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를 배격하는 배격하는 7대 이유(2)

8-1 손기태 박사.jpg  (사진) 손기태 신학박사(AVA 아카데미, 마라나다 한빛교회 담임목사, JTNTV방송, 본지 상임고문지난 호에 이어...
  포터 박사가 1969522일 미국 로스엔젤레스 타임지에“W.C.C는 만일 폭력이 정치적, 경제적, 독재를 전복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면 그 폭력을 지원해야 한다라면서 폭력 혁명을 선포하였다. 또 기독교 사상 197211호에서폭력 혁명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기독교의 봉사를 말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고 하면서 이러한 공산 혁명과업을 교회가 본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특히한국에서 미굼을 철수하고 군사원조를 끊어야 한다고 에큐메니칼 리큐지에 발표하였다.

포터 박사의 해방의 뜻은 자본주의로부터의 해방, 계급 사회에서의 해방을 말한다. 그것은 사회주의, 맑스주의, 용공주의를 뜻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의 능력에 의한 중생,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에 의한 구원, 죄에서 해방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용공적 게릴라 조직에 의해서 해방되는 것을 뜻한다. 자본주의의 계급 구조에서의 해방을 말한다. 그것은 실로 용공주의적 활동을 의미한다(박영호, W.C.C 운동비판. pp.88-99).

. W.C.C의 신정통주의 성경관

칼 바르트는 19세기 헤겔의 역사주의적 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새로운 자유주의를 형성했는데 그는 기독교의 계시성에 있어서 초역사적 차원을 강조했다. 그것을 역사(History)와 참 역사(Geschichte)로 설명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인 것이 아니고 참 역사적인 것이라 했다. 또한 그는성경 자체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증거에 불과하며 따라서 성경은 인간이 쓴 글이기 때문에 인간적 오류가 많이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오류 투성이의 성경일지라도 하나님이 이것을 계시의 증거로 사용하실 때만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성경을 읽을 때에 감동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고, 감동이 없으면 인간의 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감동된 성경 말씀이라도 다음에 또 읽을 때에 감동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의미이다(박영관, 역사 신학 강의,p.259).

마두원 선교사는 W.C.C 안에 많은 지도자들이 위와 같은 신정통주의 성경관을 신봉하는 자들이라고 우려를 나타내었다(마두원, 두길, p. 165). 이에 박영호 박사는 그의 저서‘W.C.C 운동의 비판의 결론에서 W.C.C 성경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W.C.C는 말하기를 우리는 성경을 비판하고 심판한다. 또한 성경은 통합의 힘은 될 수 있지만 성경이 교의적 신학에 있어서 신빙성 있는 자료집으로 알려졌던 세대에서는 분명히 분열의 요인이었다. 성경의 권위는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우린 성경 그 자체만으로는 권위가 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발경하기 위하여 성경을 가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영호 박사는 이와 같은 W.C.C의 선언들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대한 객관적인 권위를 부인하는 신정통주의적, 실존주의적 성격이라고 평했다(p. 139). 1980년 미국의‘Glock and stark’에 의하여 조사된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서 W.C.C에 가입된 연합 감리교 신도 88%, 연합 장로교회 신도 87%가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198210월에 미국에서 아주 간편한 리더스 다이제스트 성경이 출간되었는데 구약은 50%, 신약은 25%나 삭감하였다. 이 성경은 신.구약 80만 단어중 40%나 되는 35만 단어를 삭감했고, 소설책처럼 장, 절도 붙여 읽지 않고 비광학적인 요소들은 모두 빼어버렸다. 이 성경은 W.C.C에 가입한 미국 자유주의 교회 32교파의 400만 신도가 포용하고 있다(이광복, 카톨릭과 W.C.C 비판, p. 62).

. W.C.C의 해방신학

해방신학은 1970년대에 남미에서 정치 경제적인 자유를 박탈 당한 특수한 상황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신학 이론이다. 정통신학이 개인의 영혼 구원을 교회의 중요한 사명으로 보고 있는데 반하여, 해방신학자들은 현실 사회를 조직적인 억압 사회로 규정하고 모든 형태의 억압과 착취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기독교의 임무라고 본다(박영호, 해방.민중신학 문답, p. 19). W.C.C의 제5차 총회가 1975년 아프리카의 캐냐 나이로비에서 286개 교파에서 747명의 대표들이 모였는데 이 총회의 주제는예수 그리스도는 해방하고 연합하게 한다”(Jesus Christ frees and unites)였다.

