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메시지(3)

                               이런 때 기도하라

                                         The time when you ought to pray

크리스찬포토저널 복사2 사본 사본.jpg  누가복음 6:12-16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아멘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선택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제자들의 존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의 연속성(連續, continuity)이라는 점에서 볼 때, 제자들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리로이 아임스(Leroy Eims)라는 사람이 쓴제자 삼는 사역의 기술(The Lost Art of Disciple Making)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천사들 중의 한 천사가 하늘로 돌아온 하나님의 아들에게 물었습니다.“당신이 세상에서 시작한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까?”예수님은 주저하지 않고나는 사도들의 손에 그 일을 모두 맡겼다네.”하고 대답했습니다. 다른 천사가 물었습니다.“만약 제자들이 실패라도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예수님은 이번에도 망서리지 않고다른 계획은 없네.”이렇게 대답하셨답니다. 물론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이겠지만 제자 사역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기독교의 장래는 제자들의 사역에 그 성패(成敗)가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12제자들 선택하신 오늘 말씀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서 12 사람을 뽑아서(choose) 사도로 임명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을 부르셨다(마가복음 3:13)고 했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어디 취직을 하려고 해도 1, 2, 3차 인터뷰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제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면 클수록 제자를 선택하는 과정도 그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중하게 엄선(嚴選)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엄선을 했는데도 그 중에 장차 예수를 팔아넘길 가룟 유다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좁은 생각으로서는 왜 가룟 유다가 12제자 중에 포함되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가지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람의 기준이 우리의 기준하고는 매우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생각하고는 다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교회에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럴듯한 사회적인 지위를 가진 유명 인사(人士)도 없습니다. 오히려 들어가서는 안 될 사람같이 보이는셀롯이라 하는 시몬(Simon who was called the Zealot)”

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셀롯은 우리말로열심당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 시대의 과격한 민족주의자들입니다. 이런 사람이 왜 포함되어 있겠습니까? 그리고 가룟 유다는 왜 포함되어 있겠습니까? 이 말씀을 읽는 사람들이 흔히 간과(看過)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선택하는 과정입니다. 12제자를 선택하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뽑으셨다는 것은 압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그 일을 앞두고 산으로 가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열심당 시몬이 포함된 데에도, 가룟 유다가 포함된 데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셨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의 사역에 필요한 사람들을 보내 주시도록 하나님께 밤을 새워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일생을 동역할 동역자를 붙여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런 일을 앞두고 기도해야 한다고 하는 본(, example)을 보여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몰라요.“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고 제자들을 뽑았는데도 실수가 있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런 실수할까봐 기도 안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기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대로 되게 해 달라고 소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일생동안 함께 할 동역자를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어떤 일을 위해서 함께 일할 사람이 필요합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일꾼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누가복음 10:2).”여러분, 이 말씀이 이렇게 들리지 않습니까?“하나님께 일꾼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하라.”우리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이 많은 것을 압니다. 그분들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일꾼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제가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말씀들을 뽑아 보았더니 거기서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꼭 필요한 경우에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적어도 10가지 이상의 상황(狀況)이 있습니다. 똑 같은 상황이 오늘 저에게도, 그리고 여러분에게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기도 안합니다.

하나님과 본질상 동일하신 예수님께서 사실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때 그 때마다 기도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이런 때 내가 기도했으니, 너희도 기도하라.”이렇게 기도의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라고 하는 말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사람은 상당한 희생을 감수해야 기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희생은 희생입니다. 잠도 그만큼 덜 자야하고, 또 새벽기도에 나오려고 하면 그만큼 일찍 일어나야 하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기도할 할 때 제일 좋은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저에게 하루 중 제일 좋은 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기도할 때도 아니고, 설교할 때도 아니고, 베이글 먹을 때도 아니고, 제일 좋은 때는 새벽 기도 마치고 집에 갈 때입니다.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찬송가 208장 가사처럼 물밀 듯 저의 마음에 기쁨이 넘칩니다.

두번째로, 예수님께서는 사역(使役)의 힘을 공급 받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마가복음 1:35 말씀에 있습니다.“새벽 오히려 미명(未明)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여러분, 이 말씀의 전 후를 살펴보십시오. 그 전 날 저녁 늦게까지 병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 다음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 한적한 곳에서 홀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저는 압니다.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던 사람들이 어느새 깊은 영적 침체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것을 저는 압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지쳐 버린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역의 힘을 공급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사역의 원리는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with the strength God provides)”하는 것입니다(베드로전서 4:11). 모든 사역자들은 이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사역할 수 있는 힘을 공급받을 수가 없습니다. 교사들은 어떻습니까? 교사들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사역입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공급 받으십시오.

