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 날을 통해 사역할 하나님의 종들을 세우신다.


주사랑교회 장한국 목사(진리 총회장 / 본지 부이사장)

1 장한국 목사.jpg 지난호에 이어서...

왕상 22:19-22에 선지자들의 중심이 바로 되지 못하여 아합과 이세벨에게 아첨하는 길로 나아가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거짓말하는 영을 허락하셨습니다. 아합의 선지자들이 거짓말하는 영에 의해 거짓을 예언하면서도 참된 것으로 알았습니다. 또 사무엘상 28장에 신접한 여인이 사무엘을 불러올리는 것이 거짓 영입니다.

 

지금도 거짓말 하는 영으로 죽이는 역사가 있습니다. 예전에 신사참배를 강요당하던 때에 주의 종들이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신사참배를 한 주의 종들 중에 한국 교회의 지도자로서 일하신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신사참배를 하면 그 피가 더러워진 것입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예수로 인하여 목 베임을 받게 하여 순교자의 영광을 주려고 한 것이었는데, 믿음의 정절을 지켜야 하는 자리에서 예수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육신이 살기 위해 신사참배를 한 것입니다. 신사참배로 인해서 그들의 중심이 더러워졌기 때문에 그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정반대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사망 안에서 죽음 - 앞에서 말하는 칼과 굶주림도 영적 생명을 죽이는 사망이지만 사망 안에서죽이는 역사는 거짓말하는 영으로 죽이는 것을 말씀합니다. 5절에 검은 말 탄 자는 적그리스도의 하속이 되어버린 타락한 주의 종들입니다. 그들은 거짓말하는 영에 의해서 거짓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말이 거짓말인지 모르고 참된 말로 알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망입니다. 거짓 종들이 자신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망케 하는 것입니다.

 

신사참배를 한 최고의 한국교회의 모 지도자는 사도행전 12장을 무엇이라고 해석했나요? 사도행전 12장은 헤롯의 칼이 야고보 사도를 죽였고 그다음으로 베드로 사도를 죽이려 할 때 교회가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교회들이 감옥에 갇혀서 순교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베드로 사도를 위해 무엇을 기도했을까요? 신사참배를 한 그 주의 종이 말하는 것은 교회가 베드로 사도가 헤롯의 칼에 의해 죽지 않고 옥에서 나올 수 있게 기도한 것이다. 그 기도의 응답으로 베드로가 옥에서 풀려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믿음이 없어서 베드로가 나왔다고 전해주는 로데 소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하고 해석했습니다.

 

이 말이 참된 말인가요? 이는 자신의 육신목숨이 살기 위해서 신사참배를 했었기 때문에 그러한 중심으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마가 요한의 모친의 집에 모여서 베드로 사도를 위해 기도했던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기도했나요? 그들은 베드로가 옥에서 나오기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예전에도 계집 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씩 부인했었으나 이제는 그런 일이 없이 야고보 사도에 이어서 멋지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순교로써 승리하게 해 달라고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로데 소녀의 말을 듣지 않았었고 실제로 베드로를 보았을 때 그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순교의 피를 흘리는 때였기 때문입니다. 스테판이 제일 먼저 순교를 당했고 그다음은 야고보 사도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계속 이어서 옥에 갇히고 죽임당하는 때에 유월절 명절기간이 되어 사형집행을 잠시 늦추고 있는 때였습니다. 그러한 때에 다른 사도들과 교회들은 당연히 순교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라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교인들도 베드로 사도의 뒤를 따라서 순교하기를 바라면서 기도로써 준비했었기에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온 것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로데라고 하는 소녀는 어린아이기 때문에 신앙이 약합니다. 로데 소녀는 베드로가 죽지 않고 옥에서 나오기를 기도했으니까 현관문을 열지 않고 그의 음성만 듣고도 기뻐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 환란 전 휴거나 무천년주의 신학사상으로 무장된 교회들이 육신의 죽음인 순교를 원치 않습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한국교회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 계시록 말씀은 환란 날에 순교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신부를 세우는 것과 환란 날에 사역할 하나님의 종들을 세우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성경에는 환란 전 휴거나 무천년주의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습니다. 거짓을 말하는 당사자들도 자신들이 거짓을 말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회개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중심이 잘못돼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도 못하고 죽는 것이 사망입니다.

 

9절 어린 양이 다섯째 봉인을 여실 때 내가 보니, 제단 아래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 때문에 죽임 당한 자들의 혼들이 있는데, 10절 그들이 큰 음성으로 울부짖으며 말하기를 오 거룩하시고 참되신 주여, 땅에 살고 있는 그들을 심판하시어 우리의 피를 갚아 주실 날이 얼마나 남았나이까?”하더라.


구약시대에 제사드릴 때 제물이 제단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본문은 하늘나라 제단 아래에 있는 순교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들이 가진 증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고 했으므로 아벨부터 시작하여 환란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미 순교한 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미 순교한 자들이 땅에 살고 있는 그들에 의해 순교를 당했습니다.

 

본문 내용을 보면 믿음 있는 자들을 죽인 자들이 죽지 않고 계속 땅에서 살아오고 있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이것은 맥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예수님을 찌른 자들이 애곡한다는 말씀이 이천 년 전에 로마병사가 아직도 살아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애곡한다는 말이 아니잖아요?

