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소리
작성일[2008/08/02 08:02:08]    
 돌 소 리

담에서 돌들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합 2:11)

예배란 제사에서 유래 되었다. 영어로 worship(워쉽), (히)아바드 아보다, (헬)프로스 키네오인데 존경을 나타낸다는 의미다. 엄격하게 말하면 예배란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께 경건가 의식을 표현하는 삶 전체를 포괄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에서의 예배는 행위가 정해 놓은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아담과 하와의 삶 전체가 예배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생활하는 그들에 삶 전체가 예배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실로 그들의 삶은 경건했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존경했으며 아담과 하와의 행동 일거 수 일동이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삶이 끊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부르셨을 때부터 아담과 하와의 실제의 예배는 중단 된 것이다.

죄를 지은 까닭에 하나님의 얼굴이 두려워서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은 것이 부끄러워서 숨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길 누가 벌거벗은 것을 내게 고하라 했느냐 먹지 말라 하는 선악과를 왜 먹었느냐 아담과 하와는 사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불순종한 까닭에 에덴동산에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예배가 중단 된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예배가 중단 된 후부터 말할 수 없이 인간의 행위가 악해졌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그에 후손을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수와 같이 창대케 하고 제사장 나라를 만들어 에덴동산에서 끊어진 예배를 다시 받으시기 위하여 제사장 국가로써 이스라엘 나라를 택하셨다.

거룩한 예배의 기원은 창 4장 4절 아벨의 제사였다. 양의 첫 새끼를 예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열납하셨다. 창 8:18~20절, 멜기세댁과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리고 축복을 받은 거룩한 제사였다. 구약시대의 예배 행위에 대한 말씀은 모두 기록하기 어렵고 성경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실로 거룩한 예배를 대표적으로 든다면 출 3:5~6절,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떨기나무 불붙는 광경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이 이곳은 거룩한 땅이니 가까이 하지 말며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과 불꽃 가운데서의 광경이 실로 거룩한 예배였다. 또한 왕상 8장에 솔로몬 왕이 성전을 다 짖고 봉헌 예배를 드리던 광경이 실로 거룩한 예배였다. 순서가 조금 바뀌었지만 출40:17~38절에 성막 봉헌 예배는 실로 거룩한 예배였다. 지금까지 기록한 예배 행위는 구약 시대였다.

 

이어서 성자 시대에 와서는 예배가 예수님과의 대화가 예배였다. 산상수훈 설교 예수님의 교훈을 듣는 광경이 예배였다. 벳세다 들녘 빈들에서의 오병이어의 기적, 칠병이어의 기적 베다니 마르다 집에서의 대화 등..............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찾아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모든 행위가 예배였다.

그리고 성령 시대의 예배는 신약교회의 출범을 말할 수 있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 120문도의 10일간 금식하며 성령강림 역사가 신약시대의 가장 실제적인 예배였다. 그 후 성경의 역사적인 사실을 볼 때 지금까지 성령의 힘입어 거룩한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할 정도의 성도들의 삶이 그 자체가 예배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범 죄와 고범 죄와 허물로 인하여 성도들의 행위가 거룩하고 경건하지 못했다. 그리고 별도로 시간을 엄수하여 예배 시간이라도 인간의 속성을 중단하고 예배 시간만이라도 거룩한 예배를 드림으로서 하나님과의 교재를 하는 것으로 주일 낮 예배, 주일 찬양예배, 수요예배(기도회), 새벽기도회, 조금 더 성령의 역사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재충전 하기 위하여 특별 심령부흥집회, 금요 철야기도회, 가정예배, 주일학교, 남전도회, 여전도회, 노회, 총회, 신년하례 예배 등등, 한 사간이라도 거룩하고 경건한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예배가 성도들에 생활과도 같이 드려지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 앞에 예배 행위에 대하여 잘못된 것을 지적한다면 형식적인 바리새인의 의식적인 모습과 같이 드려지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아니하신다. 예배에 그릇된 형식주의는 지금 나 자신부터 삼가 조심하여 교정해야 할 문제이다.

