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준비할 것은 무엇인가?

작성자ː정기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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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간 이어서

1) 옷 준비하라.

아주 시원한 좋은 옷을 준비해야 한다. 여름에 입는 옷은 가능한 모시나 삼베 옷을 입어야 한다. 그래야 서늘하고 위생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깊은 뜻을 말해주고 있다. 베옷은 여름에 입는 옷이다. 그런데 굵은 베옷이다. 굵은 베옷은 종말 때 입는 옷을 가리킨다.

 

11:3=/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러면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하리라. 고 했다. 그 예언은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두 증인의 옷 베옷을 준비해야 한다. 이는 참으로 좋은 옷이다.


3:6=/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이르자, 왕이 그의 보좌에서 일어나 그의 왕복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았더라. 여기서 왕이 왕복을 벗었다고 했다. 왕이 일어나 왕복을 벗었다는 것은 은혜 시대에 받은 옷을 벗었다. 그리고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었다. 굵은 베옷을 갈아입었다는 것은 마지막 환난을 통과 할 수 있는 옷을 갈아입었다는 말씀이다. 은혜의 옷이 아닌 환난을 준비한 굵은 베옷을 갈아입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37:34=/야곱이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그의 허리에 두르고, 자기 아들을 위하여 여러 날을 애도하더라. 고 했다. 이것은 바로 요셉이 죽었을 때 베옷을 허리에 두른 것이다. 야곱은 옷을 준비해 놓았다가 그렇게 슬피 울었다. 그런데 요셉은 후에 너무도 잘 되었다. 영원히 보지 못할 아들을 본 것이다. 마지막 최후에 행복을 누리게 된다. 나와 여러분이 성경을 자세히 풀어보면 저 이집트의 파라오 왕도 한 표상으로, 한 각을 떠보면 파라오도 하나님의 모형으로 나올 때도 있다. 그러니까 요셉 당시의 파라오는 하나님의 표상으로 볼 수 있다. 파라오가 야곱에게 하는 말이, 그대는 어떻게 이처럼 아들을 잘 두셨는가? 한다. 이러한 대화를 주고받는 것을 영적으로 풀어보면 놀랍다. 반드시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파라오 왕이 요셉에게 인장 가락지를 끼워주고, 세마포 옷을 입혀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의 복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임금이 내리신 축복은 영적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후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등장한다. 이것은 바로 원위치로 돌아온 것이다. 거듭 말하면 요셉 당시에 파라오는 하나님으로 등장할 때가 있고, 메시야로도 볼 수 있고, 임금으로도 상징된다. 그러니까 파라오가 요셉에게 인장 가락지를 손가락에 끼워주고, 세마포 옷을 주었다. 그리고 수레도 준다. 모든 권한을 요셉에게 다 일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임금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다윗 왕도 마찬가지이다. 다윗왕도 아주 좋다. 메시야의 표상도 될 수 있고, 예수의 표상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다윗왕이 팟세파의 아내와 같이 간통하는 장면은 아주 나쁘게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을 다른 한면으로 영적으로 보면 아주 좋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을 우리는 여러 각도에서 불 수 있다. 이처럼 성경은 여러 각도에서 풀어지고 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해 볼 때, 어떻게 간통을 저지른 7계명을 저지른 다윗에게서 솔로몬이 나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토록 잘못된 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 자손 가운데 솔로몬이 나오고, 그리고 그 맥으로 예수님이 오셨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다. 그래서 성경은 육적인 것보다는 영적으로 바로 풀고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할렐루야!

 

  ⑷ 35:13에 보면 [다윗의 옷이 굵은 베옷]이었다. 그가 기도할 때에 굵은 베옷을 입었다. 다윗은 이렇게 준비가 되어있고, 법을 아는 자이다. 다윗은 메시야의 표상도 되지만, 예수님의 표상도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⑸ 3:21에서 누가 등장하는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이 세사람이 나오는데 이들이 옷을 입었다.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들을 입은 채로 묶여서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 가운데에 던져졌더라. 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머리털 하나도 그을리지도 않고, 옷을 입은 채 그대로 살아서 서 있더라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도 옷을 입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 말씀은 우리를 바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 비밀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들이 입은 옷은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들이었다. 이 옷들을 입고 용광로 속에 들어간 것이다. 할렐루야!

 

  ⑹ 27:15에 보면 [야곱이 입은 좋은 의복이 나온다.

  여기서 야곱이 입은 좋은 의복은 장자의 옷이다. 야곱이 입은 좋은 의복은 에서의 좋은 의복이다. 그러나 야곱에게 그 옷을 입힌다. 그 의복은 바로 장자의 옷이다. 그런데 여기 좋은 의복은 별미와 관계된 옷이다. 그리고 이 말은 곧 예수님과 관계된다는 뜻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과 관계된 의복을 입고 들어가니 축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이삭이 그 의복을 만져보고, 축복하는 것이다. 그 옷을 입고 들어가는 자들에게 천국 문을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두 증인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놀라고 신기한 것은, 25:20을 보면 이삭이 사십 세에 시리아인 라반의 누이, 즉 팟단아람의 시리아인 브두엘의 딸 리브카를 아내로 얻으니라, 고 했다. 사십 세에 장가를 가서 20년만인 육십 세에 가서 아들을 낳았는데, 쌍둥이를 낳았다. 에서와 야곱을 낳은 것이다. 본래 리브가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자였다. 그는 石女였다. 결혼한 지 20년 만에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다시 말하면 육적인 이스라엘의 역사는 4000년 만에 예수님이 이 땅에 탄생하셨다.

 

  구약역사 4000년 만에 예수님이 오신 후, 지금까지 신약 2019년의 역사가 흘렀다. 이처럼 이삭이 육십 세에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는 것은 6000년의 역사를 가리키며, 이를 예언자나 학자들은 6000년 만에 종말을 보고 있고 이 종말 때에 어떠한 아들을 낳았느냐 하면. 에서와 야곱과 같은 아들이 등장한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역사는 4000년 만에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그리고 2000년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6000년으로 인류 역사를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십 수인 4000년의 년 수에 가서 잘도 속았다. 종말론을 하신 분들이 여기 사십 수에 가서 속은 것이다. 지나간 얘기이지만, 종말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1988년도 서울 올림픽을 유치한 그 해에 많이 사람들이 속았다. 그 당시에 88년을 인류 종말로 보고 외쳤고, 그래서 몸부림을 친 사람들이 많았다. 이스라엘에서도 그렇게 보았던 사람들이 많았다.

다음주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