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덩치는 커졌지만 영향력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근육 무력증에 걸린 교회 같다. 한국교회가 종이 한 장 들지 못하는 교회가 되었다."

지난 3월 4일(수)부터 서울남교회에서 시작된 "정직한 성도, 신뢰받는 교회를 위한 30일 여정"(이하 30일의 신뢰 여정)에서 진행된 신동식 목사의 강의 중 한 부분이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의 안타까운 현실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30일의 신뢰 여정이 3월 4일(수)부터 서울남교회(담임목사 황영익)에서 6주 과정으로 시작되었다. 이 날은 전체 프로그램에 대한 오리엔테이션과 함께 "정직"을 주제로 신동식 목사(기윤실 생활신앙실천운동본부장, 빛과소금교회 담임목사)의 강의가 진행되었다. 강의가 진행되는 내내 참석한 성도들은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진심으로 아타까워 했다. 그리고, 신뢰 회복을 위해 우리 모두가 반드시 "정직"을 실천해야 한다는 신동식 목사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다시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정직한 성도, 신뢰받는 교회를 위한 30일 여정" 세미나

(정직과 희망)

09년 3월 4일 신 동 식 목사

문제제기

한국교회만큼 묵상에 관심을 갖는 나라는 드물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묵상이 개인적인 것에 머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나, 우리, 우리 가족으로만 국한되어 있다. 그렇기에 아프리카에 굶고 죽어가는 이들에게 관심이 없고, 이웃이 죽어가도 관심이 없다.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명령하신다. 이런 말씀을 왜곡하기 때문에 성경묵상이 올바르게 되지 않는 것이다.

1980년대 대학 청년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었다. 종교를 무엇을 선택 할 것인가? 1위는 불교, 2위는 카톨릭, 3위는 기독교였다. 그 청년들이 장성한 지금의 40~50대에게 다시금 같은 질문을 하였다. 역시나 대답은 1위는 카톨릭, 2위는 불교, 3위는 기독교였다. 800만이나 되는 성도를 자랑하며, 세계에 몇 위 안에 드는 큰 교회를 자랑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한국교회를 외면한다.

도대체 무엇인 문제인가? 한국교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덩치는 커졌지만 영향력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근육 무력증에 걸린 교회 같다. 한국교회가 종이 한 장 들지 못하는 교회가 되었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 교회 개혁 즉 부흥은 이미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음세대에 소망을 둘 수밖에 없다. 오늘 우리 세대가 준비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없다. 에딘버러에 있는 아름다운 교회가 지금은 술집이 되었다. 200년 이전에는 세계 선교를 감당하는 전진기지였던 교회가 지금은 조명이 현란한 술집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준비하지 않으면 다음세대는 없다. 내가 준비되어야 다음세대가 소망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책을 집필하였다.

 

우리나라에 만연하고 있는 부정직의 모습

우리는 얼마나 정직한가? 갤럽조사에 “정직하게 살면 잘 살 수 없다”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변한 사람이 63%나 된다. 이 조사가 우리나라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상황을 본다면 이와 반대이다. 선진국은 정직한 나라이다. 정직하면 잘 살게 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즉 정직한 나라가 잘 사는 나라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다. 정직할수록 국민생산이 높아진다.

청소년들에게 의식을 조사했다. “10억 벌 수 있다면 10년 감옥가도 좋다. 10억 벌수 있다면 감옥 가겠다.”라고 20%이상의 청소년들이 말했다. 이런 청소년이 자라면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 소망이 없다.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보는 사람이 없으면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47%가 대답하였고, “성공을 위해서라면 뇌물을 줄 용의가 있는가?”에 30%가 “제공할 의향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나를 잘 살게 해준다면 지도자들이 불법을 해도 되겠는가?” 라는 질문에 30%가 넘는 청소년이 “불법을 해도된다.”고 언급하였다. “숙제할 때에 인터넷 자료를 복사할 때 출처를 밝힐 필요가 없다”고 40%이상이 대답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는 부정직하다. 일제고사를 보고 난 뒤에 난리였다. 많은 부분이 왜곡되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교육사기라고 볼 수 있다..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사기를 친다. 결국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이것을 학생들이 보고 배운다. “우리나라가 사법부가 정직하다고 생각하는가?”에 거의 반수 이상이 “아니다”라고 여긴다. 도대체 어디에 사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50%가 부정직하다.

그렇다면 교회는 정직한가? 라는 물음에 우리는 정직하게 대답해야 한다. 교회가 왜 욕을 먹는가?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모습은 한국 교회의 모습이다. 교회가 살아야 사회가 산다. 교회가 정직해야 한다. 사실 교회나 믿는 사람이 정직하려면 포기할 것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포기하기 싫어한다. 이것은 단순한 싸움이 아닌 영적인 차원이다. 정직하지 않는 것은 영적싸움이 된다.

 

정직이란 무엇인가?

