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회개의 결과

작성자ː정기남 목사

지난번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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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회개란?

아간은 금을 도적질 한 것이다. []은 믿음을 말한다. 금보다 더 귀한 믿음,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은 환난과 핍박을 불같은 시련을 이기 자가 가진 것이 바로 금 같은 믿음이다. 주여! 나에게 금 같은 믿음을 주시옵소서, 환난을 통과했느냐? 어떠한 수고를 했느냐? 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가만히 앉아있는 자들은 죽었다가 깨어날지라도 얻지 못한다. 여러분이 금과 같은 믿음을 갖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용광로 속에 한번쯤은 들어가야 한다. 금이 돌덩어리 속에 섞여 있을 때는 용광로 속에 몇 번이고 들어 갖다가 녹여진 것이 순금이 된다. 참된 성도가 되는 길은 용광로와 같은 불 속에서 단련되어야 한다. 환난의 불 속에 들어가서 순금으로 변화가 되어야 한다. 환난의 불도가니 속에서 온전한 신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환난을 싫어하고, 쉽게만 예수를 따라가려는 자는 어렵다. 불 속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얼마 견디지 못하고 튀쳐나올 수밖에 없다. 나약한 신앙을 가지고는 환난을 통과하지 못한다. 금은 믿음을 말하는 것인데, 나 자신이 금이 되어야 한다. 남의 금이 아무리 좋은들 그림의 떡이다. 남의 금이 좋다고 해서 훔쳐온다고 해도 그것은 내 것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내게 순금을 요구하신다. 내 믿음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가지를 알아야 한다.

 

7:1=아칸이 저주받은 물건을 취하고 범죄한 것이다. 여기서 아칸이 회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입을 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7:18에서 제비를 뽑으니 아칸이 뽑혔다고 했다. 그런데 16절부터 보면 유다 지파가 뽑힌다. 그러나 유다 지파는 가만히 있는 것이다. 이들은 회개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다시 제비를 뽑는데 이제는 사라인의 족속을 뽑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회개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 그래서 또다시 제비를 뽑았는데, 이제는 삽디다가 뽑혔다. 그러나 역시 삽디다도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또다시 제비를 뽑았는데 이제는 칼미의 아들인 아칸이 뽑혔다고 했다. 네 번째 제비를 뽑았을 때, 아칸이 뽑힌 것이다. 그러나 아칸은 이미 때가 늦은 회개가 되고 만다. 7:20에서아칸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참으로 내가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께 죄를 지어 내가 이렇게 행하였나이다.”하고 회개한다. 여기서 아칸의 회개는 이유를 대는 회개였다. 가증된 회개였다. 아칸 자신이 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죄를 짓지 아니한 것처럼 입다 물고 있다가 네 번째 만에 아칸 자신이 뽑히었고, 그러나 회개를 하는데 가증된 회개를 한 것이다.

 

벧후 3:9=‘주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것이다. 언제이든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고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유다 지파를 뽑아본다. 사라인의 지파를 뽑아본다.


이제는 삽디다를 뽑아본다. 그러나 아무말없이 침묵만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참으시고 기다리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아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노아 때의 심판도 마찮가지이다. 성경에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살았다. 최고의 장수였다. 장수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뜻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으니 쳐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969년을 기다리신 것이다. 그래도 회개치 않자 쳐버리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신다. 그래도 돌아오지 않으니, 불로 치신다. 마지막 때에는 불로 멸망한다. 결국 아칸은 아골골짜기 즉(슬픔의 골짜기) 괴로움의 골짜기라는 뜻이다. 영원히 괴롬과 고통을 당한다는 뜻이다. 아칸의 회개는 잘못된 회개이다.

 

사울의 회개도 잘못된 회개이다. (삼상 15:24~29)

사울은 인본주의의 대표자이다. 사람의 눈치를 보는 잘못된 회개이다. 오늘 이 시대로 말하면 라오디케아 교회의 대표자이다. 삼상 15:24=? ‘이는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복종하였음이니이다.’고 했다. 한 나라의 임금이 백성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임금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겠는데, 임금이 백성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예수가 없는 세계에서 하는 기도인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에서도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 사울은 백성을 두려워했다는데 문제었던 것이다.

 

삼상 15:35에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고 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사울을 세워 놓았더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백성들을 두려워했다고 했다. 오늘 우리 교회는 특히 주의 종은 오직 하나님께만 관심을 끌어야 한다. 1:10,‘내가 이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랴? 아니면 하나님께 사랴? 아니면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하겠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도 사랑하고, 성도들도 사랑해야 하겠지만, 주의 종이 성도들에게 너무 치우치게 되면 하나님의 일에 지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울 왕은 다윗을 괴롭힐 때에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다윗을 또 괴롭힌다. 한번 미혹의 영에 사로잡혀 놓으면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 사울 왕이 다윗을 그토록 괴롭히고 죄를 반복해서 저질러 대니, 사울은 비참한 최후를 맞아 그 인생이 끝이 난다. 바울은 딤후 4:1~2.‘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마지막 때에 어떤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그들 자신의 양심이 화인으로 마비되어, 위선으로 거짓을 말하리라. 고 했다.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에 빠져들면 좀처럼 고치기가 힘이 들고, 급기야는 최후를 비참하게 마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복적인 죄를 범하면 안 됩니다. 죄를 범하는데 있어서 한번 두 번 세 번 반복하다 보면 그의 인생은 끝이다. 세 번 계속해서 같은 죄를 알면서도 범하게 되면, 그 인생은 끝장이다. 사울왕은 지금 말씀드린 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비참하게 죽은 것이다.

 

옷만 찢는 회개가 잘못된 회개이다. (요엘 2:12~14)

옷만 찢는 회개가 있다. 지금도 이스라엘 서쪽에 통곡의 벽 앞에는 옷을 사서 찢는다고 했다.주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이제라도 너희는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며 내게로 돌이키라. 너희 옷을 찢지 말고 너희 마음을 찢으며, 주 너희 하나님께로 돌이키라. 이는 그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매우 인자하시며, 돌이키시어 재앙을 주시지 아니하심이라. 그가 돌아오셔서 마음을 돌리시며 그의 뒤에 복을 남겨 두시어, 주 너희 하나님께 음식 제사와 술 붓는 제사를 드리게 하실지 누가 알겠느냐?했다. 자신의 옷을 찢는 것이 아니라. 남의 옷을 사서 찢는다고 하니 참으로 가증한 회개가 아닐 수 없다.

 

바리새인들의 회개가 있다. (18:9~14).

바리새인들의 회개역시 잘못된 회개이다. 이들의 회개는 율법적인 회개였다. 이들의 회개는 눅 18:11그 바리새인은 서서 혼자 이렇게 기도하더라.“하나님이여”,나는 다른 사람들, 즉 착취하고, 불의하며, 간음하는 사람들과 같지 아니하고, 또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남을 비교하고, 비판하고, 증오하면서 감사하는 것은 잘못된 회개이다. 이는 오직 자기 기도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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