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슬쩍 빠져나가려는 장경동 목사
     한국에서 해명 모습은 뉴욕에서의 실제 모습과 딴판
 



▲ 장경동 목사는 뉴욕에서 열린 집회에서 거침없이 불교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불교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파장을 일으킨 장경동 목사가 9월 4일 오전 한 조찬모임에서 당시 발언에 대해서 해명했다. 장 목사는 사과나 반성의 말은 하지 않았고, "내가 사찰에 가서도 그런 얘기를 했겠나. 미국에서 집회를 인도했는데, 특정 구절만 소개되니 오해가 증폭된 것 같다. 한국에 돌아오니 내가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며 오히려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목사도 예수 믿어야 하고, 일반 사람도 예수 믿어야 하듯이, 스님도 믿어야 구원받지 않겠느냐"며 "자리에 따라 할 수 있는 말이 있다고 혼자 아쉬워서 그렇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 목사가 해명하는 내용을 들으면 마치 뉴욕에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말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집회 당시 장 목사는 기독교의 유일성, 우월성을 강조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불교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데까지 나갔다. 그는 약 10분 동안 불교에 대한 발언을 하면서, "스님이 하는 일은 앉아서 염불하는 것이다"며 "(염불을 해) 성불을 해도 시주 자루 들고 얻어먹고 산다. 불교가 아무리 훌륭해도 얻어먹고 산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는 해명 기회 때 종교의 화합을 강조했다. 전라도 팀과 경상도 팀 간에 싸우는 경기보다는 다른 나라와 싸우는 국제 경기를 자주 하는 것이 지역감정을 없애는 방법인 것처럼, 불교와 개신교도 화합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 목사가 뉴욕 집회나 방송 프로그램에서 불교를 조롱하는 태도를 여전히 갖고 있는 채로 화합의 장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는지 회의적이다. 장 목사가 정말로 화합할 마음이 있다면 화합의 대상을 조롱한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순서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장 목사는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로 파장이 일어났다는 식으로 말했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그는 "제가 방송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언론에 한 번이라도 언급됐던 사람들이라면 언론을 100% 믿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여의도통신>에 따르면 "언론이 사랑의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마음속에 칼이나 미움을 품고 있으면 안 된다. 언론이 튀려는 자세로 보도하면 문제가 커진다"고 했다.

 

장 목사는 과학적 근거는 별로 없으면서 뿌리만 깊은 가설에 의지해서 셈, 함, 야벳을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으로 구별했다. 미국 남부 지역에서 백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부릴 당시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흑인들을 저주 받은 노아의 자식 함으로, 백인인 자신들을 축복 받은 노아의 자식 야벳으로 설정했다. 그리하여 백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면서 고문하고 살육하고 강간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도록 기독교가 뒷받침해주었다. 그런 가설을 장 목사는 되풀이했다.

 

다음은 장경동 목사가 뉴욕에서 했던 발언과 한국에서 했던 해명 전문이다.

[뉴욕 발언]

내가 또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게요. 우리 아버지가 있죠. 그죠. 내가 있으면 우리 아버지가 있죠. 그죠. 아버지의 아버지가 있죠. 그죠. 우리 아버지, 아버지가 있죠. 이렇게 해서 계속 올라가면 어디까지 갈까. 예? 아담. 그 아담 위에는 누구여. 하나님. 이거를 나부터 첫 번째 사람이 아담이고 그 위에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거는요, 인간이 알 수 있는 지식이 아니더라고요. 저걸 누가 알겠어요. 저것을. 기독교가 아니면 저거 아무도 몰라요.

불교는요 몰라요. 가다 스님한테 물어보세요. 인류 첫 번째 사람이 누구요. 그걸 어떻게 압니까, 그러지. (교인들 웃음) 우리도 몰라야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근데 우리가 어떻게 알아. 하나님이 가르쳐 주니까. 그러니까 기독교가 참 좋은 종교요. 아우, 우월성이 그 우월성이 그냥 드러나 버리잖아.

