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사용하고 있는 성경구절 이종남 목사
성경구절이 자기 마음에 든다고 해서 함부로 인용하는 것은 진정 부질없는 짓이다. 성경구절 앞뒤 전후문맥을 잘 살핀 뒤 인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정에 따라 좋다고 사용하게 된다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어떤 사람이 성경을 펴는 대로 하면 되는 줄 알고 편대로 하려고 폈는데 가롯 유다가 못 메어 자살하는 장면(마 27:5)이 나와 다시 한 번 펼치기로 했다. 눅 10:37이 눈에 들어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아니야! 삼세 번해야 돼! 한번만 더 찾았는데 요 13:27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는 말씀이 되어 까무러쳤다는 실화가 있다.
욥기 8장 7절은 성도들의 사업 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구절이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씀을 걸어놓고 장사나 사업이 잘 되기를 바라는 성공구절로 장식용을 걸어놓고 있다. 또한 개업한 성도들에게 선물로 드리기 위하여 액자를 즐겨 선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구절이 누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올바르게 파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목회자들도 자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도 아니요, 입술로 범죄 하기 전에 의인 욥의 말도 아닌 욥의 친구 수아 사람 빌닷의 말이다. 이런 말을 하게 된 빌닷을 비롯한 세 친구들은 욥이 당하는 고난의 이유가 욥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며 욥을 계속 비난하는 자리였다.
욥이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하면 할수록 계속 물고 늘어지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욥을 정죄하는 친구들이였다. 그 대화에 휘말려 입술로 범죄 하지 않았던 의인 욥도 하나님 앞에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는 장면이 몇 군데에서 볼 수 있다. 욥기의 주제는 ‘의인의 고난’이라고 치부하는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의 입장에서 전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은 항상 우리를 책임을 져 주시는 여호와를 경외하여함’을 강조하고 있다.
욥이 자신의 무죄함을 계속 주장하면 할수록 수아 사람 빌닷이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자네 입에서 나오는 말은 지나가는 바람과 같네. 하나님께서 옳은 것을 글렀다고 하시겠는가? 전능하신 분께서 바른 것을 틀렸다고 하시겠는가? ........ 자네가 만일 하나님께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기도하고 또한 진실하고 정직하다면 하나님은 너를 굽어 살피시고 자네가 살 수 있는 의로운 집으로 인도하시어 형통하게 하실 것일세.”(욥 8:2~6) 라고 했다.
그런 후에 빗대어 말하는 내용이 “처음에는 초라해 보이겠지만 나중에는 엄청나게 다를 것일세.”라는 말을 우리는 사업의 성공으로 장사의 밑천으로 착각하고 있는 구절로 둔갑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구절이 액자로 걸려 있다면 과감하게 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사다 준 목회자나 성도들의 성의 때문에 걸고 싶다면 말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 구절이 축복의 말이나 사업의 성공을 불러일으키는 구절만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한 말도 아니며 친구들에게 한 말도 아니며 오히려 욥의 친구가 욥을 조롱하며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말씀의 전후 문맥만 살펴보더라도 욥에 대해 불손한 동기와 목적으로 빈정거리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정황을 생략한 채 그 내용이 마음에 든다고 무조건 사용해서는 안 된다. 성도들을 향해 복을 빌어주고 싶다면 차라리 자신의 말로 복을 빌어 주거나 아니면 다른 성경구절로 축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잘못된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까지 성경의 권위를 이용하려는 잘못을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와 같이 성경구절을 잘못 선택함에 따라 무식이 탄로 나고 앞뒤 정황도 모르고 성경구절을 인용하므로 인해 생기는 무지함을 드러내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