땅에 살고 있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의 피를 신원해 달라는 것은 순교한 자들의 죽음을 복수해 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순교한 자들은 자신들을 죽인 자들을 원수로 여기지 않습니다. 도리어 자신들을 순교시켜 준 귀한 일꾼으로 고맙게 여기는 것입니다. 순교한 자들은 말씀을 증거하고 영혼을 살리는 일 즉 열매 맺는 삶을 살다가 피동적으로 죽이는 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열매 맺는 기회를 사모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미 순교한 자들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나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순교한 자들이 첫 번째 부활하여 부활체로서 다시 열매 맺는 기회가 있게 될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데 그 날이 언제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11절 그러자 그들 각자에게 긴 흰옷을 주시면서, 그들의 동료 종과 형제도 그들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가득 채워질 때까지 잠시만 더 쉬라고 말씀하시더라. 11절 말씀이 이미 순교를 당한 자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다섯째 인을 뗄 때 순교자의 수, 곧 그들의 동료 종과 형제들의 수를 다 채운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린양이 봉인을 뗄 때에 환란이 시작되고 일곱 인은 7년 환란을 말씀한다고 깨달았습니다. 그 환란의 전 3년 반에 될 예언의 비밀이 전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다섯째 인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결국 순교가 전 3년 반 안에 다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동료 종은 환란 날에 사역하게 될 하나님의 종들로서 그들의 이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쳐서 정해 놓은 수가 십사만 사천 명입니다. ‘너희 형제들은 이미 순교한 자들의 형제들을 말씀하므로 환란 날에 순교하는 능히 셀 수 없는 흰옷 입은 무리’(7:9)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그 흰옷 입은 무리의 수를 능히 셀 수 없지만 하나님은 정확한 수를 알고 계십니다. 환란 날에 많은 수가 순교하게 될 것이나 그 수는 한정돼 있어서 그 수가 순교로써 다 채워지기까지만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긴 흰옷은 순교자에게 주는 옷입니다. 이는 고범 죄, 성령 훼방 죄 등 사함 받지 못하는 죄까지도 모두 사해주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순교자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긴 흰옷으로 하얗게 덮어주셔서 죄가 하나도 나타나지 않게 해주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다섯째 인을 떼어서 순교자의 수를 다 채우면 전 3년 반이 끝나는 때입니다. 여섯째 인을 떼면 어린양의 진노ㆍ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있는 후 3년 반에 들어가는 때입니다. 3년 반의 총체적인 것은 여섯째 인으로 말씀하고, 3년 반의 구체적인 사건은 여섯째 나팔, 일곱째 나팔(일곱 대접)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 구조가 특별한 계시록의 뼈대입니다.

 

12절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여섯째 봉인을 여실 때, 보라, 큰 지진이 나며 해가 머리털로 짠 천같이 검어지고 달은 피처럼 되었으며, 계시록 6장에서 첫째 인부터 다섯째 인을 뗄 때 우리가 믿어야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바로 계시록 61절 어린양이 첫째 인을 뗄 때 내가 보고, 내가 들으니하신 말씀에 키포인트(key point)가 있습니다. 여기서 내가는 누구인가요? 사도 요한입니다. 어린양이 첫째 인을 뗄 때 그 안에 사도요한 자신이 있으니까 자기가 그것을 보고, 듣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의 예언을 받는 우리의 대표입니다. 계시록은 사도요한을 주된 계시 기관으로 사용한 것이므로 사도요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종말에 주의 재림 직전에 있을 환란 날에 사역할 종들의 대표로서 먼저 사도요한이 등장한 것입니다. 계시록 11장에 가면 사도요한이 두 증인으로 바통을 이어받습니다. 사도요한의 자리에 두 증인으로 교체가 되는 것입니다. 두 증인은 환란 날에 사역하는 하나님의 종들로서 그들의 이마에 인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을 가리킵니다.

 

만약 우리가 환란 날에 쓰임 받을 하나님의 종들이라면, 계시록 61절의 내가 보고, 내가 들으니의 자리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계시록 11장에 가서 사도요한이 두 증인으로 접속되어서 하나로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양이 그 봉인 가운데 하나를 여실 때 사도요한과 우리 각자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되므로 내가 보고, 들으니하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어린양이 첫째 인을 뗄 때 사도요한과 내가 그 안에서 보고 들으니까 흰말 탄 자가 보이는 것입니다. 또 어린양이 둘째 인을 뗄 때 사도요한과 내가 그 안에서 보고 들으니까 붉은 만 탄 자 곧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서 교인들을 타락시키고 큰 칼로 죽이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또 다섯째 인을 뗄 때 그 속에 내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순교의 역사에 자신도 해당되고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 인부터 다섯째 인까지를 땔 때와 여섯째 인을 뗄 때 큰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첫째 인부터 다섯째 인까지를 뗄 때는 먼저 인을 떼고 그 다음에 사도요한이 그 안에 속해 있어서 내가 보고 들으니하고 말씀했는데, 본문 12절에는 순서가 바꿔졌습니다. 여섯째 인을 떼기 전에 먼저 내가 보니하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내가 다른 곳 즉 하늘나라에서 이 땅을 보고 있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섯째 인을 뗄 때 그 속에 자신이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호에 계속>