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메시지(5)
                                    이런 때 기도하라(3)
                            The time when you should pray

 누가복음 22:28-34  28“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 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34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하시니라.

 이탈리아에 가면 시스티나 성당(the Sistine Chapel) 이 있습니다. 이 성당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장의 벽화로 유명합니다. 그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요청으로 미켈란젤로는 무려 4년 동안 길이 41.2m, 높이 20m의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조수 한명도 없이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에 그림을 그려 나가는 고된 작업을 했습니다. 그가 그림을 완성했을 때는 목과 눈에 이상이 생겼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노아에 대한 그림으로부터 시작해서 단계 별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가장 인상 깊은 그림은 세번째 단계로 그린 아담의 창조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形象. Image)을 따라 지은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장면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예술가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서 하나님의 손끝이 아담의 손끝과 맞닿는 긴장된 순간을 그렸습니다. 바야흐로 흙으로 지어진 아담이 생령(生靈, living being)이 되는 순간입니다.

 저는 기도가 바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보잘 것 없는 우리가 생명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과 기도를 통해서 대화할 수 있고 교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영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기도를 통해서 현실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기도에는 초월적인 기능(超越的機能, transcendental function)이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안고 있는 현실의 모든 문제들을 이기게 합니다. 현실의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연약한 우리가 굳세게 세워집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질그릇 같이 연약한 인생들이 주를 의지함으로 강건(康健)하게 됩니다(찬송가 314).

 문제는 우리가 기도에 대하여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고, 기도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더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는데, 우리는 왜 기도를 가르쳐 주지 않느냐고,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 유명한 주기도문입니다. 이렇게 직접 주님으로부터 기도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을 통해서 기도의 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유익이 무엇이라는 것을 누누히 배웠습니다. 그래도 성경에 제자들이 기도했다는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시간에 제자들은 늘 피곤하여 잠들어 있었다는 말씀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자들은 예수님이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잠자고 있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믿기를 그날 저녁에는 제자들이 뭔가 예수님 신변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와 함께 깨어서 기도하자.”고 베드로와 야고보과 요한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날 저녁에도 잠을 잤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나요?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Could you men not keep watch with me for one hour? 마태복음 26:40)?”

 오늘은이런 때 기도하라는 제목으로 3번 째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내가 처한 상황이나 오늘 너희가 처한 상황이나 똑 같은 상황이 아니냐? 이런 때 내가 기도한 것처럼 너희도 기도하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내가 기도로 이긴 것처럼 너희도 기도로 이기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도 이 말씀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전후 상황을 살펴 보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은우리 중에 누가 가장 크냐?” 하는 문제로 한바탕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어쩌면 끝까지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무슨 정권(政權)을 잡지 않나 하는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중에 누가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를 토론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이런 것입니다.“이 세상에서 누가 어떤 자리에 앉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냐? 장차 너희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들이다. 거기에 들어갈 권세를 가진 너희가 세상의 권세를 탐내서야 되겠느냐?”

