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제단에 제물이 되었는가? (8)

자신을 온전히 화목제로 드려야 합니다.

편집인 정기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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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어서

레위기 3 : 1-17

두 번째 : 화목제 제물을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할렐루야!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도 자신이 제단에 제물이 되었는가?”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2-5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하였다.

 

화목제 제물이 될 정도로 신앙이 성숙한 자들이 하나님께 제물 드리는 방법을 몰라서 화목 제물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제물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방법 또한 중요하다. 번제, 소제, 화목제, 에서 거듭 강조되는 말씀 중에 하나가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수고하고도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지 못한다면 이는 헛수가 아닌가?

 

다시 말씀을 보면 화목제 드리는 방법을 7가지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1. 회막문에서 잡으라, 장소는 (곧 교회)

2. 피를 제단 사면에 뿌려라, 는 것은 충성심

3. 기름을 드려라는 것은 성령의 인도함” 4. 단에 불사르라는 것은 성령 충만함

5. 가슴은 요제로 드리라는 것은 화목” (7:30) 요제는 좌우로 흔드는 것이다.

   이렇게 드린 것은 제사장과 그 가족들 것으로 화목을 이루라는 말씀이다.

6. 우편 뒷다리를 거제로 드리라는 것은 제상 몫이다” (7:32) 거제는 상하로 흔드는 것이다.

   이렇게 드린 것은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 몫이라고 했다.

7. 제물 중 남은 부분을 잘 처리하라고 했다.

  (7:15-21) 드린 제물은 이제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이 시간 주신 말씀을 적용한다면 화목제는 이미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께 드린 제사를 말한다. 하지만 이 시대에 과연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이루고 살고 있는가? 사람들도 서로가 불편한 관계가 되면 대화가 끓기고 인상만 쓰게 되는데, 우리가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라면 하나님의 마음 어떠하실까요? 사람들이 교회 다니다가 왜 교회와 목사와 성도들끼리 불편한 관계가 될까요? 화목 제물 드리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지 않는가? 화목 제물을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이해를 돕는다면 자신이 어떻게 해야 제단에 온전한 화목 제물이 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1. 회막 문에서 잡아야 한다.

이는 교회 안에서 제물을 죽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단 앞에서 죽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우리 또한 내가 섬기는 제단에서 죽어야만 한다. 번제 제사가 내 자신을 위해서 죽는 제사였다면 화목제는 한 알의 밀알이 되기 위해서 내가 죽는 것이다. 이 나라가 화평한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면 성도들이 교회에서부터 죽어질 때 화목함이 나타날 것이다.

 

또한 가정이 화목해지기 원한다면 내 자신이 먼저 교회 제단 앞에서 죽어질 때 가정은 화목한 가정이 된다. 그 제물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으라고 하셨다. 내 자산의 죄를 온전히 고백하고 주님 앞에 죽으라는 말씀이다. 아무리 다른 데서 수백 번 죽어도 소용없다. 교회 제단 앞에서 내 자신이 죽어야 한다. 주님 앞에서 죽어질 때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임한다.

 

2.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리라

피는 생명을 뜻한다.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린다는 것은 죽도록 충성하겠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머리에 가시관 쓰고 양손과 양발에 못이 박히시고 옆구리에는 창이 배를 찔렀다. 머리서부터 발끝에서부터 예수님 몸속에 있는 피는 다 쏟으셨다. 하나님 제단 사면에 예수님 자신의 온몸에 피를 뿌리셨다. 완전한 충성의 모습이다.

 

진실한 신앙인이라면 이러한 충성이 있어야 한다. 내 몸의 피를 뿌리는 충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우리가 제단에 피를 뿌리는 충성은 못할지라도 그러한 모습이라도 하나님 앞에 보여드려야 한다. 교회 제단을 떠나서 하나님과 화목 되는 길이 있을까요? 예수를 떠나서 하나님과 화목 되는 길이 있을까요? 없다.

