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당선 작품(시 부문 장원 및 대상... 심사평)

< 당선작품 > 작품 실비가 내리고, 외 1편 

실비가 내리고

새벽이면 누군가 왔다간다
가슴에 별 두른 하이에나 도 왔다 간다

햇빛 환하여 내 죄가 빛나는 날
아픔에 묻어 두었던 그대 몸이 가을 황국黃菊으로 흐드러질 때
먼저 간이의 젖멍울 같은 사랑을 물고 태양을 바라본다.

마루엔 물감 풀다 한숨짓는 장인의 음영
석양 길에 약주 사오던 그림자가 기울어질 때
마음 사뿐히 즈려놓고 해금을 부른다
가슴 도려내며 함께 노래하던 그대의 얼굴
다리 뒤편에 숨겨 다음 세상에 놓아주려 했다
내 바람의 근원은 영롱한 피 한 술
한세상, 푸른 백주로 피를 달래다
누워 죽은 사랑도 있으니
내 가슴에서 슬픈 사람, 볼떼기가 빨개질  때
눈이 큰 수국을 업고 다시 언덕을 오르는
마음 얇아 답답한 노새
가버린 내 삶의 등 뒤로
실비가 내린다.


국화

새벽인데,
노란 외등 하나 켜 있다
내 손을 잡는다
, 무심코 바라보다가
잠시 우주 같은 그 안에 갇힌다
노란 꽃잎이 한 겹, 한 겹이 나를 포갠다.
 
이 길은, 노란 꽃 무덤
빨대처럼 길게 뻗어있다
길고 둥근 잎새마다 촘촘히 채워진 점방들
거기 하늘 문이 열리고
그 길 따라 아래에서 위로 기어오르는
배추벌레들의 아귀다툼 속을 비집고
노란 꽃이 피어난다. 그 향기에 취해 정액이 흐른다

가을 새벽인데,
노란 신호등 하나 깜박인다
감긴 손발이 풀린다
평생 건진 건 겉 옷 몇 벌, 잠바와 청바지 한 벌, 신발 한 켤레

그리고 또, 신호가 바뀐다.
아직도 가야할 날들이 조금은 남았나보다.
길가엔 노란 외등 하나 켜 있다


< 당선 소감 >

다시, 학습學習을 시작하며
유 덕영

대추나무 가지 꺾이도록 모진 비바람 불어치는 것은, 가을에 튼실한 열매를 많이 맺기 위해서다. 서릿발 세운 청 보리밭, 꼭꼭 밟는 것은 뿌리 실하게 내리라는 농부의 숨은 농심이다. 콩 나무와 콩나물이 무엇이 다른가. 똑 같은 콩인데,,, 하나는 안방에서, 하나는 들판의 야생에서,,, 닭과 독수리는 무엇이 다른 가. 똑같은 날개를 가진 새인데, 하나는 울타리 속 땅바닥에 길들여져, 쉽고, 편하게 살려하고, 하나는 천 길 낭떠러지에 가시를 물어다가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아 하루에 수십 번씩 고공낙하 훈련을 시키며, 어렵고, 힘들게 사는 학습學習을 한다. 학습學習이라는 단어는 독수리 훈련법에서 나온 말이다. 나는 편리하고 안일한 일상을 거부한다. 시골 들판에서 태어나 야생에 길들여진, 콩 나무이거나, 독수리 새끼이기를 원한다. 그러기에 문학도로서 새로운 길을 가면서, 평생 학습學習의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다. 늘 곁에서 채찍질하며 가르쳐 주신 박 영남 교수님께 감사하며, 부족한 저에게 새 길을 열어주신 지저스 타임즈, JTN 방송 사장님 이하 담당자 여러분께도 충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그리고 언제나 곁에서 말없이 지켜봐주며, 마음속으로 응원해준 아내와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11, 6월 초여름 수락산에서




 신인당선 작품 (시 부문 대상)
 작가 유중희 목사-03.jpg

 작품: 나의 희망 나의 아들아. 1

 나의 희망, 나의 아들아!

 사랑은 아프다
 가슴은 저리고

  마주 바라보기엔
 눈이 시리다

  내 둥지에서 태어나
 멀리 떠나보내기엔
 뒤 돌아보며 뒤 돌아보며
 발길 떨어지지 않는다.

