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메시지(1)
                            당신의 가슴에 불을 붙이라.
                                    Kindle a fire in your heart.

누가복음12:49-53
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52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53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교회를 섬기는 사람치고 교회의 부흥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렇듯이 교회의 부흥은 저에게도 지대한 관심사입니다. 그리고 특히 최근에 와서 부흥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젊은 청년들은부흥노래를 즐겨 부릅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이 땅 고쳐주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우리의 우상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 날 주소서 오 주님 나라 이땅에 임하소서 -고형원 작사/작곡-

그러나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부흥을 원하지만 어떻게 부흥이 가능한지를 모릅니다. 제가 읽은 책 중에 레오날도 레이븐힐(Leonald Ravenhill)이라는 사람이 쓴하나님의 방법에 의한 참된 부흥입니까?라는 책이 있습니다. 영어로는Revival, God’s Way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책에서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지난 50년 간 부흥에 대한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아직 진정한 부흥이 무엇인지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방법에 의한 참된 부흥을 알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계속해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 우리는 부흥을 위해서 울지 않는가? 참된 부흥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우리는 부흥을 위해서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부흥은 힘으로 되지 않으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되는 것이다(Not by might nor by power, but by God’s Spirit. 스가랴 4:6).”

부흥을 위한 대책을 세운다면 여러 사람에게서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나올 것입니다. 새로 온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하고, 전도할 때는 어떻게 하고, 교회에서는 어떤 행사를 준비해야 하고 이런 저런 교회 부흥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방법에 의한 교회 부흥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교회가 부흥하려면, 참으로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 사람들의 심령이 변화되려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운행(運行)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의 말에 동의하십니까?

사도행전 말씀에 보면 교회의 부흥에 대하여 이렇게 썼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Then the church throughout Judea, Galilee and Samaria enjoyed a time of peace. It was strengthened; and encouraged by the Holy Spirit, it grew in numbers, living in the fear of the Lord. 사도행전 9:31).”

여러분, 이 초대교회의 부흥의 중심에 누가 있습니까? 성령의 위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제자들이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에서부터 시작해서 성령충만한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초대교회는 이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 충만한 7집사를 세웁니다. 그리고 나서 스데반의 순교가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제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땅에 들아가 복음을 전파합니다. 사마리아 도시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그러다가 극적인 사건 하나가 발생하는데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이라는 사람이 회심(回心)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옵니다. 사울이 성령을 충만히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합니다.

이런 와중에 교회가 크게 부흥합니다. 단순히 교인 수만 불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말들을 조심해서 보십시오. “교회들이 평안하여라고 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이 말씀을 “The church throughout Judea, Galilee and Samaria enjoyed a time of peace.”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교회들이 평화의 때를 즐긴 것입니다. 교회에 박해가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핍박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땅에 복음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들이 든든해졌습니다. 교회가 말씀을 배워서 신앙심이 자란 것입니다. 교회가 든든해지는 것은 다른 것 아닙니다. 교인들의 신앙이 자라야 교회가 든든해집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나야 교회가 든든해 집니다. 사도들이 나가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친 덕분에 교회가 이렇게 든든해졌습니다. 이런 교회라야 핍박을 견딥니다. 이렇게 든든히 선 교회라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을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말씀을 잘 배워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야 든든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여도, 아무리 리더쉽이 있게 보여도 말씀 위에 든든히 서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오래 못갑니다. 금방 바닥이 훤하게 드러납니다.

, 그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옵니까?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주를 경외함으로 진행하여그랬습니다. NIV 성경에는 “living in the fear of the Lord”라고 했습니다. KJV 성경에는 “walking in the fear of the Lord” 라고 했습니다. 이 경우에는 NIV 성경보다 KJV 성경이 훨씬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walking” 이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걸어다닌다는 뜻 아닙니까?

저는 이 말씀을 예수원(Jesus Abbey의 토리 신부(R.A. Torrey III)에게서 배웠습니다. 보스톤에도 얼마 전에 한번 오셨지요. “walking in the fear of the Lord” 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여기 저기 돌아 다니면서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배 중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가 돌아 다니는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라고 했습니다. “Walking in the comfort of the Holy Spirit”라는 말입니다. 똑 같은 뜻으로 그들의 전 삶의 영역에서 성령의 위로하심이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부흥의 중심에 성령께서 계십니다. 바로 성령님이 교회 부흥의 주체(主體)였습니다. 그 교회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나게 하심도, 말씀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심도,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삶을 살게 하심도, 그리고 위로하심이 모두 성령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참다운 부흥에서는 성령께서 하시는 이번 변화의 현장들이 목격이 됩니다. 교인의 수가 불어나는 것은 참 부흥의 결과이지 부흥 자체는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에 의한 참된 부흥입니다. 부흥은 일시적인 감정(感情)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흥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법에 의한 참된 부흥은 이렇게 교회를 변화 시킵니다. 개인을 변화 시킵니다. 그리고 세상을 변화 시킵니다.