 여러분,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이 세상의 권세보다 하나님 나라에서 잡을 권세가 더 큰 것을 믿습니까? 저는 압니다. 이중에 이 말씀이 믿어지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느 여론 조사에서 본 것입니다만, 저는 한국 사람들이 하도 천국을 사모하기에 의식구조가 내세지향적(來世指向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매우 현세적인 것을 알았습니다. 나중에 뭐가 된다는 말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당장에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집착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장차 너희가 천국에서 권세를 잡는다고 해도 별로 감동이 없습니다. 당장에 지금 여기서 대통령하는 것이 훨씬 낫고, 당장에 여기서 뭐라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장차 천국에서 보화를 소유하는 것보다 당장 여기서1,000불 버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가치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컴퓨터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처럼, 이전의 가치관을 버리고 성경의 가치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시스템을 업그레이드(upgrade)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시스템을 모두 지우고 클린 인스톨(clean installation) 하는 것입니다. 자꾸 업그레이드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잘못된 찌꺼기들이 남아 있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크리스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 것은 지워 버리고” “새 것이 되어야 합니다(고린도후서 5:17).”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성경의 가치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갖는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28절 처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 즉여기시험이란 말을 NIV 성경에서는“trial”이란 말로 번역했습니다. 고난과 시련이란 뜻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KJV에서는유혹(temptation)”이란 말로 번역했습니다. 두 가지 경우가 모두 타당합니다. 바울이 선교지마다 다니면서 설교하면서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환난를 겪어야 합니다(사도행전 14:22).”이렇게 설교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습니다. 확실히 하나님의 백성들은 고난이라고 하는 풀무불 속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낳은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로마서 5:3-4).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요한 내용, 삶의 주제들이 환난, 인내, 연단, 소망, 이런 것들입니다. 그 방면에서 실력을 가지려면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가지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환난, 고난, 시련, 핍박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런 문제들을 피하지 않고 겪으신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복음을 위하여,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이시험을 유혹으로 번역하면 어떻습니까? 어떻게 보면 뒤에시몬아, 시몬아, 사탄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니……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시험을 유혹으로 번역하는 것도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탄이 시몬 베드로만 유혹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에너희를 청구하였니……라고 했지요?

너희라는 말은 제자 모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탄이 제자들을 유혹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왕권을 빼앗으려고 제자들을 유혹합니다. 장차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는 이 영광된 권리를 갖지 못하도록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해서 파멸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는 구체적인 일은 우리들의 믿음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적 침체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아주 사소한 일에 믿음이 떨어집니다. 믿음이 자라기는 아주 어려운데, 믿음이 떨어지기는 아주 쉽습니다. 조그만 일에 시험이 들어서 믿음이 떨어집니다. 사소한 말한마디에 깊은 상처를 받아 믿음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면 사탄의 계획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사탄이 우리의 삶에 침투해 들어오는 또 하나의 루트(route)가 있습니다. 보세요.“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마태복음 26:33에는모든 사람이 다 주를 버릴지라도 저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자신을 너무 믿어 과신(過信)하는 것입니다.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만일 견고한 성을 정복하려고 한다면 어디를 공격하겠습니까? 그 성의 제일 약한 곳을 찾아서 공격하겠습니까? 아니면 가장 견고한 곳을 찾아서 공격하겠습니까? 작전의 명수(名手)들은 결코 허술한 곳을 찾아 공격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곳은 경비가 삼엄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설마 이곳이야 별일 있을라고?” 하는 곳을 공격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곳은 의외로 경비가 허술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즘 보스톤, 케임브리지는 무슨 공사가 그렇게 많은지 어디가나 공사판입니다. 길도 좁은데다가 막히기 일수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사고가 많이 날 것 같은데 사고가 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런데마다 교통 순경이 하나씩 배치되어 있어서 차마다 조심합니다. 그러니까 사고가 나지 않습니다.

 사탄은 아주 교활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압니다. 베드로가 자기 자신을 과신했을 때 벌써 사탄은아하, 너의 약점은 바로 그곳이다!” 하고 음흉한 표정을 짓습니다. 보세요. 신기하지 않습니까? 변장의 명수인 사탄은 한 계집 아이로, 어떤 사람으로 나타나서 당신도 예수의 제자이지요?” 하고 묻지 않습니까? 그렇게 큰 소리치던 베드로가 정말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가룟 유다를 보세요. 그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직책은 돈을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보다 돈을 관리하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는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계산이 빨랐습니다. 그가 기록한 장부(帳簿)는 누가 보아도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런 유다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유다가 남 몰래 돈을 착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요한복음 12:6)? 결국 그는 돈의 유혹을 못이겨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 넘겼습니다.

