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전 칼럼/사진]
                                         교회의 사명

이종전 목사.jpg 한국교회가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 대형교회의 세습 문제, 목회자들의 조세 문제, 마이너스 성장, 목회자들의 윤리적 문제 등 당면한 과제들을 보면 어느 것 하나도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대처하는 것을 보면 현실적으로 위기를 더 느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한계인 것 같다.

이러한 문제들을 대하면서 교회들이 대처하는 것을 보면 현실과 이상, 혹은 실용과 본질이라는 말로 대칭될 수 있는 상황에서 방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형교회들의 목회자 세습에 대해서 부정적인 여론이 조성되면서 한국교회는 성경적, 신학적 접근과 함께 목회 현실의 여러 측면에 대해 숙고하고 돌아보는 노력보다는, 단지 세습이라는 말에 대한 여론과 분위기에 떠밀려 세습 금지라고 하는 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제는 세습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발표하자마자 한 주간 사이에 주목을 받고 있던 어떤 교회는 실제적으로 세습을 시행했다고 한다. 법은 만들었지만 편법적으로 세습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니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교회에 대한 눈총이 더 뜨거워지게 된 것은 당연하고, 교회가 사회에 보여줘야 할 최소한의 기대감마저 저버리도록 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 마디로 이러한 현실을 보는 사람들은 교회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걱정이 커진다.

게다가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세습금지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문제를 자인하는 결과도 낳았다고 한다. 즉 자립하지 못하는 작은 교회, 혹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 있는 지역이나 상황의 교회들의 경우 세습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자립하지 못하는 작은 교회의 세습은 예외로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면 세습금지법이 가지는 문제는 세습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부의 대물림을 금지한다는 것이 아닌가. 결국 여론의 관심도 세습 자체에 있지 않고 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립하지 못하는 작은 교회의 세습은 허용한다는 것 아닌가.

이처럼 세습 문제가 보여주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 교회들이 직면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른 척하고 지나칠 수 없는 필연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교회는 이에 대한 대답을 해야만 한다.

교회는 본질적 사명을 생각해야 하고, 그 근본을 성경의 가르침에서 철저하게 찾고 그것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본질적인 대답에 대해서보다는 인간의 입맛에 맞고, 현실적인 상황에 맞는 대답을 원한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더 갈등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그리스도인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얼마든지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신앙은 이상을 믿고, 그 이상을 좇는 삶을 사는 것인데 현실은 그 이상이 이상일 뿐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언제나 현실에 주목하게 하고, 현실을 핑계로 이상을 내려놓게 한다면 과연 신앙은 왜하는 것인가. 교회가 이 땅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문제는 기독교의 근본인 성경의 가르침에 교회도 순종하면 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 개인이든, 교회든, 목회자든 그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전제로 말하고 행동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파생되는 것 아니겠는가?

종교란 절대적(신적) 이상을 제시하고, 그 이상을 현실의 가치로 확립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사명도 다르지 않다. 실용과 본질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교회는 본질을 제시하고 그 본질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를 고뇌하면서 함께해야 한다. 교회마저 실용적 논리에 빠진다면 과연 인간은 무엇을 소망하면서 살 것인가?

교회마저도 실용적 가치를 제시하는 것으로 생존하기 위한 길을 모색한다면 더 이상 궁극적인 소망은 없다. 종교의 기능은 본질적 가치를 잃지 않게 하는 것이고, 그것을 이상으로 확인해 구현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다. 때문에 교회가 먼저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목회자 개인이든 교회적이든 욕심을 전제한 어떤 처방도 처방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실과 실용적 가치는 무조건 배격해야 한다는 것인가? 이 질문에서 교회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교회적 현실에서 인간의 욕구는 언제나 현실적인 답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본질을 동문서답하듯 제시한다면 과연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것인가?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교회의 기능을 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현실과 실용을 무조건 배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본질과 이상을 소외시킨다면 종교로서 기독교는 왜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세상은 현실적 필요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본질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사명은 근본과 본질의 이상을 잃지 않고, 이것을 등대처럼 세상을 향해 변함없이 제시해야 한다. 다만 그것을 향한 현실의 신앙과 삶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 고민하는 가운데 아픔과 수고를 함께 감당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의 이기적인 욕구를 내려놓아야 한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섬기면서 본질을 공유하는 신앙을 만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과정에서 체험하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c) 지저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