 

하나님이 세상을 며칠을 걸쳐서 지었다고. 6일. 6일 동안에 세상을 지었어. 그래 가지고 사람은 며칠 만에 나왔어. 예? 6일 날 나왔어. 6일에 나온 사람이 5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아냔 말이야. 자기 없을 때 다 되어진 일인데. 그러니까 그건 아는 사람으로서, 누구밖에 몰라 그건. 하나님. 근데 아담이 그걸 어떻게 알아. 모세가 그걸 어떻게 알아. 하나님이 가르쳐주니까 알지. 간단하지.

 

뭔 말인지 몰라요? 여러분 이 세상을 보면요, 인종이 3인종이 있어요. 노란은 황인종, 까만 흑인종. 하얀 백인종. 왜 인종이 3인종이야. 그거 모른다니까. 세상 사람은 알 수가 없어. '야 그거 모르겠다', 노랗고 까맣고 하얗다. 왜 그래.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으로 인해 인종이 퍼졌기 때문에 셈의 인종이 황인종, 함의 인종이 흑인이고, 야벳의 인종이 백인이고, 그래서 3인종이 퍼진 거여.

 

간단해. 그걸 누가 아냔 말이여.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여. 왜, 노아의 세 아들이 글씨를 알았디야. 아, 생각을 해봐. 노아의 세 아들이 글씨를 알았냐고. 글씨 어디 있어. 근데 어떻게 알아. 하나님이 가르쳐주니까 알지. 그러니까 이런 걸 모르는 종교는 다 가짜여. 이런 걸 아는 종교가 진짜 종교여. 아멘?

 

아니 그냥 뭐 내가 무식하게 얘기해볼 게. 내가 좀 비범하다고 해서 경동교를 만들면 돼? 안 돼? 응? 내가 지금 경동교를 만들면 돼? 안 돼? 안 되지, 큰일 나지, 안 되는 거여. 그런데 에이, 내가 그래도 만들어버렸어. 안 된대도 만들었다니까, 그럼 경동교가 될까? 안 될까? 됩니다. 경동교를 만드는 게 안 된다는 것은 일반적인 이야기고, 그래도 만들면 왜 되냐. 이것 때문에 되는 거여. 어차피 아무것도 안 믿고 사는데 경동교라도 믿고 살지. 그래서 되는 거여. 그러니까 누구 때문에 되는 거여.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되는 거여.

 

두 번째 되는 이유가 뭐냐. 경동교를 만들면 경동교 때문에 먹고사는 사람이 있어서 되는 거여. 우리 교회에 65명의 유급 직원이 있다니까요. 근데 내가 선언을 한 거여. '야, 니들 몰랐지. 내가 교주다, 이놈아. 나를 믿으려면 이 교회에 있고, 안 믿을 거면 나가.' 그러면 갈등을 느낄 거 아녀. 진짜는 지가 무슨 교주여, 나가고 에라, 나가면 먹고 살 것도 없고 그냥 교주라고 해주지 뭐. 그냥 월급 타고. 보세요. 그래서 되는 거야.

 

죄송해요. 이렇게 말하면 사실은 죄송한 게 아니라 맞는 말인데, 그 쪽에다 예를 갖추니라고 내가 죄송하다 하는 거여. 내가 지금 경동교를 만들면 안 되듯, 2500년 전에 석가모니 선생도 불교를 만들면 안 되는 것이었어. 이해가 됩니까? 그럼. 내가 지금 경동교를 만들면 안 되듯, 2500년 전에 석가모니도 불교를 만들면 안 돼. 원불교를 만들면 안 되고, 통일교를 만들면 안 되고, 그래서 아브라함은 훌륭해도 아브라함교를 안 만들잖아, 모세는 훌륭해도 모세교를 안 만들어, 엘리야가 훌륭해도 엘리야교를 안 만들어. 왜. 인간은 교를 만들면 안 돼. 오직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주이고 구주이기 때문에, 아멘. 응. 아니, 이거 ABC 아니야, 이거 상식이잖아. 상식. 내가 얘기하잖아, 상식보다 더 좋은 지식이 없다고. 상식도 안 되니까 이거 무식이 충만해가지고.