예배의 4대 의무가 있다면 말씀, 기도, 찬송, 헌금 일 것이다. 국민으로서의 4대 의무가 있다. 국방, 근로, 납세, 교육이 국민의 4대 의무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마찬가지로 교회 살림을 해나갈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이 예배, 기도, 전도, 헌금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의 예배란 실로 그 자체가 예배시간 한 시간이라도 신실하고 거룩하고 경건해야 하나님이 받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예배이든 예배의 명칭이 다르다해도 예배의 시작과 끝이 폐회의 종이 올릴 때까지만 이라도 진지하고 경건하게 드려져야 한다. 지난 1월 7일 모 총회가 00교회에서 신년하례회 예배가 경건하게 드려졌어야만 할 것이다. 합동 후 처음으로 드려지는 신년 하례회 예배는 참으로 의미있고 두 총회가 합동되어 설레는 마음에 회원 목사들의 발걸음은 참으로 보람과 뜻 깊은 하례회 예배였을 것이다.

시간이 되어 예배당 안에는 입구에서 나누어 주는 순서지, 돌소리 봉투 등을 저마다 들고 자리에 참석한 총회원이 많이 모였다. 그리고 예배 순서를 맡은 위원들이 등단하고 사회를 맡은 목사가 타종을 치며 신년하례회 예배는 시작되었다. 단상에는 사회자, 총회장, 부총회장, 서기, 회계 등 위원들이 앉아 있다. 총회의 임원이라면 모든면에서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예배의 순서에 따라 경건하게 예배에 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지켜보시는 예배이기 때문에 예배가 시작되는 타종이 울리는 동시에 일체의 개인적인 행동은 삼가야 한다. 아무리 반가운 분이 옆에 앉아 있어도 일단 예배 시간만큼은 눈짓 손짓을 금하는 것이 예배자의 자세가 아닌가? 처음 나온 초신자라면 몰라서 그러한 행동이 나올 수 있다고 하겠지만 그러나 총회를 대표해서 등단해 있는 순서자들의 행동, 눈 동자까지도 의식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설교자의 잘못 매여진 넥타이를 바라볼 때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신경이 쓰일 정도로 단상에 있는 위원들을 주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신년하례회 때 예배는 위원들의 불경건한 모습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모 총회장은 합동되고 처음 드려지는 의미 있는 예배에 대해 설교가 진행 중인데 뒤에 앉아 있는 000부총회장, 서기 목사는 예배 순서지를 들고 있는데 총회장의 설교는 아예 들을 생각은 접고 순서지를 가리키며 서기 목사는 부총회장 앞에 몸을 기대인체 손가락으로 지적해 가며 말을 나눈다. 그리고 곧 옆에 앉아 있는 회계를 맡은 자에게 또 무언가를 묻고 있다. 예배 순서지를 들고 앉아 좌우에 앉아 있는 예배위원들에게 무언가를 묻고는 서기 목사가 아예 일어서더니 단상 앞으로 포부도 당당하게 다가 서 더니 실내화를 들고 부총회장 발에 신으라고 배려까지 하는 행위...어찌 이 모양인가? 초신자들도 이러한 행위는 안 할 것이다.

이는 상식이기 때문에 단상에 앉아 있는 예배 위원들은 실로 엄숙하고 경건한 모습이 배여 있어야 할 위원들이 아닌가?

땅 벌이 날아와 얼굴을 쏜다고 해도 내색을 할 수 없는 장소, 예배를 드리는 회원들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 그 성전 안에 앉아 있는 제사장 같은 위원들이 아닌가?

하나님은 고사하고 많은 목사들 앞에서 설교하는 총회장의 설교 중에 순서를 맡은 위원들의 행동은 참으로 조심하고 경건해야 할 것이다.

사실 예배 위원을 맡은 순서자라면 총회가 개회는 하후 전에 아니면 며칠 전에 순서지를 살펴 보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예배가 진행되고 있는 단상에서 아래 회원들이 보는 앞에서 의식도 하지 않고 덕스럽지 못한 행동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설교 중에 슬리퍼를 신켜 주는 등, 이는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총회의 미래가 심히 걱정이 된다. 거듭 말하지만 총회 지도자라면 상식에 어긋나는 예배 의식은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하나 더 든다면 군인이 연병장에서 사열을 할 때 사단장이 단상에서 훈시를 내리고 각 선임자들이 사열식장 병사들의 오와 열을 주시하며 서 있는데 어느 병사가 개인행동을 할 수가 있으며 눈동자까지도 돌리지 못하는 것이 군인의 정신이다. 하물며 주의 종들이 하나님 앞에서 드려지는 경건한 예배 시간에 자기 집 쇼파에 앉아서 취하는 듯한 망가진 모습은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돌소리가 외치는 이 말이 쓴 소리 같아도 참고하면서 약이 되었으면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요 성령께서 기뻐하실 일이기에 소감 한다디를 적어보았다.

돌소리 전영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