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5월 생명의 계절, 가정의 달을 생각하며

 
  초록빛 신록의
5월이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줄줄이 이어지는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인생은 만남으로 운명 지어진다. 사람이 이 세상에 제일 처음 나올 때, 만남이 부모 형제와의 만남이요, 자라나면서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스승과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성인이 되면 직장에서 동요나 상하 조직관계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결혼해서 평생 동반자로 함께 살아가야 할 부부의 만남이요, 다음이 자식과의 만남이다.

 문제는 누구와 어떤 관계로, 아름다운 사랑과 신뢰의 관계로 이어질 때, 그 사람은 평생을 행복하고 성공한 인생을 살게 되지만, 이 관계가 어긋나고 뒤틀리며 깨어질 때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된다. 우리가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 어렵고 두려운 것은 핵가족화 개별화 되어버린 현대 도시문명의 삶이다. 오늘날 우리들, 집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 지상에서의 집과 가정은 천국의 모형이 되어야 하는데, 주거 공간house만 있고, 가정home, 가족family도 없다. 얼마 전 김기덕 감독의 작품 영화로 베를린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빈집을 기억하게 된다.

  여름휴가철 도시는 텅텅 비고 아파트, 단독주택 모두 빈집 천지다. 집집마다 대문에 광고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는 청년 남자는 휴가 떠난 빈집만 골라, 비상열쇠를 따고 들어가 잠을 자고 나온다. 들어가는 집집마다 욕실에는 빨래 감이 쌓여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고 설거지통에 그릇들이, 거실, 안방은 청소도 안 되어 쓰레기장 같다. 청년은 들어가 밀린 빨래를 하여 햇볕에 널고 집안청소, 설거지를 해 주고 밥을 지어먹는다.

  벽에 고장 난 시계를 고치고, 고장 난 전자제품, 집기비품을 수리하여 원상회복 시켜준다. 어느 날 어떤 집에 들어갔다가 병들고 늙은 아버지 혼자 골방에 두고, 휴가 떠난 집에서 노인 혼자 피를 쏟고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수의를 사다 입혀 장례를 치러준다. 편리만 있고 행복이 없는 빈집, 창고만 있고 가정, 가족도 실종된, 주인 없는 무생명의 공간일 뿐, 병든 부모만 짐짝처럼 버려져 죽어 있고, 아들 부부와 손자새끼들은 놀러나간, 사랑도, 안식도, 희망도, 생명도 없는 빈집무덤일 뿐이다.

   유태인들이 2천년동안 나라도 없이, 온 세계에 디아스포라, 방랑자로 뿔뿔이 흩어져 살면서, 심지어 독일 히틀러에게 600만이나 학살당하면서도, 그 민족이 사라지지 아니하고, 지탱해 온 것은 철저히 가족과 가정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디에 살든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아버지가 제사장이 되고, 자녀들의 본이 되는 스승, -mentor 중심의 가정을 목숨처럼 지켜왔다. 유태인들은 가정을 작은 나라요, 민족이요, 천국의 모형이라고 믿고 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대리자요, 중개자인 제사장이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같은 족장이면서, 작은 나라의 왕이며, 하나님의 축복이 나에게 내려오는 '축복의 통로 pass way of God's bless' .

  오늘 이 시대, 가정의 붕괴는 사회, 국가와 민족의 붕괴로 이어진다. 가정은 생명과 사랑, 안식과 평화, 꿈과 비전의 보금자리 둥지다. 천재들이 가는 카이스트 대학의 학생 교수가 왜 자살들을 하는가. 경쟁과 지식은 앞서지만 안식과 평화가 없기 때문이다. 물질, 황금만능, 과학기술만능, 쾌락만능, 오늘 날, 인간의 손으로 건설한 과학기술문명은 인간의 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정신과 육체, 영혼까지를 송두리째 빼앗아 버렸다. 컴퓨터가, 로봇이, 기계가 사람보다 능률과 실용, 속도와 편리에서 앞선다.

  결국 인간의 머리와 손으로 쌓아 올린 과학문명의 탑은, 스스로 인간세계를 무너뜨리고 마는바벨의 문명’‘바알의 문화일 뿐이다. 5, 가정의 달을 맞으면서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다시 한 번 가정의 소중함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다.

박 영남 목사
< 부천 새아침 장로교회 담임
건국대학교 선교사 아카데미
주임교수, 신학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