 

아니, 내 말이 틀리면 얘기해봐, 내 말이 틀리면.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간단한 얘기를 목사님들은 여러분들은 왜 모르는지 나는 그것이 더 궁금해. 이해가 안 돼. 아니 지금 얘기 들어보니까 간단하죠. 응. 간단하잖아. 간단해. 그래서 하나님이 가르쳐준 지식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거여. 하나님이 가르쳐준 지식을 아는 교만이 참된 종교다. 아멘? 나머지는 솔직하게 명함 접어야 돼. 그래서 나는 스님들은 빨리 예수를 믿어야 돼. 빨리 회개하고. 쓸데없는 것 하지 말고.

 

조금 더 자세하게 얘기해 줘 봐요? 응? 응. 잘 보세요. 원래 불교라는 게 신이 없어요. 무신론입니다. 불교는 무신론이여, 신이 없다, 누굴 믿는 게 아니여. 석가모니를 믿는다. 그것도 무식이 충만한 소리여. 석가모니가 나를 믿어라 그런 얘기 한 적이 없어요, 그냥 깨달아서 너도 성불해라, 부처가 돼라, 깨달음을 얻어라, 그거지. 부처를 믿어라, 아 그거 자기들이 만들어놓고 믿는 거지, 신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되는 거여. 불교는. 그냥 자기 스스로가 성불하는 거여. 자기가 부처가 되는 거야. 그래서 처처 부처야.

 

아이고 주여, 이거 내가 너무 여러분을 너무 수준을 높게 생각한 것 같아. 근데 내가 들여다보니까 이런 좀 부족한 면이 나와서 그래요. 스님은 하는 일이 뭐냐면, 앉아서 염불하는 거거든요. 염불의 참된 의미가 뭐냐면 인간이 모든 고뇌와 고통을 겪는 게 욕심 때문인데, 그 욕심 때문에 108 번뇌가 생긴 거여. 그래가지고 욕심을 없애므로 108 번뇌에서 자유로워질 때 그게 인제 성불하는 거거든. 그러니까 108 번뇌를 없애자고 오늘도 앉아서 ‘마하바야반야밀심경.’ 똑똑똑. 이제 그 염불을 하면서 108 번뇌를 없애겠다고 하는데, 어우 안타까운 게 108 번뇌를 없애겠다고 하는 것도 109번째 번뇌여. 이게 안 되는 거여. 안 돼.

 

두 번째, 좋아. 108 번뇌를 없앴어. 그래서 인제 어떤 해탈을 했어, 성불을 했어. 그래. 그래봤자 뭐여, 시주 얻어먹고 살아야 돼. 잘 생각해 보세요. 앉아서 108 번뇌를 없앴어. 없앴는데 이제 어떻게 먹고 사는 거야. 겨우 얻어먹고 사는 거야. 시주 자루 들고. 그러니까 불교는 아무리 훌륭해야 얻어먹고 살아. 그러나 성경은 간단해.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마라. 그러니까 벌써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가르침으로 나가는 기독교는요 가는 데마다 잘 되는 거여. 그런데 완전 108 번뇌를 없애는 나라는 가는 데마다 안 되는 거여. 그러니까 불교가 들어간 나라는 다 못 살아.

 

인도는 내가, 또 무식한 소리, 한국 사람이 한국 종교를 믿어야지, 서양 종교를 믿으면 되나. 한국 종교가 뭔데요, 불교지. 야, 석가가 한국 사람이냐. 정말 이렇게 무식하냐, 정말. 석가는 인도 사람이여. 인도에 가면요, 60%가 길에서 태어나고, 60%가 길에서 살다, 60%가 길에서 죽어여. 지독하게 못 살아여. 지금도 그 사람들은 소를 섬기고 그래. 그게 뭐하는 짓이여. 그놈 잡아서 확 고아 먹으면 영양실조도 안 걸리고 좋을 텐데. 그니까 무지한 그런. 근데 내가 안타까운 게 뭐냐면요, 인도를 가만히 보니까 조금만 훌륭하면 다 앉아 있더만. 조금만 훌륭하다고 하면 그냥 앉아 있어. 그 사람이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해야 나라가 잘 될 거 아니여.