정직의 뜻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는 정직, 솔직, 결백, 고백, 고결, 마음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는 곧은 모습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성경은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한 가장 기품이 높은 작품”이라고 말한다. 만약 정직함을 상실하였다면 고귀함을 포기하는 것이다. 기품을 포기한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직함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라는 말씀은 ‘내가 정직하니 너희도 정직하라는 말씀’과 같다.

과연 우리는 정직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사실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만드셨으나 사람이 꾀를 내었다. 본질상 정직하게 지음을 받았다. 하나님이 정직하시므로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정직을 행하는 분이다. 렘 9장 24절에서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정직하게 행하라고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은 분명 정직한 하나님인데 정직을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정직을 말하면 불편하기 때문이다. 공평하신 하나님, 인애하신 하나님을 강조하지만 정직하신 하나님을 말하지 않는다. 롯은 의로운 사람인데 왜 범죄 하게 되었나? 베드로서에 보면 범죄한 곳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왜 정직하지 못하는가? 부정직한 곳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부정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안에 부정직이 배어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직과 부정직에 대해서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정직에 대해서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정직하게 행하려 하지 않는다. 정직에 대해서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정직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

정직한 자는 사랑을 받는 자이다. 악에서 떠나는 것이 정직하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정직하게 사는 우리를, 우리의 길을 보전해주시고, 인도해주신다. 우리가 정직하게 살면 정직한 사람이라는 하나님의 칭호를 받는다. 하나님은 정직한 하나님이다.

 

이 땅이 정직하지 못한 원인은 죄 때문이다.

이 땅이 정직하기 못한 이유는 죄로 인해서 이다.

죄의 가장 큰 불행은 정직하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죄인 된 인류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되게 살아간다. 레위기 19장 12절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라고 말씀하신다. 죄는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분리를 만들었고, 하나님과 자연의 분리를 만들었고, 하나님 나 사이의 분리를 만들었다. 결국 모든 것은 죄로 인해서 생긴 문제들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거짓을 가르쳐주지 않음에 거짓을 행한다.

출애굽기 20장 16절에 “이웃에 대해여 거짓증거하지 말지니라.” 고 명령하셨다. 왜 이런 계명을 주셨을까? 이것은 죄와 싸우라는 것이다. 우리는 죄와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예레미야 17장 9절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고 기록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양심이라는 근거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야한다. 하지만 양심으로는 정직하게 행할 수 없다. 양심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양심으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정직하게 살려면 성경 속에서 해결점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성경은 죄 문제를 해결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정직하게 살 수 있다고 단언한다. 우리는 정직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가 정직에 대해서 온전히 준비할 때 다음세대에 희망이 있다. 우리가 다음세대를 준비해 놓아야한다.

정직을 회복하려면 내 것을, 내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거룩해야 한다. 우리가 정직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직하면 손해 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해야 한다. 때로는 진급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결혼하기 전에 잠언 전도서를 100번 정도 읽으라고 신혼부부에게 말한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되는 것은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는 것과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런 말이 들렸으면 좋겠다. 교회들 때문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정직하지 않으면 못살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말을 듣지 못한다.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중에 목사는 아주 밑에 랭크되어 있다. 목사는 정직의 상징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성경은 우리가 정직히 말하고 순종하길 원한다. 잠언 14장 11절에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고 말씀하신다. 잠언 10장 29절에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이사야 33장 15~16절에 “오직 공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의 요새가 되며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정직하게 살면 어떻게 되는가? 정직하게 살면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정직하게 살면 하나님이 높이신다. 정직하면 분명 하나님이 일하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직하게 질문하고 정직하게 답변해야 한다.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는 훈련과 연습을 해야 한다. 언제나 질문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맞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재정의 투명성의 결여이며 또 한 가지는 정직한 질문에 답변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기 제직회 때에 청년들이 참석하지 않는 이유가 그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에 답을 얻었을 수 없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대답들을 말을 포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청년들이 질문을 던져도 교회는, 사역자는 답을 해주지 않는다.

한 교수가 한국교회 그리스도인 남자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인, 나오면 불교인, 집에 가면 유교인으로 변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의 아이들이 도대체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가? 가장 쉬운 것, 질서라도 잘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결론

정직은 댓가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 영광은 빛이 난다. 한 언론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명사 50인이 말한 것 2007년 성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발표하였다. 대답은 간단했다. “단순하라, 진실하라, 신뢰를 받아라, 그러면 성공한다.”라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은 성경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말이다.

정직은 하나님께 드리는 순종하다. 정직은 부패한 구조를 바꾸는 가장 큰 힘이다. 정직하면 잘 사는 나라가 된다. 부정직은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정직은 그리스도인의 존재양식이다. 비록 정직하게 살 때 삶의 변화가 없다하더라도 정직하게 행하는 그 자체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그 열매를 반드시 기억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다. 정직은 개인적인 운동이 아니라, 연합운동이다. 서울남교회가 위대한 교회인 이유는 이런 세미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직하는 것이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면 신뢰받는 교회가 되고, 한국 교회가 무너지지 않는다. 주님 오실 때까지 살아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결국 세상은 교회를 존귀하게 본다. 교회가 정직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