'

총회사회봉사부는 지난 2005년부터 연말에 교회의 지역 사회 속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다양한 빈곤층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말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사랑의 연탄나누기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해오고 있다. 국가경쟁력과 경제력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나라로 발전해 가면서도 그늘에 가리워진 소외된 빈곤층의 백성들도 많이 있음을 보면서 교회의 섬김의 과제로서 빈곤층에 대한 연말구제사업을 하게 되었다. 이후 이런 운동이 지방정부, 중앙정부의 협력으로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효과도 낳았고 연중 ‘연탄은행’도 생겨서 연탄을 사용하는 빈곤층의 사람들에게 겨울철 난방을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왔다. 그러나 연탄만이 아니라 다양한 욕구들과 궁핍한 상황에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해를 거듭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쌀, 김장, 연탄외의 다양한 난방기구 등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앞으로 노회가 중심이 되어 사업노회로서 이관된 사업으로 감당하게 된다.

4) '연금미가입은퇴목회자대책위원회'

고령화 시대에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수많은 은퇴 목회자들 중에서 연금에 가입하지 못하고 또한 마땅한 노후대책이 없어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은퇴 목회자들의 문제가 심각하다. 일생을 목회를 위하여 헌신하신 은퇴 목회자들의 노후에 자신들의 삶에 있어서 최소한의 생활 유지뿐 아니라 품위 유지도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에서 쉽게 남들에게 도움도 청하지 못하는 어려운 형편이 있어서 총회가 대책을 강구하게 되었고, 총회사회봉사부 산하에 <연금미가입은퇴목회자대책위원회>를 설치하였으며, 이제 곧 마련된 구체적인 시행세칙에 의하여 시범 실시를 한 후에 다음회기부터는 약간의 생활비를 지원받게 된다. 미자립교회의 목회자들의 생활비를 일괄적으로 총회가 <자립화위원회>를 통하여 평준화 시키고 기준을 세워서 부족한 부분을 노회가 책임을 지고 보충해주는 <자립화위원회>의 사역이 자리를 잡아 교단내 미자립교회의 목회자들도 어느 정도 안정된 목회를 하는데 크게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있고, 은퇴 목회자의 문제와 미자립교회의 목회자의 노후 문제가 심각한 복지문제가 되고 있다. 여교역자(여전도사 포함)의 문제도 심각하다.

5) '생명의 길을 여는 사람들'

자립을 원하지만 자본금이 없어서 자립의 길을 가지 못하거나 고리의 사채에 의존하여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소외된 빈곤층의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방법이나 수단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은행에서의 대출이 쉽지 않고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돌려막기를 하다가 결국에는 파산하고 어려움을 겪는 가정들이 많이 있었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에서 소액대출사업을 해주는 예를 통해서 국내에서도 ‘마이크로 크레디트’ 운동이 시작되었으며, 국제적인 운동으로도 확산되었지만 실제적인 내국인의 도움의 효과를 위하여 새롭게 시작된 운동이 ‘생명의 길을 여는 사람들’이다. 소액대출이지만 싼 이자로 행정비를 충당하고 고리의 이자부담을 덜어주어 쉽게 자립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회원교회와 개인회원들의 후원으로 기본기금이 마련되고 확산되어 가고 있으며, 서서히 대출을 통하여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증가되어 가고 있다. 많은 후원교회들과 개인이 후원하게 되면 경제 위기 속에서 빈곤층의 자립을 위한 사업기금이나 생활고에서도 어려운 고비를 극복하는데 매우 유익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6) '한국장로교복지재단'

40여 년 전에 자선사업재단으로 시작되었던 재단이 <한국장로교복지재단>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복지법인화 되어서 현재는 73개의 사회복지 시설들을 관리감독하며 뒷받침하는 복지법인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개교회가 사회복지법인의 자격을 취득하기란 매우 어려우며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 큰 부담이 있다. 그러나 교단의 복지법인에 가입을 하고 분소점으로 활동하게 되면 여러 가지 면에서 부담이 적고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개교회의 사회복지적 목회와 사회봉사 프로그램을 수행하는데 매우 유익하다. 작년 2008년 7월부터 시행된 ‘장기노인요양보험제도’와 함께 요양원이나 혹은 가정에 요양원을 파견하는 재가노인복지시설이나 혹은 지역아동센터와 같은 방과후학교, 공부방의 운영도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약간의 운영비나 교사인건비의 지원을 받으면서 운영하는 교회들이 증가되어 가고 있다. 개교회적인 사회봉사 프로그램 혹은 사회복지적 사역이 이제는 전문성을 띄고 예산의 지원과 지속가능한 복지사업으로서 나아가고 있다. 일회적이며 비전문성과 적은 예산에 의한 이벤트성에서 벗어나서 체계적이며 조직적이며 전문적인 복지사업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선교적 사명도 잘 감당하게 될 것이다.