하나님은 이 부흥이 우리에게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교회가 참으로 부흥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가 바뀌고, 이 교회가 바뀌고, 그리고 이 세상이 바뀌어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명목상의 크리스찬(nominal Christians)이나 그저 현상 유지나 하는 그런 크리스찬이 아니라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나서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인정할 줄 아는 사람들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Christians walking in the Holy Spirit” 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동시에 여러분을 향한 예수님의 소원입니다. 보세요.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이 말씀을 읽는 사람들은 도대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 불이 무슨 불이냐?” 고 질문합니다. 여러분, 이 불이 무슨 불이겠습니까? 아니 그보다 먼저 여러분께 물을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볼 때 잘 모르는 말씀이 나오면 그 말씀을 어떻게 해석합니까? 주석책(commentary)을 봅니까?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주석책에서 찾아 보면 다양한 해석들이 나옵니다. 그 중에 어느 해석을 따라야 합니까? 또 하나 말씀을 해석하는 방법은 말씀의 문맥(文脈, context)을 살펴 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해석하는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많은 주석가들도 이 불을 심판이라고 해석합니다. 심판이라고 해셕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앞에 나오는 진실한 청지기와 게으른 청지기의 비유 말씀과 연관을 시킵니다.

생각지도 않은 날에 주인이 와서 진실한 청지기에게 주인의 모든 것을 맡기고, 주인이 더디 온다고 생각하고 게을렀던 종은 주인의 책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불을 던지러 왔다는 것은 곧 심판의 불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잘 읽어 보면 49절부터 말씀은 그 이전의 말씀과 주제가 다른 말씀입니다. 앞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기 보다는 말씀의 주제가 49절부터 바뀌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렇게 우리에게 붙기를 원했던 그 불이 무슨 불이겠습니까? 심판의 불입니까? 예수님께서 심판의 불이 붙기를 그렇게 간절히 원하셨습니까? 그리고 그 밑에 나오는 말씀은 또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받을 세례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세례를 받을 때까지 내 마음이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말씀이 내가 세상에 온 것은 화평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분쟁(分爭, division)을 일으키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한 집 안에 다섯 식구가 있으면 3:2로 혹은 2:3으로 나뉘어져서 서로 싸울 것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와 자식이 싸우게 되고, 어머니와 딸이 싸우게 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싸우게 된다고 합니다. 다른 말은 잘 이해가 안가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싸운다는 말은 쉽게 이해가 되네요.

이상의 말씀들을 잘 읽어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붙기를 원하셨던 그 불은 예수님의 죽음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은 분쟁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 불이 붙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셔야 합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죽음은 불이 붙기 위해 우선되어야 하는 prerequisite입니다. 그 불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에 붙은 불타는 열심(the burning zeal)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이 불은 성령의 불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하나님의 일꾼들은 이 불타는 열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열심을 한자로 어떻게 씁니까? “더울 열()” “마음 심()아닙니까? 마음이 뜨거운 것이 열심입니다. 예레미야가 그랬습니다. 자기 가슴에 불이 붙어 있다고 했습니다(예레미야 20:9). 이 가슴에 붙은 불 때문에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가슴이 뜨거워서 견딜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이 불이 붙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셨습니다. 돈바꾸는 상을 둘어 엎고, 소나 양, 비둘이 파는 사람들을 성전에서 내쫓았습니다. “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소굴로 만들지 말라(마가복음 11:17, 요한복음2:16).” 고 하셨습니다. 신기한 것은 아무도 예수님께 대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신이 뭔데 그러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가슴에 불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런 모습에서 성경 말씀에 주의 전(殿)을 사모하는 열심(zeal)이 나를 삼키리라한 것을 기억하더라.”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이사야 69:9, 요한복음2:17)?