 성경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십시오(고린도전서 10:12).”여러분의 강점(强點)은 무엇입니까? 혹시 여러분은 그것을 과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탄이 바로 그곳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까?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이런 연약함을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예수님께서 개인적으로 한 사람을 지목해서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 말씀이 처음입니다.“사탄이 너를 유혹할 때도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서 내가 기도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제자를 세워주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어느 책에 베드로의 장점과 약점을 써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의 약점 중의 하나가 경솔하고 충동적(impulsive)이라고 했습니다. 확실히 그에게 그런 점이 있습니다. 경솔합니다. 생각 없이 막 말합니다. 충동적입니다. 이런 베드로인데,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아무 대꾸가 없습니다.“바쁘실텐데, 저를 위해서 기도하신다니, 감사합니다.” , 이런 말이라도 할 법한데, 아무 말이 없습니다. 캠블 몰간(G. Campbell Morgan)은 베드로가 너무 예수님 말씀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사탄이 너를 밀까부르듯 너를 청구(請求)한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고, 하나는 내가 너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말씀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너를 청구한다는 말은, 사탄이 너를 내 놓으라고 요구한다(ask)는 것입니다. 사탄이 너를 하수인으로 쓰려고 내 놓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충격적인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베드로를 볼 때마다 그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장차 이 사람은내 교회를 세울 반석(rock)이 될 사람인데, 사탄이 이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을 예수님은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베드로를 처음 만난 그 때부터 그를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질문을 할지 몰라요.“아니, 예수님이 그를 위해서 그렇게 기도를 하셨는데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까?”그 질문도 틀린 질문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아니, 기도한다고 우리의 자녀들이 비뚤어지는 일이 없습니까?

 기도한다고 모든 것이 뜻대로 됩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는 헛된 것입니까? 분명히 예수님께서 그렇게 그를 위해서 기도하셨는데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아무 성과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삶의 마지막을 보십시오. 연약한 제자를 세워 주시려는 예수님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말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났을 때도 베드로는 예루살렘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젊었을 때 그는 자기 마음대로 다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힌 그는 주님을 위해서 순교하는 자리에 까지 갔습니다. 그는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팔을 벌렸습니다 (요한복음 21:18). 부분적으로 보면 사탄이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사탄은 패배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사탄을 이겼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부탁하셨습니다.“네가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돌이킨다(turn back)”는 말은회개한다는 말입니다. 회개는 잘못된 삶의 방향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것입니다.“내가 너를 위해서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한 것처럼, 너도 깨닫고(회개하고) 네 형제를 세워주라(strengthen).”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이 세워줘야 할 연약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사람이 사랑하는 남편이겠습니까? 아니면 사랑하는 아내이겠습니까? 아니면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이겠습니까? 아니면 시험 중에 있는 내 형제, 내 자매이겠습니까? 아니면 믿음이 떨어진 내가 아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들을 세워 주고 있습니까? 기도 외에 다른 길이 있습니까?

 그 전에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연약한 사람이 연약한 사람을 세워 줄 수가 없습니다. 강한 사람이 연약한 사람을 붙잡아 세워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둘 다 넘어지고 맙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세요. 그는 예루살렘 교회를 지키면서 신앙의 박해를 피해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을 이렇게 격려했습니다.“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베드로전서5:8-9).”

 베드로가 어떻게 이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까? 그냥 어느날 그렇게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만나 그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체험 사건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그의 인생을 하나님께로 돌이킨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돌이켰기에사탄의 유혹을 받고 있는 형제와 자매들을 세워 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전할 때마다 제 마음 속에는 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오늘날 역량(力量)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어쩐 일인지 자기를 세우는 일에 모든 힘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셩경공부 열심히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하는데, 모두 자기를 세우는 일을 위해서 합니다. 이제는 언제까지 자기만 세우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세워 주십시오. 연약한 사람들을 붙잡아 일으키십시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서 다른 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백번의 말보다 낫습니다. 기도는 그 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입니다. 기도 외에 더 좋은 길은 없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누가복음 23:28).” 저에게는 이 말씀이 이렇게 들립니다. “너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라. 네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라.” 제 귀에는 계속해서 이렇게 echo가 들려 옵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어 있는 연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