구역장들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사역입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공급 받으십시오. 성가대는 어떻습니까? 성가대의 찬양이 하나님의 사역입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각 부서의 장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공급 받고 있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한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께 제자들이 와서 말했습니다.“벌써 사람들이 와서 주님을 찾고 있습니다.”제자들의 말에 예수님은 의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마가복음 1:38).”

이른 새벽에 자기를 찾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시고 다른 마을로 가신 것입니다. 다른 마을에도 가서 전도를 해야 하겠다고, 내가 이 일을 위해서 세상에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른 새벽에 하나님께 기도하심으로써 사역의 힘을 공급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역의 방향도 기도 중에 결정하셨습니다.

그냥 무작정 일만 한다고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우리는 하나님께 물어야 하고,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역의 내용과 방향을 결정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적인 교회들이 왜 쇠퇴합니까? 전통에 얽매여 과거의 것을 그대로 답습(踏襲)하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교회라면 장로교, 감리교 등을 말합니다. 시대는 급하게 변하는데, 이 시대에 필요한 사역의 내용과 형식과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은 늘 이 교회가 나가는 방향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교회가 시대적인 책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냥 오래 묵은 포도주가 좋다고역시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야!” 하면서 그 맛에 취해 있어서는 안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누가복음 5:38).

 

세번째로, 예수님은 자기의 생의 사명(使命)을 발견하기 위해서, 또 그 사명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말씀이 누가복음 3:21-22에 있습니다.“(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또 누가복음 9:28-29, 35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 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容貌)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

앞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말씀이고, 뒤의 말씀은 변화산상(transfiguration on the mountain)의 말씀입니다. 앞의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의 말씀이고, 뒤의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 중기에서 말기로 넘어가던 때에 있었던 말씀입니다. 두 말씀의 공통점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온 것입니다.

그 음성은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내가 너를 기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지금하고 있는 일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생의 사명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생의 사명을 발견하기 위해서, 또 그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믿는 것은 우리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마다 사명의 목적은 같습니다. 그러나 사명의 내용과 형식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 영광을 드러내겠습니까? 이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사명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하면서 그 사명을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공과 실패를 세속적(世俗的)인 관점에서 보아서는 안됩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말하는 성공은 것은 뻔한 것입니다. 뭔가 남보다 앞서야 하고 남보다 많이 가져야 성공한 것입니다. 남보다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남보다 더 출세를 해야 합니다. 돈도 남보다 많이 모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식으로 성공과 실패를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사명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것으로 성공과 실패를 말합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든지 사명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우리 모두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 주님도 그 일을 위해서 계속해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학생들은 이렇게 기도하십시오.“하나님, 이 유학생활 중에 저의 생의 사명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공부도 그 사명을 위해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그래야 유학생활의 의미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조국을 떠나 미국에 이민 와서 사시는 분들도 이렇게 기도하십시오.“주님, 제가 여기까지 와서 살게 된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을텐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말씀해 주십시오.”이렇게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힘든 이민 생활에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은 의미(意味)를 추구하는 존재(存在)입니다. 이미 유대인 빅터 프랭클(Victor E. Frankl)이라는 사람이 자기가 아우슈비츠(Auschwitz)에서 살아남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인간이란 무엇인가?(Man's Search for Meaning)라는 책에서의미요법(Logotherapy)”이라는 이론을 세웠습니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자기 삶에 의미가 있으면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길 수 있습니다. 고난 중에도 기쁨과 보람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이 의미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또 어떻게 충족(充足)될 수 있습니까? 이 삶의 의미라는 것이 자기 사명의 발견과 실현이라는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자기 생의 사명을 발견하는 것은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명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사명을 발견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말해 볼까요? 우리는 우리의 생의 주인되시는 그분의 뜻 안에서 우리의 생의 사명을 발견해야 합니다.

지금 사순절 새벽 기도회가 은혜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도는 자기를 희생하는 일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서 자기 생의 사명을 발견하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고, 기도를 통해서 자기의 동역자를 구하고는 일은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 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길이고,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길입니다.“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열왕기하 5:26)?”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지 아십니까? 엘리사가 자기의 시종(侍從) 게 하시에게 한 말입니다. 문둥병에 걸렸던 시리아의 국방장관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나아만은 자기 나라에서 올 때부터 자기 병을 고쳐주는 대가로 지불하려고 많은 패물과 예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한 푼도 받지 않고 그것을 받지 않고 돌려보냈습니다. 이것을 본 게하시가 탐이 나서 나아만에게 가서 엘리사의 이름을 팔고 패물을 받아냈습니다. 이것을 안 엘리사가 게하시를 책망합니다.

지금이 어느 때냐? 지금이 네가 그런 것에 마음을 쓸 때냐? 지금이 어느 때냐? 네가 돈이나 옷이나 이런 것에 마음을 쓸 때냐?”그렇습니다. 여러분,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여러분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에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지금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때 아닙니까? 간절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 때가 아닙니까?

간절하게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하는 때가 아닙니까? 지금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때가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