 

아이, 이거 뭔 말인지를 알아들어야지. 알아듣고 있는 거여? 응응. 아니 뭐 일을 해서 연구를 하고, 개발을 하고 자꾸 그래야지 나라가 안정이 되지. 훌륭하면 다 앉아 있어. 머리 기르고 그냥. 그 자체로는 보면 훌륭한 것 같은데, 그렇게 해서 그 다음에 어떻게 하자는 거야. 무슨 노동력이 있고, 무슨 발전이 있고, 무슨 생산력이 있고, 그래서 안타까운 거여. 성경은 간단하다니까,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마라. 가르침 자체가 잘 될 수밖에 없고, 가르침 자체가 잘 안 될 수밖에 없어. 이렇게 말하면 내가 불교를 깐 거여? 왜 자꾸 나보고 깟다고 그러는지, 왜 까. 그냥 내가 바른 말을 해준 거지. 까기는 뭐 지네가 (잘 안들림), 까게.

 

[한국 발언]

▲ 장경동 목사는 사과의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 한 이야기'라며, 보도를 한 언론을 문제 삼는 태도를 보였다. 사진은 조계종에 걸려 있는 장경동 목사의 사진과 그의 불교 비하 발언을 보도한 기사를 보고 있는 한 시민. 그의 눈이 훼손되어 있다. (사진 제공 오마이뉴스)

 

제가 미국에 교회 부흥회를 갔어요. 가서 구원의 길이 다양하면 좋은데, 성경은 예수님의 독선이라면 독선인데,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그래서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냥 그건 성경에 있는 얘기입니다. 그 말끝에 목사도 예수 믿어야 되고, 일반 사람도 예수 믿어야 되듯이 스님도 믿어야 구원받지 않겠냐. 성경에 말하면 그 말은 맞는데, 그거를 또 타종교 입장에서 보면 뭐 좀 이상하죠. 그런데 교인끼리 있으면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거를 인터넷에 띄어가지고 스님도 예수 믿어야 된다 하니까 갔다 와 보니까 내가 무지하게 유명해졌더라고요.

 

사실은, 제가 절에 가서 그렇게 얘기한다면 굉장히 결롄데, 교인끼리 할 수 있는 말을 일반인하고 같이 하면 그러면 성경 얘기 못하죠. 그러면. 일반적으로 끼리끼리 할 수 있는 얘기가 있고, 내가 지금 여러분한테 예수 믿으라고 한마디도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이건 공적인 자리니까. 교회에서도 예수 믿으라고 한마디 안 하면 교회 존재 의미가 뭐에요. 자리에 따라서 할 수 있는 말을 자리와 상관없이 얘기하면 문제가 되지 않냐라고 저는 그냥 혼자 아쉬워서 그렇게 생각을 해봤어요.

 

우리나라에 장점이자 약점인 게 지역감정을 건드리는 스포츠가 아주 발달해 있어요. 호남하고 영남하고 그 경쟁심 때문에 스포츠가 발달한 건 좋은데, 지역감정이 골이 깊어졌어요. 그걸 없앨 수 있는 좋은 방법은 국제 경기를 자꾸 하는 겁니다. 국제 경기를 하면 지금 영남호남 따질 새가 없어요.

 

잘 하는 놈 뽑아서 이겨야 돼요. 마찬가지에요. 기독교하고 불교는 출발이 다르기 때문에 같을 수가 없어요. 그러나 화합할 수 있는 장을 만들면 됩니다. 화합할 수 있는 장. 그러니까 교회하고 절하고는 합할 수가 없어요. 교회와 절과 상관없이 화합할 수 있는 장 그러면 그거는 지금 따질 새가 아니니까 운동으로 말하자면 지방 경기를 하지 말고, 국제 경기를 하면 화합되듯, 종교 간에도 종교를 초월할 수 있는 그런 마당을 만들면 그거는 화합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경기를 자꾸 하면 이거는 어쩔 수 없잖아요. 예를 들어 해태와 롯데가 붙으면 해태는 해태 응원할 것이고, 롯데는 롯데 응원할 것이고, 너무 근시안적으로만 보다 보니까 그런 것 아닌가.

 

이걸 좀 넓히면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절에서도 사실 강의해 달라고 요청이 와요. 절에서도. 그래서 내가 가면 굉장히 아마 재미있게 할 거에요. 그런데 나는 자꾸 교인끼리 한 얘기를 자꾸 전체적으로 한 얘기인 양 하시면 그게 좀 합할 수 있는 장이 있고, 합할 수 없는 장이 있듯이 합할 수 있는 장을 만들면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

 

뉴스앤조이  이승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