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를 배격하는 7대 이유 (3) 

   (지난 호에 이어)
                   칼 마르크스냐? 예수그리스도냐? WCC는 선택하라!

8-1 한빛교회 담임 손기태 목사.jpg 칼 마르크스냐, 예수 그리스도냐?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는 선택하라 조셉 A, 해리스. 손에는 성경을 들고 목에는 목주를 건 마사이족의 여인, 턱수염을 수북이 기른 러시아정교회 주교, 사리를 걸친 스리랑카 여인-1975년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열린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 총회에 참석한 숱한 대표단 중에는 이와 같이 이채로운 사람들이 많이 끼어 있었다. 대표단의 거의 반수가 제3세계에서 온 사람들로 그들의 연설에는 이 대회를 감싸고 있던 호전적인 반서방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다.

당시 자메이카 수상이던 마이클 맨리가 등단하여 인민민주주의가 자본주의 국가들을 밀어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자 장내에는 요란한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18일 만에 막을 내린 이 총회는인종차별에 반대하기 위한 투쟁계획을 압도적으로 승인했다. 이는 혁명 게릴라운동을 포함한 각종 정치조직과 단체들에 재정지원을 하자는 것을 그 골자로 하는 것이었다.

회의는 또한 서방세계 회사들이 제3세계에 침투하여착취를 일삼고 있는바 그들을 몰아내기 위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결의도 채택했다. 그리고 소련이 앙골라 개입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단적으로 말해 제네바에 본부를 둔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라 칭하는 이 기독교교회연합 단체는 기독교 못지 않게 공산주의에 의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 것이었다.

W.C.C는 이와 같이 1975년 대회 때 이미 그 심상치 않은 색채를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에도 여전히 전 세계에 숱한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978년에 W.C.C로디지아애국전선85000달러를 주었다고 발표하자 그를 계기로 W.C.C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크나큰 충격을 받고 W.C.C에 대한 지지를 재고하기 시작했다.

로디지아애국전선으로 말하면 당시 로디지아의 백인 정권과 무력투쟁을 벌이던 버젓한 공산주의 게릴라 단체로서 그때까지 207명의 백인 민간인과 1712명의 흑인을 살해했을 뿐 아니라 불과 수주일 전만 해도 9명의 백인 선교사와 그들의 아이를 죽인 살인집단이었던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런던의데일리 익스프레스지는 이렇게 큰 제목을 달았다.“살인보조금-로디지아 선교사 살해범들 W.C.C 로부터 현금지원을 받다.”W.C.C 창립멤버의 하나인 구세군은 그 조치에 항의하여 W.C.C 로부터 잠정적으로 탈퇴했고, 또한 에이레의 장로교회는 W.C.C의 그 조치를도착된 인종주의라 규탄하고 역시 일시 탈퇴를 선언했다.

부푼 희망,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 W.C.C1948년 각종 분파로 흩어진 전 세계 기독교인들을 하나로 통합시켜 보겠다는 희망 하에 창립된 이후 오늘날 4억의 신도를 포용하고 있다. 그러나 W.C.C는 창설 이래 현실정치에 대한 참여를 점점 더 적극화하고 폭력세력들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등 그 창설취지에 어긋나는 행동을 자행함으로써 전 세계 기독인들을 단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분열을 조장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아이러니는 실로 비극적인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W.C.C 는 잘만 운영하면 많은 좋은 일을 할 능력이 있는 단체이기 때문이다. 실지로 W.C.C는 창설 이래 수백만의 전쟁, 천재지변의 희생자들을 도와 왔으며 200만이 넘는 난민이 그의 자금 지원으로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W.C.C는 해를 거듭함에 따라 정치문제에 점점 더 많은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는데 W.C.C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교회 통합이라는 당초의 이념이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운 여러 교파간의 교리상의 차이로 인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퇴색해 버렸다는 사실과 아울러 전세계 기독교 세력 가운데서 가장 큰 로마 카톨릭교회가 가입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W.C.C는 세속적인 기독교통합운동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즉 교회의 통합은 인류가 안고 있는 경제, 인종, 교육문제와 그 밖의 사회적 병폐를 극복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고 W.C.C 지도자들은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W.C.C의 행동노선이 바뀐 두 번째 이유로서는 W.C.C의 자체조직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W.C.C가 암스테르담에서 창립총회를 가졌을 당시만 해도 회원 가운데 제3세계 대표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나이로비 대회 때에는 그 수가 거의 반으로 늘어났다.

