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회개의 결과 (2)

작성자ː정기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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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간 이어서

아간의 회개는 잘못되었다. (7:20~21)

성경에 여리코 성읍이 무너지는 것은 이 세상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그림자이다. 이 세상인 바빌론이 무너지는 모습이다. 여리코 성읍이 6일 동안 매일 새벽마다 한바퀴씩 그 여리코 성벽을 돌았다. 그리고 일곱 째날 새벽에는 일곱 바퀴를 돌면서 제사장들이 일제히 나팔을 불었다. 그리고 일체히 함성을 질렀다. 그때 여리코 성읍은 힘없이 그 강한 성이 무너졌다. 그 성읍 백성들은 다 멸망 당하고 만다. 여기서 6일째 여리코 성읍을 돌았다는 것은? 6천년의 역사를 말한다. 또한 6자를 풀어보면 다 망할 숫자이다. 6자로는 성공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아간이 훔친 물건이 세가지가 있다. 훔친 것 세가지의 의미는 무엇을 우리에게 말해주느냐?

 

아름다운 바빌론제 옷 한 벌이다.

이 옷은 외투를 가리킨다. 또한 세마포를 뜻한다. 이것은 또한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말해준다. 19:8=‘정결하고 흰 세마포를 입게 하셨으니, 세마포는 성도들의 의라.’고 했다. 그러므로 나나 여러분이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는데, 의로운 사람은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다. 남의 것을 훔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 옳은 행실을 갖는 하나님의 사람을 원하신다. 그런데 남의 외투인 남의 의로운 행실을 훔쳐서 어떻게 하겠다는건가? 그래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다. 아간은 남의 외투 한 벌을 훔쳐 와서 아무리 멋을 부리고, 그 외투를 입고 나올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바라보시지 않으신다. 오직 하나님은 자신의 행실로 나오시기를 원하신다.

 

아간이 훔친 물건 중 두 번째는 []이다.

=>[구원을 말한다.] 이는 순결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이 바로 구원을 가리킨다. 그러나 남의 것을 훔친 것으로는 자신의 구원의 증표가 될 수 없다. 순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내 몸에 아무리 금으로 된 십자가 뺏지를 달고 다닌다 해도 다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성경 찬송을 옆구리에 끼고 다닌다고 해서 다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또한 구원의 표인 은은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소용이 없다. 은은 망할 자들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훔친 것으로는 안되는 것이다.


1) 옷 준비하라.

아주 시원한 좋은 옷을 준비해야 한다. 여름에 입는 옷은 가능한 모시나 삼베 옷을 입어야 한다. 그래야 서늘하고 위생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깊은 뜻을 말해주고 있다. 베옷은 여름에 입는 옷이다. 그런데 굵은 베옷이다. 굵은 베옷은 종말 때 입는 옷을 가리킨다.

 

11:3=/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러면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하리라. 고 했다. 그 예언은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두 증인의 옷 베옷을 준비해야 한다. 이는 참으로 좋은 옷이다.


3:6=/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이르자, 왕이 그의 보좌에서 일어나 그의 왕복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았더라. 여기서 왕이 왕복을 벗었다고 했다. 왕이 일어나 왕복을 벗었다는 것은 은혜 시대에 받은 옷을 벗었다. 그리고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었다. 굵은 베옷을 갈아입었다는 것은 마지막 환난을 통과 할 수 있는 옷을 갈아입었다는 말씀이다. 은혜의 옷이 아닌 환난을 준비한 굵은 베옷을 갈아입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37:34=/야곱이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그의 허리에 두르고, 자기 아들을 위하여 여러 날을 애도하더라. 고 했다. 이것은 바로 요셉이 죽었을 때 베옷을 허리에 두른 것이다. 야곱은 옷을 준비해 놓았다가 그렇게 슬피 울었다. 그런데 요셉은 후에 너무도 잘 되었다. 영원히 보지 못할 아들을 본 것이다. 마지막 최후에 행복을 누리게 된다. 나와 여러분이 성경을 자세히 풀어보면 저 이집트의 파라오 왕도 한 표상으로, 한 각을 떠보면 파라오도 하나님의 모형으로 나올 때도 있다. 그러니까 요셉 당시의 파라오는 하나님의 표상으로 볼 수 있다. 파라오가 야곱에게 하는 말이, 그대는 어떻게 이처럼 아들을 잘 두셨는가? 한다. 이러한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영적으로 풀어보면 놀랍다. 반드시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파라오 왕이 요셉에게 인장 가락지를 끼워주고, 세마포 옷을 입혀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의 복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임금이 내리신 축복은 영적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후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등장한다. 이것은 바로 원위치로 돌아온 것이다. 거듭 말하면 요셉 당시에 파라오는 하나님으로 등장할 때가 있고, 메시야로도 볼 수 있고, 임금으로도 상징된다. 그러니까 파라오가 요셉에게 인장 가락지를 손가락에 끼워주고, 세마포 옷을 주었다. 그리고 수레도 준다. 모든 권한을 요셉에게 다 일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임금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다윗 왕도 마찬가지이다. 다윗왕도 아주 좋다. 메시야의 표상도 될 수 있고, 예수의 표상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다윗왕이 팟세파의 아내와 같이 간통하는 장면은 아주 나쁘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을 다른 한면으로 영적으로 보면 아주 좋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을 우리는 여러 각도에서 불 수 있다. 이처럼 성경은 여러 각도에서 풀어지고 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볼 때, 어떻게 간통을 저지른 7계명을 저지른 다윗에게서 솔로몬이 나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토록 잘못된 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 자손 가운데 솔로몬이 나오고, 그리고 그 맥으로 예수님이 오셨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다. 그래서 성경은 육적인 것보다는 영적으로 바로 풀고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할렐루야!

 

  ⑷ 35:13에 보면 [다윗의 옷이 굵은 베옷]이었다. 그가 기도할 때에 굵은 베옷을 입었다. 다윗은 이렇게 준비가 되어있고, 법을 아는 자이다. 다윗은 메시야의 표상도 되지만, 예수님의 표상도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⑸ 3:21에서 누가 등장하는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이 세사람이 나오는데 이들이 옷을 입었다.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들을 입은 채로 묶여서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 가운데에 던져졌더라. 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머리털 하나도 그을리지도 않고, 옷을 입은 채 그대로 살아서 서 있더라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도 옷을 입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 말씀은 우리를 바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 비밀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들이 입은 옷은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들이었다. 이 옷들을 입고 용광로 속에 들어간 것이다. 할렐루야! 

다음주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