7) 지역교회협의회와 지역 사회의 복지사업을 위한 교동협의회(교회와 동사무소의 사회복지 담당자간 협의회)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지역 내에 있는 교회들이 교단을 초월하여 교회협의회를 조직화하여 평상시에도 서로 교류하면서 다양한 유익을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 더욱이 지역 사회의 빈곤가정들을 돌보고 섬기는 일은 어느 교회가 독점해서 개교회주의나 교단이기주의나 교회성장주의에 매여서는 안될 것이며 교회간의 협력과 연대가 무시되면 지나친 경쟁적 관계에서 도리어 선교에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평상시의 교회협의회를 통하여 좋은 협력 관계를 맺고 목회자들이 서로 교류하며 기도하게 되면 지역 사회 내에서도 좋은 이미지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연말에 일회적으로 하던 연말구제사업도 매월 어려운 극빈가정들을 돌보는 일에 협력하여 큰 부담이 없이 지역내 교회들이 연합해서 협력적으로 동사무소의 사회복지과와 연대하여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8) 제직회 위원회와 부서 조직

제직회 부서 조직에 사회선교 혹은 사회봉사와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독립된 위원회를 조직화 하고 <사회선교위원회>, 혹은 <사회봉사위원회>, <사회복지위원회> 등 그리고 <사회봉사부> 등의 조직을 통해서 부원들을 잘 훈련시키고 다양한 사회선교적 사역들을 감당하면 균형있는 목회와 사역을 잘 감당하는데 매우 유익할 것이다.

9) 기타: 목회간호사제도, 사회봉사센터, 상담소, 독일의 지역사회봉사센터Sozial Station 등

나가는 말

하나님께서는 한 인간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리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히 누리게 하시려고 오셨다고 하였다. 교회의 존재의 목적은 본질적으로 이 시대에 부르심을 받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함께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지평에서 선교적 사명과 봉사적 사명을 잘 감당해 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 어려운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자립적이지 못한 작은 자들, 소외계층,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모양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제 교회는 더욱 섬김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그들에 대한 관심과 돌봄에 대하여 더욱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찾아가고 연구하고 욕구를 사회학적으로 연구분석해서 필요한 도움을 적절한 방법으로 주어야 할 것이다. 교회 안에서만 믿는 성도들끼리만의 사랑과 섬김은 우리 스스로 높은 벽을 쌓고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좀 더 안전하고 촘촘해지면 사회는 좀 더 안정적이며 평안한 사회가 될 수 있다. 교회도 이러한 사회적 안전망의 네트워크에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디아코니아 섬김의 사역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에 속한다. 속히 이 분야에 대한 건강한 신앙 정체성과 신학 정체성을 회복하고 목회자들과 평신도지도자들의 의식화를 위하여 신학적으로 정립되고 교육훈련이 이루어지며 건강한 교회로서 갱신되고 발전해 갈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경제 위기는 도리어 한국 교회가 거듭나고 갱신되고 더욱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곽안련, 교회사회사업, 조선예수교서회, 1932.

총회사회봉사부 편, 총회사회선교정책문서집, 한국장로교출판사, 2005.

총회사회봉사부 편, 총회사회선교정책문서자료집, 2007.

총회사회봉사부, 2009총회 교회와 사회포럼 ‘경제위기에 대한 교회의 대응’ 자료집

Erich Beyreuther, Geschichte der Diakonie und Inneren Mission in der Neuzeit, CZVVerlag, Berlin. 1983.

Federal Council of Evangelical Missions in Korea, The Korea Mission Field(A monthly Journal of Christian Progress), 1928, 1929, 1930, 1931, 1932.

Seung-Youl Lee, Die Geschichte der Diakonie in den protestatischen Kirchen Koreas und Perspektiven fuer die Erneuerung ihrer diakonischen Arbeit, Peter Lang, Frankfurt am Main, Berlin, Bern, Bruxelles, New York, Wien, 1999.

2009년 03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