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회개의 결과

작성자ː정기남 목사

지난번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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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15에 보면 [야곱이 입은 좋은 의복이 나온다.

여기서 야곱이 입은 좋은 의복은 장자의 옷이다. 야곱이 입은 좋은 의복은 에서의 좋은 의복이다. 그러나 야곱에게 그 옷을 입힌다. 그 의복은 바로 장자의 옷이다. 그런데 여기 좋은 의복은 별미와 관계된 옷이다. 그리고 이 말은 곧 예수님과 관계된다는 뜻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과 관계된 의복을 입고 들어가니 축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이삭이 그 의복을 만져보고, 축복하는 것이다. 그 옷을 입고 들어가는 자들에게 천국 문을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두 증인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놀라고 신기한 것은, 25:20을 보면 이삭이 사십 세에 시리아인 라반의 누이, 즉 팟단아람의 시리아인 브두엘의 딸 리브카를 아내로 얻으니라, 고 했다. 사십 세에 장가를 가서 20년만인 육십 세에 가서 아들을 낳았는데, 쌍둥이를 낳았다. 에서와 야곱을 낳은 것이다. 본래 리브가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자였다. 그는 石女였다. 결혼한 지 20년 만에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다시 말하면 육적인 이스라엘의 역사는 4000년 만에 예수님이 이 땅에 탄생하셨다.

 

구약역사 4000년 만에 예수님이 오신 후, 지금까지 신약 2019년의 역사가 흘렀다. 이처럼 이삭이 육십 세에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는 것은 6000년의 역사를 가리키며, 이를 예언자나 학자들은 6000년 만에 종말을 보고 있고 이 종말 때에 어떠한 아들을 낳았느냐 하면. 에서와 야곱과 같은 아들이 등장한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역사는 4000년 만에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그리고 2000년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6000년으로 인류 역사를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십 수인 4000년의 년 수에 가서 잘도 속았다. 종말론을 하신 분들이 여기 사십 수에 가서 속은 것이다. 지나간 얘기이지만, 종말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1988년도 서울 올림픽을 유치한 그해에 많이 사람들이 속았다. 그 당시에 88년을 인류 종말로 보고 외쳤고, 그래서 몸부림을 친 사람들이 많았다. 이스라엘에서도 그렇게 보았던 사람들이 많았다.


잘못된 회개란?

아간은 금을 도적질 한 것이다. []은 믿음을 말한다. 금보다 더 귀한 믿음,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은 환난과 핍박을 불같은 시련을 이기 자가 가진 것이 바로 금 같은 믿음이다. 주여! 나에게 금 같은 믿음을 주시옵소서, 환난을 통과했느냐? 어떠한 수고를 했느냐? 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가만히 앉아있는 자들은 죽었다가 깨어날지라도 얻지 못한다. 여러분이 금과 같은 믿음을 갖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용광로 속에 한번쯤은 들어가야 한다. 금이 돌덩어리 속에 섞여 있을 때는 용광로 속에 몇 번이고 들어 갖다가 녹여진 것이 순금이 된다. 참된 성도가 되는 길은 용광로와 같은 불 속에서 단련되어야 한다. 환난의 불 속에 들어가서 순금으로 변화가 되어야 한다. 환난의 불도가니 속에서 온전한 신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환난을 싫어하고, 쉽게만 예수를 따라가려는 자는 어렵다. 불 속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얼마 견디지 못하고 튀쳐나올 수밖에 없다. 나약한 신앙을 가지고는 환난을 통과하지 못한다. 금은 믿음을 말하는 것인데, 나 자신이 금이 되어야 한다. 남의 금이 아무리 좋은들 그림의 떡이다. 남의 금이 좋다고 해서 훔쳐온다고 해도 그것은 내 것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내게 순금을 요구하신다. 내 믿음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가지를 알아야 한다.

 

7:1=아칸이 저주받은 물건을 취하고 범죄한 것이다. 여기서 아칸이 회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입을 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7:18에서 제비를 뽑으니 아칸이 뽑혔다고 했다. 그런데 16절부터 보면 유다 지파가 뽑힌다. 그러나 유다 지파는 가만히 있는 것이다. 이들은 회개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다시 제비를 뽑는데 이제는 사라인의 족속을 뽑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회개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 그래서 또다시 제비를 뽑았는데, 이제는 삽디다가 뽑혔다. 그러나 역시 삽디다도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또다시 제비를 뽑았는데 이제는 칼미의 아들인 아칸이 뽑혔다고 했다. 네 번째 제비를 뽑았을 때, 아칸이 뽑힌 것이다. 그러나 아칸은 이미 때가 늦은 회개가 되고 만다. 7:20에서아칸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참으로 내가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께 죄를 지어 내가 이렇게 행하였나이다.”하고 회개한다. 여기서 아칸의 회개는 이유를 대는 회개였다. 가증된 회개였다. 아칸 자신이 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죄를 짓지 아니한 것처럼 입다 물고 있다가 네 번째 만에 아칸 자신이 뽑히었고, 그러나 회개를 하는데 가증된 회개를 한 것이다.

 

벧후 3:9=‘주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것이다. 언제이든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고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유다 지파를 뽑아본다. 사라인의 지파를 뽑아본다.


이제는 삽디다를 뽑아본다. 그러나 아무말없이 침묵만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참으시고 기다리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아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노아 때의 심판도 마찮가지이다. 성경에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살았다. 최고의 장수였다. 장수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뜻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으니 쳐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969년을 기다리신 것이다. 그래도 회개치 않자 쳐버리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신다. 그래도 돌아오지 않으니, 불로 치신다. 마지막 때에는 불로 멸망한다. 결국 아칸은 아골골짜기 즉(슬픔의 골짜기) 괴로움의 골짜기라는 뜻이다. 영원히 괴롬과 고통을 당한다는 뜻이다. 아칸의 회개는 잘못된 회개이다.

 

사울의 회개도 잘못된 회개이다. (삼상 15:24~29)

사울은 인본주의의 대표자이다. 사람의 눈치를 보는 잘못된 회개이다. 오늘 이 시대로 말하면 라오디케아 교회의 대표자이다. 삼상 15:24=? ‘이는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복종하였음이니이다.’고 했다. 한 나라의 임금이 백성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임금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겠는데, 임금이 백성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예수가 없는 세계에서 하는 기도인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에서도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 사울은 백성을 두려워했다는데 문제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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