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야 나오라 하니 살아났더라

주사랑교회 장한국 목사(예장진리 총회장/CJN TV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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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다니 사람 나사로가 병들었으니 그는 마리아, 마르다의 오라비라 했습니다. 누이들이 주님께 사람을 보내어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라고 급히 알립니다. 주께서 사랑하는 자라 했고, 5절에서도 예수께서 나사로를 사랑하시니라. 또 강조합니다. 즉 주님이 끔찍이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신 것입니다.

 

이럴 때 주님은 보통 어떻게 하셨나요? 즉시 달려가시어 병을 고쳐 주셨지요. 또는 요4:50에서와 같이 찾아온 가버나움 신하에게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라고 말씀으로 치료하여 주셨을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시니 그 전능하신 능력은 공간, 장소를 초월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4절에 이 병은 하나님 영광을 위한 것이라.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일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시면서 계속 이틀을 더 유하셨습니다.

 

주님 말씀대로 요12:17에 그대로 나타났지요.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났을 때 함께 있던 무리들이 이를 증거하며 이 증거로 많은 무리가 예수를 믿고 종려 주일의 대환호의 역사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15스타디온 쯤 되니라. 무슨 뜻이지요? 나사로가 예루살렘이 가까우니 자주 드나들었다는 것이요. 이는 예루살렘의 유대교 지도자들인 율법주의자들을 자주 만나 그 교훈을 들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나사로는 예수 믿는 자요, 예수님이 사랑하는 자였지요.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이 불러내고 잘못된 율법 가르침으로 가르쳐 예수 믿음의 의를 버리고 율법의 행함의 의를 내세우게 한 것입니다. 그것이 병든 것이요, 결국 죽게 된 나사로입니다. 마치 니골라가 믿음에서 떠나 유대교로 다시 개종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19절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유족들에게 위로하러 왔더라.’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무엇을 위로할까요? 나사로는 율법을 잘 지켜 행함으로 의인됨과 구원 받았다고 헛소리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하십니다. “마지막 날에는 다시 오라비가 살겠지요.” 라며 믿지 않는 그녀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는냐?” 오늘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믿느냐?”고 질문 하십니다. 주님은 무덤에 가시어 돌을 치우라는 것입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니 죽었던 자가 무덤에서 나오더라. 주님이 나오라 말씀하심에 즉시 나옵니다. 그런데 죽었던 자가 수의로 손발이 동여지고 얼굴이 수건에 가려진 채 나옵니다. 무엇을 계시 하나요? 율법의 수의와 율법의 수건으로 인해 죽었다함을 계시한 것입니다. 주님이 풀어주어 다니게 하라.” 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결박과 가리움이 다 풀려지고 자유케 됩니다(고후3:14-18). 즉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의 열매 맺는 몸으로 다시 살아난 나사로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