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의 삼년산성을 돌아보고

대구 박수영 기자 [문화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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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성을 시작해서
3년 만에 완성하였다고 부르게 된 삼년산성[충북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 산 1-1]을 가보다!!

삼년산성? 만들어진지 삼년밖에 안 되서 삼년산성인가 아니면 삼년만 만들었다고 삼년산성일까? 삼년산성을 오르기 전까지 왜 이름이 삼년산성일까? 하는 궁금증이 계속 되었다. 삼년산성은 사적 제 235호 지정되어 있다.

 충북 보은은 이웃한 괴산 땅과 마찬가지로 산지가 많다. 삼국시대의 각축장이던 충북에는 곳곳에 산성이 많은 편으로 그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단한 산성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삼년산성이다.

기자가 찾아가서 보았던 삼년산성은 규모가 정말 컸다. 삼년산성은 신라 자비마립간 13(470)에 축조되었고, 그 후 소지마립간 8(486)에 아찬 실죽이 일선군 장정 3천명의 인부를 징발해 개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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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성을 시작한지
3년만에 완성하여 삼년산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가 서북지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전초 기지였다고 한다.

삼국통일 전쟁 때 태종 무열왕(654661, 재위)이 당나라 사신 왕문도를 이곳에서 맞이하기도 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918943, 재위)은 이 성을 점령하려다 크게 패하였던 곳이다. 이 성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축산성으로 평가되며 성의 둘레는 약 1.7이고 성벽의 높이는 13m, 폭은 810m에 이른다.

이 성에는 서문. 북문. 동문 터가 있고, 특히 성벽의 군데군데에 곡성이 있어 우리나라 고대 축성법 연구에 매우 중요시 되고 있다. 성내에는 아미지란 커다란 연못이 있었고, 이 주위의 암벽에는 옥필, 유사암, 아미지 등의 글씨가 음각되어 있는데 김생의 필체로 전해오고 있다.

충북 보은은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의 영토다툼이 치열하게 진행된 곳이었다고 한다. 신라는 470년 자비왕 때 삼년산성을 축성하여 한강유역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기반을 만들었고 고려시대에 삼년산군은 보령군으로 고쳐졌는데, 조선 태종 때 충청남도의 보령과 이름이 같다하여 보은군으로 고쳐 지금까지 보은군으로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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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0
년이 흘렀지만 그때의 웅장함이 그대로 남아있는 삼년산성은 경북 상주 견훤산성, 충북 단양의 온달산성과 함께 삼국시대에 세워진 산성중 보존 상태가 제일 양호하고 멋진 산성이라 한다. 성벽을 쌓은 돌들은 모두 얇고 넓적한 판돌로 손으로 일일이 다듬은 다음에 가로와 세로로 쌓아 우물 정()자 모양이 되게 했는데, 이 방법은 성 위쪽의 무게가 아래로 고루 퍼지게 하는 기술로 성이 쉽게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정교한 축조방법이었다고 한다.

백제와의 국경에 쌓은 삼년산성.... 먹느냐 먹히느냐? 삼국이 운명을 걸고 쟁패를 다투던 시기이니 튼튼한 성을 쌓았을 게 분명하다. 신라가 고구려의 산성 축조기술을 배워 이 산성을 쌓으면서 국방력을 키워 고대국가로 성장하는데 발돋움이 됐던 중요한 성곽이다. 보은에만 성터가 14개가 있을 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곳이다.

박수영 기자(대구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