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석이 되게 하시는 역사(11)
6부 보배로운 산돌(2)

6-1 장한국 목사.jpg (사진 장한국 목사 주사랑교회 웨신 대한노회장)
너는 베드로라본문 베드로전서의 사도 베드로가 보석이 되기 이전에는 요나의 아들 시몬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621절 이하를 보면, 예수가 죽임 당하게 될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지 못하고 거부하며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던 시몬이었습니다. 그랬던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221절에서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예수의 고난의 길과 십자가의 죽임 당하는 길로 그대로 좇으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633절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깨어 있으라고 몇 번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혼이 심히 슬퍼 죽을 지경으로 기도하고 계실 때에, 한시도 주님과 함께 하지 못했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 113절에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보석으로 만들어서 귀하게 하실 은혜의 생각을 견고히 동이고 깨어있어서 그 은혜를 잊지 말고 끝까지 바라라고 증거합니다. 이는 푸덕거리는 새끼 비둘기 같은 요나의 아들 시몬이 변하여 베드로(견고한 돌) 즉 보배로운 돌, 산돌이 됨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2669절 이하에서 예수와 같이 붙잡혀서 죽임 당할까봐 두려워서 예수를 세 번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던 시몬이, 베드로후서 11415절에서 자신이 장막을 떠날 때가 다 되었다고 하면서 순교를 기쁘게 예비하고 있습니다. ‘내가 떠난(Exodus) 후에라도 너희가 나를 따라서 순교할 수 있도록 너희가 진리로 견고히 서기를각성시키는 베드로는 죽음을 두려워하던 과거의 그가 아닙니다. 베드로는 이제 하나님의 보석이 된 것입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너는 베드로라.”(16:1718) 하신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209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빈 무덤에 가보고서도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후 베드로후서 117절 이하에서 지극히 큰 영광을 본 자로서 자신도 부활의 영광을 입을 것을 믿고 증거하는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보배로운 산돌이 된 베드로는 사도행전 4장에서 예수를 죽인 대제사장 앞에서 담대히 증거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처형한 예수를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우리의 구주가 되게 하셨고,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그 예수가 치료하게 하셨다.”고 담대하게 증거합니다. 예수는 너희 건축자가 버린 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다.”고 담대히 증거합니다. 얼마 전까지도 어린 하녀 앞에서도 떨던 시몬 베드로가 변하여 예수를 죽인 대제사장 앞에서 담대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에스겔을 금강석처럼 강하게 하심과 같은 역사입니다. 금강석 같이 된 베드로는 더 이상 요나의 아들 시몬이 아닙니다. 또 시몬 베드로도 아닙니다. 주께서 너는 베드로라.” 하신대로 금강석 같이 견고하고 보배로운 돌이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금까지 살핀 바와 같이 베드로전서 25절의 말씀은 우리도 보배로운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산돌들이 되어지고 영적인 집으로 지어진다는 것입니다. 보배로운 믿음과 그릇이 되어 보배로운 피를 흘린 이후에야 비로소 보배로운 돌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를 보석으로 만드시는 분
벧전 2:45 사람들로부터는 정녕 버림받았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귀중한 산돌이신 그분께 나아와서 너희도 산돌들로서 영적인 집으로 지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영적인 제물들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느니라.

우리를 영적인 집을 지으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께 나아오면 우리는 그분과 함께 산돌들로서 영적인 집으로 지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36절에서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기쁨을 끝까지 붙잡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3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집이며 예수님은 그 집을 지으신 분이기 때문에, 모세보다 그리스도가 더욱 존귀하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영적인 집으로 지으시는 분입니다.

육신이 거하는 집은 사람이 짓고, 육신의 몸은 부모로부터 받아서 결국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영적인 집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기쁨을 끝까지 붙잡으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영적인 집으로 완성시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보석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중에 그분의 말씀과 인도를 거부하면 우리는 그의 영적인 집이 되지 못하여, 그분이 재림하실 때 신랑 예수를 맞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314절에서 우리가 처음의 확신을 끝까지 견고하게 붙들면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 참여한 자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 그에게 붙은 자, 그를 맞이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믿음 안에서 예수와 함께 하는 자가 되지만, 궁극적으로 예수와 함께 한다는 것은 우리가 영적인 집으로 완성되어져서 예수가 재림하실 때 그를 맞이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중한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오면, 우리는 산돌로서 영적인 집으로 지어지고 또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영적인 제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제사장인 동시에 나 자신이 산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즉 영적 예배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벧전 2:5). 산제물로 드려지는 영적 예배의 삶을 사는 성도는 능히 7년 환란 때 순교 제물로 보배로운 피를 흘리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이 베드로전서 29절에서 너희는 선택받은 세대요,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영적인 집으로 지으시는 분, 하나님의 보석으로 만드셔서 의가 거하는 새 하늘 새 땅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23:1014 그러나 그는 내가 택한 길을 알고 계시니 그가 나를 연단하시면 내가 금같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발걸음을 따랐고 그의 길을 지켜 벗어나지 아니하였도다.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에서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의 말씀을 내게 필요한 음식보다 더 귀히 여겼도다. 그러나 그는 생각이 하나시니 누가 그를 돌이킬 수 있으랴? 그의 혼이 원하시는 그것을 그가 행하시는도다. 이는 그가 나를 위하여 정해 두신 일을 행하시며 그러한 일이 그에게 많이 있음이라.

욥기 2310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택한 길을 알고 계시다고 말씀했습니다. 자신이 택한 길은 바로 예수께서 이루려고 미리 계획하고 정해 놓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예비된 영광인 하나님의 보석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신 그 뜻을, 우리는 뒤늦게 보배로운 목격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1절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보석 되게 이루시는 주님의 발걸음을 놓치지 않고 따랐다고 했으며, 12절에서 그의 입술의 명령에서 돌아서지 아니하였고하신 대로 하나님의 보석되는 과정인 순교할 수 있는 신앙으로 올라서기까지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끝까지 믿음으로 순종하며 온 것입니다. 14절에서 결론적으로 주님은 자신에게 정해 놓으신 일을 행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집, 하나님의 보석으로 미리 뜻을 정해두신 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세상의 보석도 귀하고 좋은데, 하물며 하늘나라의 하나님의 보석은 이 세상의 보석과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함과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석으로 영광을 누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생명(조에)으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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