 남대천을 떠난
 연어 새끼처럼

 태평양을 한 바퀴 에돌아
 오년 만에 어미가 되어
 
모천에 돌아 올 때까지

 너로 인해 긴긴밤을 뒤척이며
 잠 못 이루는 나의 밤은
 온 몸이 저리고 아프다 

 내 사랑 내 아들
 나의 꿈아

 사랑은 아프고
 가슴은 저리고

   

가을 풍경

내일이 세상의 끝일지라도
오늘, 나는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는다

그렇게, 긴 긴 터널 같은
어둡고 아픈 날들이 지나간다
내 가슴팍에 나이테 하나 더 새겨놓고

초라한 한 개의 열매를 맺기까지
한 생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어머니의 아픈 자궁 속에선
죽음 같은 산통의 피가 흐르고

저 푸른 하늘 나는 고추잠자리 좀 보아
갈기갈기 온 몸 찢기는 허물 벗고
땅 밑에서 지상으로, 지상에서 하늘로
날개 펴고 높이 높이 날아오르기까지
몇 번을 죽었다 살아났을까
온몸을 몇 번이나 찢겼을까

울긋불긋 화사한 저 꽃 잎새 좀 보아
자태를 뽐내는 게 아니라
버리고 떠나갈 준비를 하는 거야

손 놓고 내려앉는 연습을 하는 거야
쓸쓸히 바람 한 자락 지나더니
우수수 꽃잎이 진다


 <당선 소감>

겨울은 견뎠고 봄은 기쁘다.
유 중희

 겨울은 견디었고 봄은 기쁘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기쁨도 슬픔도 아픈 상처까지도, 나를 할퀴고 지나간 그 겨울의 칼바람도, 내 가슴 짓이긴 억센 구두 발자국도, 다 지워져간다. 무덤처럼 덮어 누르던 그 무거운 얼음장의 무게를 이고, 죽은 듯이 웅크렸던 나의 겨울은, 가슴팍에 나이테 하나 더 새겨 놓고 갔다. 그때의 아픔과 상처가 아니었다면, 나는 푸석한 숯덩이에 불과했을 것이다.

 겨울 빈 들, 광야는 숯을 석탄으로, 석탄을 다이아몬드로, 만들어가는 대장간이다. 오늘은 새봄, 청 보리 밭 밟기 하는 날, 겨울은 견디었고 봄은 기쁘다. 알속의 세계에서 밖의 넓은 세계로 눈을 뜨게 하고 새로운 문학의 세계로 길을 열어주신 박영남 교수님과 지저스 타임즈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오며,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2011, 6월 초여름, 부평에서 



  

   < 심사평 >
 삶은 상처다. 상처는 살아있음의 특권이요, 감격이다. 죽은 자에게는 상처가 없다. 상처는 우리의 삶에서 두 가지 반응으로 나타난다. 한 가지는 파괴와 죽음으로, 또 하나는 엄청난 생명의 에너지로 극대화 된다.
 
 숯과 석탄과 다이아몬드는 똑같은 원소인, 탄소다. 그러나 왜 이들은 서로의 가치가 전혀 다른가? 똑 같은 원소가 열과 압력과 세월을 얼마나 견뎠느냐에 따라 보물이 될 수도 있고, 쓸모없는 숯덩이로 끝 날 수도 있다.

 이번에 신인으로 등단하는 유덕영 시인과 유중희 목사는 다양한 경륜과 풍파들이 자신을 뜨거운 불()과 압력과 세월 속에서 단련鍛鍊시켜 정금正金, 보물로 만들어온 삶이었다. 유덕영시인의 작품햇빛 환하여 내 죄가 빛나는 날, 아픔에 묻어 두었던 그대 몸이 가을 황국黃菊으로 흐드러질 때, 먼저 간이의 젖멍울 같은 사랑을 물고 태양을 바라본다.‘ 에서도 연상 할 수 있다.
 
그리고 유중희 시인의 작품, ’가을 풍경에서 도 그렇게, 긴 긴 터널 같은 어둡고 아픈 날들이 지나간다. 내 가슴팍에 나이테 하나 더 새겨놓고’‘저 푸른 하늘 나는 고추잠자리 좀 보아, 갈기갈기 온 몸 찢기는 허물 벗고, 땅 밑에서 지상으로, 지상에서 하늘로 날개 펴고 높이 높이 날아오르기까지, 몇 번을 죽었다 살아났을까. 온몸을 몇 번이나 찢겼을까

 이번에 신인 작품에 응모하여 시 부문에서 장원과 대상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하는 두 분은 문학적 소양뿐 아니라, 많은 인생의 경륜을 통해, 지성과 인성을 갖춘 분들로서 기대하는 바가 크다. 든든하고 가슴이 따뜻한 두 분의 시인으로서의 새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2011, 6월 복사골에서

南 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