이 총회는 적도 이남에서 열린 최초의 총회로 로마 교황청이 파견한 16명의 천주교 대표자들을 비롯하여 불교, 흰두교, 모슬렘교, 유대교 등에서도 많은 옵서버로 참석하였다. W.C.C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방 종교들과도 혼합하기를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과의 대화를 매우 중요시 하였다. 그리고 이 총회에서해방을 다음과 같이 여섯 부분으로 구분하였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 연합이 요구하는 것, 공동체에 대한 추구, 해방과 공동체를 위한 교육, 불의의 구조와 해방을 위한 투쟁, 인간 발전,

이 총호이에 대하여 복음주의자 협회의 보고서에는 노어워크 이리(Norwalk Yri) 박사의 다음과 같은 글이 기재되어 있다.“.... 나이로비의 W.C.C 회의는 그리스도인의 모임이라기 보다는 아프리카 통일기구 혹은 기타 경제적, 정치적 집회라는 느낌이 더 짙었다.. ..

그 집회는 영적인 표현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이 점에 관한 예를 든다면 나의 기억으로는 그 회의가 기도로 시작되거나 기도로 끝나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박영호, W.C.C 운동 비판, p. 72).

이 회의의 마지막에 가서는 최종 예배 집회에 댄스파티가 포함되었다. 의장대가 합창을 하고, 토인들은 춤을 추고, 설교자들은 단 위에서 담배를 피우고, 유대교 랍비, 힌두교, 불교, 천주교 등 지도자들이 모두 모여 록(Rock)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해방이다 해방이라고 노래하였다(이광복, 카톨릭과 W.C.C 비판, p.65).

. 비성경적인 에큐메니칼 운동

에큐메니칼(Ecumenical) 혹은 에큐메니즘(Ecumenism)이란 말은 헬라어의오이코스’(ο?κο? : 집 혹은 거주, 식구)라는 말에서 유래했는데 에큐메니칼은오이쿠메니코스’(ο?κουμεν?κο?)의 파생어로사람 사는 땅에 관련된 것혹은사람 사는 땅만큼 넓다라는 뜻이다. W.C.C 총무였던 후프트는 역사적으로 에큐메니칼이란 말을 다음 7가지로 지적했다.

인간이 거주하는 전 지면을 나타내는 말, 로마제국의 전 판도를 나타내는 말, 전체 교회를 의미하는 말, 전체 교회가 타당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 교회의 전 세계 선교에 관계된 말, 둘 이상의 교리들간의 연합에 관계된 말, 그리스도인의 일체성을 인식하며 이루고자 하는 태도나 활동을 의미하는 말 등이다.(박영호, W.C.C 운동 비판, p.85).

한마디로 W.C.C 에큐메니칼 운동은 지상의 모든 교회를 하나로 연합하여하나의 교회가 되게 하려는 운동이다. W.C.C 운동의 주도적인 신학자 존 맥카이(J.A. Mackay) 박사는 W.C.C 는 전 세계 교회의 가견적 통일임을 지적하면서 말하기를에큐메니칼 운동의 주도적 지도자들은 기독 교회의 가견적이며 조직적 통합을 이루는 것을 그들의 최고의 목적으로 추구하고 있다고 하였다. 1948년에 W.C.C가 처음 암스텔담에서 모일 때 주제가하나의 세계에 하나의 교회’(One world, One church)였다.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많은 교파들을 통합하면서 로마 카톨릭을 위시해서 심지어는 이방 종교들과도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들은 이방 종교와 대화를 중요시 하고 있으며 불교, 유교, 마호멧교, 유대교, 힌두교 등 그밖의 다른 여러 종파를 포함한 일치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연합 운동이 하나의 큰 창녀 운동임을 지적하고 있다. 성경적 일치 운동은 성령으로 중생한 교회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영적 일치를 말하고 있다(4:3~6).

진리가 다른 이질적인 단체들과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적인 증언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위의 물과 아랫 물을 나누셨다(1:5,6). 흙탕물과 맑은 샘물을 섞으면 혼수(混水)가 되어 맑은 물 속에 사는 고기들이 모두 죽는다. 죽은 송장과 산 사람을 한 곳에 묶어 놓으면 산 사람도 송장의 독기로 인하여 함께 죽고 만다.

우리는 주님의 마지막 기도 가운데이제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7:22) 이 기도의 뜻을 바로 깨달아야 할 때가 왔다. 우리의 일치는 같은 성령 안에서 진리의 동질성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연합 운동은 도두 사단적인 혼합 운동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일치를 구실로 삼는 사단적인 연합 운동을 경계해야 한다. 진리가 잘못된 연합 운동은 일치가 아니라 혼합이다.

혼합은 곧 바빌이다. 구약시대 아모스 선지는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느냐?”고 하셨다(3:3). 신약시대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괴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광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 6:14~17).