W.C.C 내에서 제3세계의 입장은 당시 61세의 서인도제도 출신 감리교 목사이며 W.C.C 사무국장으로 있는 필립 포터에 의해서 대변되었다. 40개국에서 파견된 300명 가까운 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는 그는 반서방, 반자유주의적 입장을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그는 공산주의 서적을 인용하기를 좋아하고 또 를랙파워의 주창자인 스토클리 카마이클, 맬켐 X를 노골적으로 찬양하는 사람이다.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러한 포터의 견해에는 많은 사무국 직원들이 동조하고 있다. 가령 협의회의 세계선교 및 전도위원회 위원장인 우루광이의 에밀리오 카스트로는 이렇게 말한다.“자본주의의 철학적 기반은 악()으로서 복음과는 전적으로 상치하는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

W.C.C의 이러한 적극적인 사회참여 방침은 그 필연적인 결과로서 산하에인종차별타파 지원기금이라는 것을 두게 되었는데 W.C.C는 그 기금으로 100만 달러를 배정했었다. 이 기금의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역원들 중에는 미국의 정치, 경제생활 양식을 근본적으로 뒤바꿔 놓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워싱톤의 좌익 연구기관인 (정책연구소)에서 온 미국인 프렉시 네스비트가 끼어 있다.

이 특별기금은 그 용도를 명확히 지정하여 제공된 헌금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인도적인 사업에만 쓰도록 되어 있는 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 이후 W.C.C500만 달러의 자금을 30여 개국에서 이른바 인종차별정책과 싸우고 있다는 130개가 넘는 단체에서 공식적으로 나눠 주었다. 그러나 실지로는 이 금액의 거의 반이 남아프르카의 백인정권을 폭력으로 쓰러뜨리겠다고 갖은 살인행위를 자행하던 게릴라들의 손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 가운데는 소련이 지원하는 앙골라의 인민해방운동(MPLA, 78000달러) 모잠비크에 있는 공산주의 모잠비크해방전선(FRELIMO, 12만 달러) 그리고 나미비나의 서남아프리카 인민기구(SWAPO, 823000달러)가 들어 있다. 서남아프리카 인민기구로 말하면 공개적으로 소련의 군사지원을 받고 쿠바에서 훈련을 받아 온 게릴라들이다.

눈먼 사람들
W.C.C의 인종차별 퇴치자금은 이와 같이 사회 각 분야에서의 조직적인 선동을 위해 뿌려져 왔거니와 그 자금이 뿌려지는 단골 지역은 비단 아프리카만은 아니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캐나다의 에스키모, 일본 내 좌익계 한국인, 프랑스 국내의 모로코인들에게도 뿌려지고 있다. W.C.C의 소위 인종차별 퇴치계획은 미국내에서 특히 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것같다. 이 계획의 책임자인 안와르 바르카트는 미국이야말로 인종차별이압도적인 현실로 부각된 나라라고 공개적으로 규탄한 바 있다. 그리하여 미국네에서 40개 가까운 단체가 지금까지 672500달러의 지원금을 받아 왔는데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끼어 있다.

전국흑인변호사협회: 이 단체는 미국 CIA에 의해서 소련의 국제적 외곽조직으로 낙인찍힌 국제민주변호연합회에 속해 있다.

아메리카인디언운동 : 1976년 미국상원 국내안보소위원회 보고서에 의하면 이 단체는 쿠바, 중국, 에이레공화국(IRA),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그리고 미국공산당과 연관을 맺고 있다.

국가안보연구센타 : 주로 CIAFBI의 활동을 뒤쫓으면서 미국의 정보활동에 재동을 걸겠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좌익단체,

믿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은 리투아니아인, 우크라이나인, 회교도, 복음주의적 기독교와 같은 소수인종 및 종교인들이 노골적인 탄압을 받고 있는 곳이 소련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소련의 반체제 인사들을 위해서는 한 푼의 돈도 나눠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W.C.C는 소련만은 각별히 부드러운 손길로 봐주고 있다. 보통 때는 그처럼 인권문제에 말발이 센 것이 W.C.C지만 그 W.C.C가 이디오피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사태에는 완전히 눈을 감고 있다.

이디오피아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래 1만 명 이상의 정치범이 재판 없이 학살당했고, 200가 넘는 교회가 문을 닫았다. W.C.C 집행위원회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처들어 가자, 침공 후 2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서그로 인해 긴장이 높아졌다고 한 마디 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바로 그 같은 코뮤니케에서 엉뚱하게도 북대서양기구(NATO)가 유럽에 새로운 미사일을 배치하기로 결정한 데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뇌까렸다.

소련정부의 인권유린사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이유를 물으면 W.C.C 직원들은 크렘린과 상대하는 데는 조용히 사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라고 변명한다. 사실 W.C.C가 소련내의 반체제 종교인사들에 대한 재판을 가지고 모스크바 당국에 정중한 문의를 보낸 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W.C.C의 그 따위 문의는 하나도 이렇다 할 효과를 내지 못했다.

W.C.C는 또 소련을 비난하지 않는 이유로서 소련을 비판하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정교회가 W.C.C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크렘린의 비위를 계속 맞추는 목적이 러시아정교회 대표단을 W.C.C 회원으로 묶어 놓는데 있다면 그것은 너무도 비싼 대가가 아닐 수 없다. 영국의 기독교복음증거운동의 대표인 버나드 스미스씨처럼 이런 반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손기태 신학박사(AVA 아카데미, 마라나다 한빛교회 담임목사) (JTNTV방송, 본지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