 

3. 기름을 드리라

제물 속에 덮인 기름만 골라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기름은 성령을 뜻하므로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만 화목 제물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육체의 소욕을 인도 받으면 제단에 제물이 될 수 없다.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셨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산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제단 앞에서 내가 죽고, 제단 사면에 피를 쏟는 충성을 보인다면 주의 성령은 우리를 온전히 인도하시는 것이다. 우리를 미혹하는 소리가 난무하는 마지막 때에 우리는 더욱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우리는 악령의 인도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단 위에 불사르라

제물의 기름을 번제단 불에 올려 태웠다. 모든 기름은 여호와 것이므로 반드시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렸다. 이렇게 화제로 드려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고 하셨다. 제물을 불로 태워야 화목 제물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성령의 불로 충만 받아야 만이 화목 제물이 될 수 있다. 세상 충만으로는 제단에 화목 제물이 될 수 없다. 육적인 생각으로 충만한 상태에서는 화목 제물이 될 수 없다.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는 기도도 중요하지만,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육체의 소욕을 받지 않으려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결국 성령 충만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따라 살아갈 때 성령 충만함 삶을 살아간다. 우리는 성령 충만으로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님 제단에 제물 만들기 위해서 성령의 불로 태우는 것이다. 아무리 성령이 충만하다 할지라도 제단에 제물이 되지 않는 성도라면 성령 충만한 삶이 아닌 것이다. 반드시 하나님의 제물을 불에 태워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로 드려야만 화목 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5. 가슴은 요제로 드리라

(7:29-31) 화목제는 하나님과도 화목한 관계를 뜻하지만 사람과 사람사이 화목도 뜻하고 있다. 그런데 요제로 드린 가슴 부위 갈비는 불에 태우지 않고 그슬려서 제사장과 그 자손들에게 돌리는 건데 이는 백성들과 제사장 간의 화목을 의미한다. 제사장은 오늘날 교회의 담임 목사이다. 우리가 화목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목사에게 가장 좋은 것을 드려질 때 화목 제물이 될 수 있다.

 

오해는 마세요 담임 목사에게 가장 좋은 것들을 드리라는 것은 목사가 원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분으로서 그만큼 목회자를 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화목의 의미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제물의 갈비는 맛있는 부의이다. 또 갈비는 짐승의 한 중간이다. 가장 좋은 것으로 주의 종을 섬길 때 성도는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고, 화목 제물이 된다.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었는데 가정이 화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었는데 사업이 화목하지 않을 수 없지요? 성도 개개인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었는데 교회가 화목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의 종들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어도 하늘에서 기억한다고 했는데 하물며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성도가 되는데 어찌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안 되겠는가? 할렐루야!

 

6. 우편 뒷다리는 거제로 드리라 (7:32)

거제(擧祭) 올릴 거자이다. 거제는 위, 아래로 들어 올리는 것을 말한다. 우편 뒷다리를 불 위에 올렸다 내렸다 상하로 움직이는 것인데 이것 역시 불에 태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거제만 드리고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의 몫으로 드리게 된다. 제사장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제사장이 집행한 화목 제사로 죄인과 하나님 사이에 화목케 하는 일을 하고 있다. 3:1절에 예수는 우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시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화목 제사를 치르시고 하나님과 죄인 된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셨다는 말씀이다.

 

오늘 신약시대의 제사장은 성도들을 인도하는 교회의 목사이다. 목사가 예배를 주관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 화목케 하는 중간 역할을 하고 있다. 화목 제물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은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에게는 제물 중 우편 뒷다리를 주라고 하셨다. 이것이 성도와 제사장 사이를 화목케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목사들이 예배 때 드린 제물 중 일부는 당연히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7:34)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를 취하여 제사장 아론과 그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영원한 소득이라고 하셨다. (25:4)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하셨다. 거듭 말해서 성도들이 목사에게 소득을 주지 못하고 있다면 가슴 아파해야 한다. 그것은 내가 곧 화목 제물이 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도가 목회자의 생활을 돕지 않는다면 성도가 기도가 막히고 병이 들고 답답해질 때 목회자는 하나님과 관계가 불편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목회자의 역할이다. 이점을 알아야 한다.

 

성도가 목사와 관계가 불편해 지면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래서 성도는 화목 제물이 되어서 목회자에게 제물의 일부를 드릴 때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회에서 성도들은 목사에게 몫을 작게 주려고 하는데, 또한 목사는 더 많이 받으려고 불편한 관계가 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 화목 제사가 되지 못한다. 화목이 깨어지면 교회는 싸움이 일어난다. 성도는 마땅히 제단에 제물이 되어야 하고 목사는 그 제물의 일부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