우리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시는 영적 일치를 힘써야 한다(4:3). 그리고 불의와 짝하는 일치를 가장한 사단의 혼합 운동은 배격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W.C.C 운동의 비판에서 박영호 박사가 지적했듯이“W.C.C는 성경적 기독교의 신앙 운동이 아니고 배교의 불신앙으로 타락한 자유주의 교회의 연합 단체이다. W.C.C는 이단자요, 맑스주의의 좌파이며, 초교파주의자, 인문주의자, 적그리스도의 매춘부 운동이라는 말에 보수주의적 전통 교회 입장에서 찬사를 보내면서, 바울 일행이 로마로 가기 위하여 타고 가던 알렉산드리아 배가 유라굴로 광풍에 박살났듯이 W.C.C라는 큰 바벨선이 침몰하기 전에 잘 알지 못하고 그 배에 타고 있는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크게 외치는 마지막 때 천사의 사명을 재확인해야 할 것이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W.C.C)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18:2).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18:4).

. 악령들이 모이는 귀신의 집합체 처소

바빌론은 각종 더러운 귀신들이 모이는 악령들의 처소이다(18:2). 원문을 직역하면그가 우렁찬 음성으로 힘차게 외쳐 이르되, 저 큰 바빌론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그녀가 마귀들의 처소가 되고 모든 더러운 영의 요새가 되며 모든 부정하고 가증한 새들의 집이 되었도다”(18:2).

1955년에 대집회가카우 팔레이스라는 곳(캘리포니아주의, 샌프랜시스코에 있음)에서 열렸는데 소위 종교축제(宗敎祝祭)라는 모임이었다. 그 집회는 유엔(국제연합기구)을 위한 기도회를 목적했으며 유엔창립 10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집회였다. 15,000명이 참석했다고 하며, 이 집회는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의 주최였다. 단상(壇上)에는 여러 가지 다른 종교의 대표자들이 있었으며 그중의 회장 한 분은 W.C.C 직원인 놀드(O.F. Nolde)씨엿다. 그 때에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는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 집회에는 유대교, 이슬람교, 공자의 유교, 마하이교, 모하멭교, 불교와 기독교의 대표자들이 모였다.

교독문 낭독이 있었찌만 성경뿐만 아니라 참석한 각종 종교의 신앙에서 발취한 문장이나 시구(詩句)들을 교독했다. 그 교독문 가운데는 코란경이나 종자의 문헌이나 불교서적에서 취한 문장들과 성경 구절도 있었다. 불교의 염불을 비롯하여 모슬렘교, 바하이교, 유대교, 및 기독교인의 기도가 있었다. 기도 직후에 찬양대의 송영은 힌두교도로서 존경받은 인도의 간디가 쓴 시구절(詩句節)이었다. 모인 사람들은 서로 손을 잡고 각자 자기들의 잡신에게 염불이나 기도를 했다.

여기서 잡신이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만방의 모든 신들은 우상이라고(96:5)했기 때문이다. 열방의 우상은 은금(銀金)이요 사람의 수공불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 입에는 아무 기식도 없나니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로다”(135:15~18)라고 했다(마두원, 두 길, p. 119).

W.C.C 7차 총회가(199127일부터 20일까지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서 4천여 명의 세계 교회 지도자들이 모인 가운데 개최되었다. W.C.C1975년 나이로비 때부터 타종교와의 대화라는 차원에서 불교, 힌두교, 모슬렘교 대표들을 초청하여 환영했으며, 대회의 주제는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택했다. 대회의 중심적인 주제에서 성령을 강조한 점에 대해서 주목을 끌었다. 또한 그 주제가 기도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도 다른 때와 달리 특이한 기대를 갖게 했다. 하지만 타종교와의 대화 부분과 위원장인 스리랑카 웨슬리아 아리아라자 박사 박사 논문에서 저들의 속샘이 드러나고 말았다.“힌두교인의 기도는 누가 들으시나? 하나님은 다수인가? 시편 24편에 의하면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가 되시고 보존자가 되신다고 하지 않았나, 하나님이 두 분이 아니시라면 힌두교인도 불교인도 누구나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넓고 크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만 구원하시고 저들의 기도만 들으시는 분은 아니다아리아라자 박사는 하나님의 넓으신 사랑을 빙자하여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거부하고 있다.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주제 강연자로 나선 한국의 젊은 여성 신학자 정현경 박사의 깜짝쇼였다. 그녀는 무대에 호주의 원주민 두 사람과 한국의 풍물패를 섞어 놓고 춤을 추게 한 후 무속적인 정령(精靈) 신앙으로 마치 무당이 춤을 추면서 신을 부르듯이 기원한 것이다. 그는 맺힌 영혼이 성령의 초상이라고 하며 굿판을 벌리는 곳에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오실리 없다. 그곳에 정교수의 초혼제 내용을 직접 읽어 보면 필자의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W.C.C의 좌경성에 대하여는 1982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기재된 죠셉 해리스의 글을 소개한다. (다음호에 계속)

     손기태 신학박사(AVA 아카데미, 마라나다 한빛교회 담임목사) (JTNTV방송, 본지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