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는 백년을 못 살아도 

안중근 의사 경천.jpg

김훈의 소설 <하얼빈>이 안중근 의사를 다시 대중들에게 오늘의 자리로 불러내었습니다. 나는 김훈의 책과 상관없이 안 의사가 남기신 유묵을 대하며 그 분이 감옥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드러낸 삶의 자세와 정신을 자주 생각해 오곤했습니다.

 

산마루 교회의 복도 벽에도 그의 유묵이 금빛 액자에 담겨 오랜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엔 일로 지치고 피폐해진 마음을 추스리느라 새벽기도와 아침식사 시간 사이 이따금씩 안 의사의 유묵과 구당 선생님께 받았던 채본을 보고 붓을 들었습니다.

 

붓을 들으면 글에서 나와 정신으로 옮겨감을 겪습니다. 하얼삔에서 안 의사를 그린 김훈의 이야기에서 작가의 그 깊고 날카로운 눈을 보았습니다. 안중근은 이순신과 달리 소망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에 총을 쏘고 안 의사는 절망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 이루어야 할 아시아 평화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분명 안 의사는 사형이 집행되는 순간에도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 함께하였습니다. 안 의사는 사형집행을 앞두고 교도소장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소회를 묻자 이렇게 유묵으로 답했습니다. 생무백세 사천추(生無百歲 死千秋) “살아서는 백년을 못 채워도 죽어 천년을 살리라.”

 

출처 / <산골짜기에서 以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