구세군(The Salvation Army) 창시자 윌리암 부드(William Booth, 1829-1912)의 가슴에도 이 불이 붙어 있었습니다. 한번은 영국의 왕 에드워드 7세가 그를 왕궁으로 초청했습니다. 왕이 윌리암 부드의 손을 잡으면서 "당신은 참으로 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 덕분에 영국 사회가 밝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칭찬을 했다고 합니다. 부드가 왕궁을 떠날 때 에드워드 7세가 방문록에 싸인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부드가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폐하, 어떤 사람의 야심은 뛰어난 예술가가 되는 것이고, 어떤 사람의 야심은 더 높은 명성을 얻는 것이며, 어떤 사람의 야심은 더 많은 황금을 모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유일한 야망은 더 많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의 가슴에는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불타는 구령(救靈)의 열정(熱情)이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의 뜨거운 불이 붙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소원하십니다. 이 불이 붙기를 기다릴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어제 그저께 최바울 선교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세상을 지배하고 싶으면 중심으로 가라. 그러나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변방(邊方)으로 가라.” 누가 중심으로 갑니까? 똑똑한 사람들이 갑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을 조금도 변화 시키지 못합니다. 누가 변방으로 갑니까? 미련한 사람들이요? 아닙니다. 미련한 사람들은 아무데도 안갑니다. 가슴에 성령의 불이 붙은 사람들이 변방으로 갑니다. 이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 시킵니다. 이 사람들이 복음으로 한 국가를 움직입니다. 더 나아가서 세계를 경영(經營)합니다.

가슴에 성령의 불이 붙은 사람들이 가는 곳에는 싸움이 시작됩니다. 대립이 있습니다. 분쟁이 있습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가정이 편이 갈립니다.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으로 편이 갈립니다. 이 분쟁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영은 영이고, 육은 육입니다. 어차피 싸움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싸움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평화를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칼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부부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이 같이 사는데 갈등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가슴에 성령의 불이 붙은 사람과 정욕의 불이 붙은 사람이 같이 사는데 싸움이 안일어 날 수가 없습니다. 싸움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그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가정의 평화가 옵니다.

먼저 여러분의 가슴에 성령의 불을 붙이십시오. 이 불이 안붙으면 싸움도 없고 분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평안합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행복합니다.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그것은 참 평안이 아닙니다. 참 행복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깨질 것입니다. 지금 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는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이 싸움이 내 안에서도 일어나야 하고, 이 싸움이 내 밖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먼저 여러분의 가슴에 성령의 불을 붙이십시오. 예수님의 소원대로 성령의 불을 붙이십시오.

방법은 간단합니다. 기도하십시오. 무엇보다 시급한 기도 제목은 내 가슴에 성령의 불이 붙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놓고 집중적(集中的)으로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성령의 불만 붙으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서 내 안에 있는 죄성(罪性)을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이것들을 제거해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끝으로 연변 총각 시리즈 하나 하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제목은리더편입니다. “저희 련변에서는 리더 1년차? 고건 리더축에 끼지도 못함다. 리더 1년차 정도믄 혼자 큐티나 조금 할 수 있갔구나 함다. 리더 5년 정도는 해야 고저 저게 혼자 성경공부 교재를 고를 수 있갔구나 함다. 10년 정도 하면 이제 연륜이 묻어남다. 기도하다가 실수해서 말 바꾸는 일 절대 업씀다. 눈 감고 팍팍 질러대도 시편 서너편 정돈 나옴다. 이제 15년 쯤 하면 이거 장난 아님다. 예배드릴 때 대충 앉아 들어도 설교 내용 다 알고 십일조는 남아돔다. 어쩌다 기도한답시고 어줍짢게 눈감고 있으면 다른 15년 차 리더들이 "고저 무슨 걱정거리 있네? 기도제목 말하라우~" 하고 위로해줌다. 20년 정도 하믄 이단인지 아닌지는 초월한 상태임다. 성경 외경도 살펴보고, 가끔 여호와의 증인에게 전도도 함다.

년말에는 노회에서 성경고사 문제 낼 때 자문 요청 해옴다. 25년 정도하믄 총신대에서 강의 부탁함다. 총신대 셤볼 때 셤감독 나감다. 수험생들 하나 풀기도 바쁜 시간에 기도하고 두 개 다 품다. 시간 남아서 낼 큐티까지 함다……유년부 다닐 적이었슴다. 갑자기 밖에서 "불이야!" 하는 소리가 들렸슴다! 나가보니 교회에 엄청나게 큰 불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성도들이 우글우글 모이기 시작했슴다!!! 전 처음에 국제시장에 불이난 줄 알았습다!!! 아니었슴다!!! 그것은 30년 묵은 리더가 본당에서 기도할 때 내려오는 성령의 불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교회의 모든 섬기는 사역자들 가슴에, 리더들의 가슴에, 그리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에 성령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어 나가십니다. 출세하기를 원하십니까?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하는 대로 하십시오.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그러면 성공도 하고 출세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가슴에 성령의 불을 붙이십시오. 여기서부터 참다운 부흥이 시작되고, 여기서부터 세상은 변화되기 시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