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여목 안수에 대하여 말한다.
작성일[2008/08/09 21:34:14]    
 현재 우리 웨신을 포함한 각 교단에서 여 목 안수 제도에 따른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 이는 시대적인 상황의 변화에 따른 신학적 해석의 차이와 견해가 각자 다르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목 안수에 대해 성경적이냐 아니면 비성경적이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 지극히 감정적이고 편향적이며 교단적 배경과 이해 타산적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목에 대한 안수문제는 교단정치의 정치적인 목적에 의한 이해득실 차원에서 해석되어지거나 신학적인 무지와 오류에서 비롯된 일방적인 편견에 따른 극한 대립으로 교단의 분열을 초래하는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적 진리는 오직 하나이지 둘은 아니다. 참된 진리는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신학적인 문제는 간단한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신학이 신학으로서 가치를 지니려면 신학의 기초요 본질인 그리스도의 정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신학을 단순한 신학전인 논리로서만 다룬다면 바리세인이나 율법사들의 논리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신학의 절대적 권위를 약화시키려는 것은 결코아니다. 신학의 최종 완성은 그리스도의 정신과 그분의 뜻이다. 옳으냐 그르냐의 율법적 기준만으로 풀어야 할 그 이상의 영적인 가치를 발견하고자 함이다. 논리는 주장에서 나온다. 끝없는 논리의 주장은 결국 분쟁의 요소가 된다. 분쟁과 다툼은 미움을 가져오고 미움은 상대를 적대시하고 죽이는 살인의 직접적인 동기가 된다. 때문에 예수님은 논리를 앞세우지 않으시고 바리세인과 율법사들의 율법적인 논리를 사랑으로 품으셨다. 다시 말하면 논리로서 대응하시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감싸 안으셨다. 논리로서 대립하지 않고 사랑으로서 그 논리를 정복해버리신 것이다. 사실 참된 논리는 진리 안에서 나와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논리가 될 수 있다. 진리는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모든 논리의 중심에 계셔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논리의 중심에 계신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 분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논리의 문제로 상처받거나 찢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논리와 자기주장에서 먼저 그리스도의 정신을 갖자.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신학과 논리로 무장하고 나오는 투사의 모습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제자들의 모습으로 주님이 주시는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함께 나누는 거룩한 정신으로 서로를 포용하고 감싸는 주님의 마음 안에서 서로의 팽팽한 주장과 논리의 잘못됨을 스스로 깨닫게 하고 진정한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는 위대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여목 안수 제도는 더 이상 교단분열의 불씨가 되거나 신학적인 분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가 마음을 활짝 열고 율법이 아닌 복음의 진리 가운데서 문제를 새롭게 인식해 나아가야 할 때다. 교단은 특히 여목 안수 제도를 자기교단의 교세확장의 목적수단으로만 삼지 말고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라는 한국교회의 시대말 적 중대한 선교사명의 완수라는 대의를 염두에 두고 풀어야 할 것이다.

 옳고 그름의 대한 논리의 전개와 주장만으로는 서로에 대한 반목과 불신만 초래할 뿐이다. 팽팽한 자기주장과 논리만을 앞세워 총회 분열의 빌미를 만드는 그 어떤 주장도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를 빌미로 자신의 정치적 세력을 확대하려는 목적으로 총회를 이탈케 함으로써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보려는 의도가 나타난다면 이 또한 절대 묵과할 수 없을 것이다. 총회는 여목 안수에 대하여 무조건적인 반대나 찬성의 극단적인 논리의 자기주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충돌하려는 양자를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성숙한 모습으로 상대방의 신학적인 논리와 현실적인 상황에 조화를 이루고 슬기롭게 헤쳐 나갈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現)대한예수교 장로회 평안교회 담임목사

      웨신총회  총무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