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리고 노무현과 박근혜

정주체 목사01.jpg 말은 소통을 위한 최고의 수단이고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비용이 별로 들지 않으면서도 효과는 아주 크기 때문에 저비용 고효률의 가장 대표적인 아이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예수님은 말씀으로 세상에 오셨고, 성령님은 복된 말씀을 전파하심으로 세상을 구원하신다고 말씀한다. 이러니 말의 가치에 대해서 무슨 말을 덧붙이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미련함을 나타낼 뿐일 것이다.

말을 잘해야 한다. 잘한다함은 말을 많이 한다거나 달변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말, 사람들을 세우고, 선으로 향하도록 설득하고, 희망을 주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마음을 시원케 만들어주고, 삶을 풍성하게 하는 말을 잘하는 것이 말 잘하는 것이다. 세간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말 잘한다.”는 말이 있다. 약간은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말만 잘 한다는 뜻이 배여 있다. 잘 하는 말도 인격과 삶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잘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말을 생각하다보니 당장 두 사람의 이름이 떠오른다. 고인이 된 노무현 전대통령과 요즘 가장 주목 받는 정치인인 박근혜 씨이다. 두 사람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주 대조적인 인물들이다. 우선 말에서 아주 대조적이다. 노 전대통령은 아주 논리적이면서도 솔직하고, 치밀하면서도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말하는 사람으로, 그야말로 말의 대가이다.

박근혜 씨는 말이 적은 것이 특징인데, 그러면서도 한 마디 한 마디가 간결하면서도 무게가 있고, 단호하고, 촌철살인의 위력이 있다. 필자가 그의 연설은 직접 들어본 일은 없지만, TV 보도를 통해 접하는 그의 연설은 대화체와 같이 부드럽고 다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 전대통령은 말로 성공한 사람이다. 5공 청문회에서 보여준 그의 말솜씨는 단번에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청문회의 스타였었다. 그리고 대통령후보로서의 그의 연설도 일품이었다고 기억한다. 전달이 직접적이었다. 말을 가리는 어떤 연설조의 티도 전혀 없었다. 그의 연설은 청년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힘이 있었다. 당시 같은 후보였던 이회창 씨의 연설은 답답했고, 청년들의 호감을 얻으려고 약간은 꾸민 듯한 말투나 제스처와는 노 씨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고 난 후의 말은 계속 화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었다. 그가 어른은 진중(鎭重)해야 한다.”는 전통문화의 요구를 무시함으로 입은 화였다. 후보 때와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다르다. 대통령은 나라의 최고 어른이다. 그러므로 국민들은 대통령에게서 아버지 같은 점잖음과 무게를 기대한다. 하지만 노 대통령에게는 말의 무게가 없었다. 그의 입에서는 시중의 상말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그의 말에 정직하고 솔직함은 있었지만 무게가 없었으므로 야유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대통령에서는 점점 멀어져 갔다.

박근혜 씨는 노 전대통령과는 반대이다. 그는 여성정치인이면서 매우 진중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말투만으로도 보수주의자들의 호감을 크게 얻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인기는 내리막 없이 계속 돼 왔다. 현재로는 그와 대결할만한 인기를 가진 정치인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그는 말을 아낀다. 그러면서 현안문제들에 대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 사실 정치적 현안들에 대해 즉각즉각 대답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직감이 중요하지만 직감만으로는 매우 위험하다. 직감을 따라 말하다보면 실수하기가 십상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 이것이 그녀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정치인에게 지나친 진중함은,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정도를 벗어나 자신을 신비한 존재로 부각시키는 독재자의 모습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이 실제로 나타난 것이 일전에 있었던 한나라당 원내대표인 황우여 의원과의 비밀회동이다. 원내대표와의 만남이 왜 비밀이었어야 했는가? 왜 당대표대행을 겸임하고 있는 황 의원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기의 의사를 전달하는가? 당내에서 아무 직책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국민들의 인기만을 배경으로도 이런 식이라면 만약 그가 대통령이라도 된다면 과연 어떻게 할까?

박근혜 씨에게 붙어있는 부담스러운 비난은 독재자의 딸이라는 것이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산업화와 근대화를 가져온 훌륭한 지도자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긴 하지만, 한편 그는 역시 독재자였다는 - 부득이 했던 아니던 - 평가도 동시에 받고 있다. 그런데 그의 딸인 박 씨가 국민들과의 활달하고 솔직한 소통을 이루지 못하고, 구중심처에 거하는 공주처럼 돼버린다면?

그의 말에서, 그 말의 배경이 되고 있는 그녀의 성격과 처신에서 나는 가끔 독재자의 환영을 본다. 그러면서 왠지 모르게 그가 청와대로부터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국민들은 독재와 권위주의에 염증이 나 있다. 이런 염증은 노무현 전대통령이 남겨준 유산이다.

20110524
 코닷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