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세습 금지, 교회 개혁 실마리 삼자

손봉호 장로01.jpg 기독교대한감리회가 교단법인 장정(章程)을 개정하여 목회자 교회 세습을 제도적으로 막기로 했다고 한다. 부끄러운 일이 연거푸 일어났던 기독교계에서 오랜만에 들려오는 반가운 소식이다. 시급히 필요한 교회 개혁의 좋은 실마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독교계뿐만 아니라 일반 언론도 환영 일색이고, 아무도 감히 이의(異議) 제기를 못하고 있다.

그동안 몇몇 대형 교회에서 일어났던 교회 세습은 한국 교회의 위상을 떨어뜨린 대표적인 폐습이다. 북한의 정권 세습과 한국 재벌들의 기업 세습을 곱지 않게 보는 판에 교회까지 세습한다니 누가 좋게 보겠는가? 너무 가난하여 목사의 생활비도 댈 수 없는 작은 교회를 담임목사 자녀가 세습한다면 모두가 칭찬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특권을 갖고 있는 대형 교회의 세습은 나름대로 이유가 없지 않겠지만 그 당사자들이 큰 비난을 받게 될 뿐이다.

교회는 법적·교리적으로 누구의 사유물도 될 수 없고 담임목사직의 후계에 혈연이 작용해야 할 어떤 근거도 없다. 결과적으로 본인들과 교회가 망신을 사게 되는 근시안적 패착일 뿐이다. ·인기·권력은 모든 사람이 추구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을 탐하고 누리는 이들을 질투할 뿐 결코 믿고 존경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지금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 사회갈등지수가 OECD 회원국 가운데 넷째로 높다고 한다. 너무 많은 사람이 돈·명성·권력 등 경쟁적인 '제로섬(zero-sum)' 가치를 우상으로 섬기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하급 가치를 상대화하고 욕망을 억제하여 경쟁과 갈등을 줄이는 것이 한국에서 고등종교가 해야 할 역할이다. 사랑·희생·봉사같이 공유 가능한 '()제로섬' 가치를 가르치고 실천하여 평화와 정의가 되살아나게 해야 한다. 그럴 때만 종교는 존재할 이유가 있고 사회의 인정과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한국 기독교는 상당 기간 그런 역할을 비교적 잘 수행해왔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나라의 독립과 민주화, 복지와 교육 등 중요한 분야에서 희생적으로 봉사했고, 절제·정의·인권 등의 신장에 크게 공헌했다. 교회 건물을 올리기 전에 학교와 병원을 먼저 세웠고, 그래서 국민의 더 큰 신임과 존경을 받았다. 그 덕으로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기독교가 가장 빠르게 성장한 나라로 꼽히게 되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최근의 한국 교회는 선배들이 세워놓은 그 위대한 유산을 거의 탕진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인 수가 늘고 돈·명예·권력 등 세속적인 힘이 생기자 그 힘을 사랑과 봉사에 이용하는 대신 즐기고 과시했다. 심지어 축복이란 이름으로 세속적인 힘을 추구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핍박받고 희생하는 소수가 아니라 힘을 가진 강자의 자리에 서게 되면 예수님의 고난과 겸손한 희생은 입으로만 선포된다. 대형 교회의 세습은 이런 타락의 한 부분이며 그 쓴 열매가 아닐 수 없다. 한국 교회는 사회의 신임과 존경을 잃어가기 시작했고,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해 주거나 심지어 교회가 세상의 조롱을 받게 되는 일까지 생겼다.

감리교단 입법의회는 이번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 다른 교단에도 경종을 울려주길 바란다. 그렇게 해서 실추된 한국 교회의 명예를 조금이라도 회복해 주기 바란다. 감리교단은 다른 어느 교단보다 교육·의료·복지 사업 등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에 앞장섰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 그동안 교회 세습이 감리교단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이뤄졌던 것이 사실이라면 이 폐습을 바꾸는 일에 책임 있게 앞장서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 또한 감리교단의 위상에 걸맞은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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